초한지32화
2021. 4. 5. 11:35ㆍ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32화
☞ 진승(陳勝), 반란(反亂)을 일으키다.
순리대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펼치는 정치를 덕치(德治)라고 한다면,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적폐의 대상으로 삼고 권력을 앞세워 정적(政敵)을 핍박하는 정치는 악정(惡政)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봉건왕조(封建王朝) 시대 진시황의 정치는 악정을 뛰어넘어 폭정(暴政) 바로 그 자체였다.
※ 註) 현세(現勢)가 바로 이와 같다 할지니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제왕이란 백성들이 편안하고 잘 사는 정치를 펼쳐야 성군으로 불린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인재를 발굴,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그에 합당한 정책을 펼쳐야 하건만 진시황은 백성은 오직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개나 소, 돼지 같은 존재로만 취급해 왔으니 어찌 반란(反亂)이 없을 수 있겠는가?
시황제가 만리장성 공사와 아방궁 증축을 동시에 시공하여 백성의 원성이 극에 달하고 있을 즈음, 백성들의 반란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진시황에게 복속되기 전의 초나라 시절 소읍주(小邑主)를 지낸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은 진나라에 의해 병합된 후에도 진시황의 군현제도 실시로 계속 소읍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소읍주들은 아방궁과 만리장성 축조공사에 노역부(勞役夫)를 차출해 보내야 하는 임무로 고충이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적 대규모 공사로 인하여 일시에 많은 노역부를 동원해야 하는 형편인데다, 시일이 지날수록 백성들의 노역 기피가 점점 심해져서 노역부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다 보니, 시황제는 각 지방관에게 다음과 같은 가혹한 엄명을 내리게 된다.
‘지방관으로서 노역부의 책임 수량을 정한 날짜까지 차출하지 못하는 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가차 없이 참형에 처한다.’
이로 인하여 각지의 지방관들은 노역부를 제 날짜에 대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에 진승과 오광도 노역부를 기일 안에 대기 위해 가가호호 이 잡듯이 뒤져 젊은 사람이 눈에 띄면 불문곡직하고 노역부로 끌어왔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진승과 오광은 비록 출신은 초나라 사람이었지만 새로 바뀐 진나라의 충성스런 공복(公僕)이었다.
그들은 공출할 노역부 각 5백 명씩을 강제로 징발해서 만리장성 축조현장으로 직접 인솔해갔다. 다른 사람을 보냈다가 노역부들이 도중에 도망이라도 가게 되면 공출 숫자를 맞추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들이 직접 노역부들을 인솔하고 나섰던 것이다.
옛 초나라 땅에서 만리장성 축조 현장까지는 자그마치 천리 길이었다.
진승과 오광은 노역부들을 공사 현장까지 인솔해가는 도중 홍수를 만나 열흘 동안이나 발이 묶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정한 날까지 도저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가 없게 되었다.
도착 날짜를 어기면 무조건 참형에 처한다고 했으니 진승은 생사에 관한 중대한 사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부터 어떡하지?”
진승은 날이 갰지만 노역부를 데리고 떠날 생각은 하지 않고, 같은 처지인 오광에게 물었다. 그러자 오광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떡하긴? 노역부를 데리고 어서 공사현장으로 떠나야지.”
그러자 진승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물었다.
“자네 지금 제 정신인가? 노역부 공출 날짜를 어기면 이유를 묻지 않고 참형을 시킨다고 했는데, 그래도 공사현장으로 가자는 말인가?”
“이 사람아! 그런 걱정은 하지 말게. 홍수 때문에 공출 날짜를 지키지 못했노라 하면서 노역부를 천 명이나 건네주면 설마 우리들을 죽이기야 하겠는가?”
“자네는 어리석어도 이만저만 어리석지 않네그려. 시황제에게 그런 변명이 통하리라 생각하는가? 지난번에 시달된 공문에도 ‘노역부를 제 날짜에 공출하지 못한 지방관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참형에 처한다.’고 분명히 씌어 있지 않았던가? 이미 그런 명령을 분명히 내려놓았는데, 무슨 변명이 통할 수 있단 말인가?”
오광은 그 말에 새삼스레 놀라면서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자네 말을 듣고 보니 우리가 공사현장에 나타났다가는 꼼짝없이 죽게 될 판이네그려. 그러면 이 일을 어떡하지?”
진승은 고뇌에 찬 얼굴로 침묵에 잠겼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번쩍 들면서 말했다.
“이 사람아! 우리도 사내자식으로 태어났으니 이왕이면 대장부답게 큰 뜻을 한 번 펴보아야 하지 않겠나?”
“큰 인물이 될 수만 있다면 누가 마다하겠나? 어떻게 해서 큰 인물이 되자는 것인지 좀 더 자세하게 말해보시게.”
오광이 궁금해 하자 진승은 별안간 딴 사람이 된 것처럼 희망이 넘치는 어조로 말을 하였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들은 나라가 망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진나라 소읍주 노릇을 해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시황제라는 자의 폭정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옛날 초나라 백성들치고 진시황에게 불만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이번을 기회로 망해버린 초나라를 재건하는데 우리가 힘을 합하여 보자는 말일세, 자고로 왕후장상의 씨앗이 따로 있던가? 우리들도 진시황을 때려잡고 나라를 다시 일으킨다면 자네와 나도 제왕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진승은 워낙 배짱이 크고 수완이 있는 인물인지라 즉석에서 열변을 토했다. 오광은 그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
“그것 참 기막힌 생각이네, 자네가 옛날 초나라를 복원(復原)하여 임금이라도 된다면, 나는 정승 자리 하나는 따 놓은 당상이 아니겠는가?”
“그야 물론이지! 하하하... 자고로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일세! 내가 왕위에 오르면 설마 자네를 모른다고 하겠는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정승 자리 하나를 단단히 부탁해 둘 테니, 나중에라도 잊지 말도록 해 주게.”
오광은 거기까지 말하다가 문득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그러나 저러나 우리가 여기까지 끌고 온 노역부들은 어떻게 처리하지?”
하고 묻는다. 진승은 오광의 말을 듣고 앙천대소(仰天大笑)를 한다.
“하하하, 걱정도 팔자일세 그려. 우리가 망해버린 초나라를 다시 세우려면 응당 부하들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그러니 노역부들을 우리네의 병사로 만들어야 할 것이야.”
그 말에 오광은 무릎을 치면서 말한다.
“과연 명안일세. 그러나 억지로 끌려오던 저들이 순순히 우리들의 부하가 되려고 하겠는가?”
“그것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자네는 구경이나 하고 있게.”
진승은 곧 밖으로 달려 나와 노역부들을 한데 모아 놓고 큰 소리로 외쳤다.
“너희들은 여기까지 끌려오느라고 고생이 많았다. 너희들은 지금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노역부들은 진승을 증오의 눈으로 바라보며 대답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진승은 눈앞에 서 있는 노역부 몇몇을 손으로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너희들은 지금 어디로 끌려가는지 모른다는 말이냐?”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지금 만리장성 축조공사에 노역부로 끌려가고 있는 중이 아닙니까?”
제법 덩치가 큰 장정 하나가 퉁명스런 어조로 대답을 하였다.
“그렇다. 너희들은 지금 만리장성 축조현장으로 징발되어 가는 중이다. 그런데 그곳 노역부로 끌려가면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열에 아홉은 죽고 돌아오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노역부로 끌려가면 열에 아홉은 죽어 버린다. 나도 진작부터 그 점에 대해 혼자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도 초나라 사람이요, 너희들도 초나라 출신의 사람임이 분명한데, 초나라 사람인 내가 진시황이라는 천하의 폭군을 위해 고국 동포인 너희들을 죽음의 길로 몰고 온 것은 나의 커다란 잘못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일시적이나마 진나라의 국록을 먹어온 관계로 너희들을 이곳까지 끌고 오기는 하였지만, 양심상 고국 동포인 너희들을 더 이상 괴롭힐 수가 없어 지금부터 너희들을 모두 석방시켜줄 테니, 너희들은 모두들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 형제를 만나도록 하여라.”
그야말로 상상조차 하지 못한 폭탄선언이었다.
사지(死地)로 끌려가던 노역부들로서는 날뛰며 기뻐하여야 할 선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 마음을 떠보려는 수작이 아닌가 싶어서 기쁨보다는 경계심을 앞세우며 두런두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만 있었다.
진승은 노역부들의 분위기를 빠르게 살피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너희들을 여기까지 끌고 온 내가 별안간 해방시켜준다고 하니 쉽게 믿어지지 않는 모양인데, 사실이다. 나는 초나라 명문가(名門家)의 후예이다. 따라서 조상들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너희들을 진나라 폭군에게 희생의 제물로 바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내린 결정이니 의심치 말기 바란다.”
노역부들을 향하여 말을 하는 진승의 표정은 자못 엄숙하였다. 그러자 늙수그레한 노역부 하나가 진승에게 묻는다.
“장군은 초나라 명문가의 후예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느 가문의 후손이십니까?”
진승은 약간 주저하는 빛을 보이다가 대답했다.
“내가 워낙 못난 놈이기 때문에 조상의 이름을 함부로 내세울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그대들이 꼭 알고 싶어 하는 모양이니 솔직히 대답해 주겠다. 너희들은 ‘진수달(陳秀達) 장군’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일이 있는가?”
“알고 있사옵니다. 진수달 장군은 지금부터 백 여 년 전 진나라와 싸워 큰 전공을 세우신 명장이 아니시옵니까?”
그러자 진승은 크게 감격하면서 말했다.
“오! 나의 조부님께서 천하의 명장이셨던 것을 그대는 알고 있었구나! 나의 조부께서는 그런 분이셨건만, 나는 조부님의 위업을 계승하기는커녕 그대들을 원수의 나라에 넘기려고 했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진승은 이렇게 열변을 토하며, 참회라도 하듯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백 여 년 전에 초나라에는 진수달이라는 장군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진승과 진수달 장군은 아무 혈연관계도 없는 사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승은 성씨가 같은 것을 이용하여 자기 자신을 진수달 장군의 후예라고 선포하고 나섰다.
그래야만 노역부들로부터 존경과 복종을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진승의 연극은 보기 좋게 적중하여 노역부들 모두가 놀라움과 존경심으로 바뀌었다.
“장군께서 저희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주시려는 것은 고맙기 그지없는 말씀이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장군께서는 진시황에게 처벌을 받게 되실 텐데, 그 문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조금 전만 하더라도 원수처럼 미워했던 그들이었건만 이제는 동지적인 입장에서 상대방을 걱정해 줄 정도로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음...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도 지금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진승은 계획적으로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꼬리를 흐려 버렸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이번에는 오광이 거들고 나섰다.
오광은 앞으로 나와 말했다.
“너희들을 일단 해방시켜 주고 나서 진승 장군은 초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진시황과 정면으로 싸울 계획을 세우고 계시다. 다시 말하면 진승 장군은 잃어버린 우리의 조국을 되찾으려는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도 나라 없는 서러움을 면하려면 모두들 진승 장군을 대장으로 모시고 독립 전선에 참여하면 어떻겠느냐?”
노역부로 끌려왔던 그들은 ‘독립투사가 되어 달라’는 진승과 오광의 말에 크게 감동되었다. 그들은 한동안 어수선하게 상의하더니 대표자 한 사람이 진승 앞으로 걸어 나와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이 고향을 떠나 여기까지 노역부로 끌려온 것은 우리들의 조국이 진시황이라는 날강도에게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조국이란 이렇게도 소중한 것인데, 진승 장군께서 우리나라의 국권 회복을 위해 정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일어선다고 하시니 저희인들 어찌 집으로 돌아가 일신상의 안일만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나라가 없으면 노예 신세를 면할 수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까닭에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천여 명의 저희들은 장군을 수령으로 모시고, 모두가 독립의 대열에 동참하기를 원하오니 장군께서는 저희들을 부하로 기꺼이 받아들여 주소서.”
노역부들의 뜨거운 애국 충정에 진승은 감격하였다.
“그대들이 독립을 위하여 나와 생사를 같이 해주겠다면, 나로서는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이제부터 다 같이 고국으로 돌아가 동지들을 규합하여 진시황에게 맞서 초나라를 되찾는 독립운동을 거국적으로 전개해 가기로 하자! 하늘은 항상 정의의 편에 서는 법이니 승리는 반드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이리하여 진승은 오광과 함께 천 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당당하게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진시황의 폭정에 시달려 오던 초나라 백성들은 ‘독립 운동의 영도자’ 진승을 영웅처럼 받들며 열화와 같이 환영해 주었다.
그리고 뜻있는 청년들이 독립 전열에 가담하려고 노역을 피해 숨어 있던 곳에서 뛰쳐나와 진승에게 모여들었다.
막강한 진시황의 대진제국이 이와 같은 작은 반동으로 쉽게 무너진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제 아무리 튼튼한 제방도 자그마한 물이 흘러나오는 틈새 하나로 무너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진승의 반란은 시황제에게는 분명히 불길한 조짐이었다.
하물며 진시황의 폭정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려는 수많은 의사들이 진에 의해 멸망(滅亡) 당한 육국 각지에서 때만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시기임에 있어서다!
- 제 33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