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18화

2021. 3. 22. 08:06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18화

☞ 여불위와 노애의 몰락

노복(奴僕)을 천 명씩이나 거느리고 태후(太后) 주희(朱姬)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 둘과 온갖 영화를 누리고 있는 노애는 시간이 갈수록 엉뚱한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그것은 기회를 보아 진왕을 죽이거나 쫓아내고, 자신의 아들을 그 자리에 올려 앉히고자 하는 야심(野心)이었다.
그래서 때때로 특히 방사(房事)를 하는 중에도

“아들을 둘이나 두었으니 이제는 진왕을 쫓아내고, 우리 아이를 왕으로 세워야 할 게 아닌가?”
노애의 입에서 이런 말이 노골적으로 나오게 되자, 그에게 빠질 대로 빠진 주희였지만 부르르 몸을 떨며 말했다.

“그건 절대로 안 돼요. 그 애(秦王)가 얼마나 무서운 아이인데, 그런 말을 함부로 합니까? 그렇지 않아도 우리들의 비밀이 탄로라도 나는 날이면, 그날로 우리 둘의 목이 날아갈 줄 아세요. 딴 생각 말고 하던 일이나 계속해요. 감질나 죽겠어요. 호~홍~”
“알았어, 자~ 허~헙! 하지만 당신은 무슨 못난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그 애 목에는 칼이 안 들어가는 줄 아오? 그 애 하나만 없애 버리면, 진나라는 우리들의 나라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말씀은 그만 하시고... 아~~~흥~ 아~~~~흐~~흥~”
주희는 몸이 떨려서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사실 그녀의 입장은 난처했다.

노애와 그녀 사이에 낳은 두 아들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왕도 자기 뱃속에서 나온 친자식이 아닌가? 따라서 노애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여불위의 몸에서 태어난 장자를 죽인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진왕 9년 이른 봄 어느 날 노애는 미녀들을 거느리고 주연을 즐기고 있었는데, 태후전(太后殿) 시녀인 계씨 부인(季氏夫人)이 술심부름을 하던 중 실수로 노애의 옷에 술을 엎질렀다.
그러자 노애는 벌컥 화를 내며, 벼락같은 소리를 질렀다.

“네 이년! 용포(龍袍)에 술을 엎지르는 년이 어디 있느냐? 무엄하기 짝이 없는 이년을 당장 궁에서 쫓아내라!”
‘용포라! ~ 지가 진왕이라도 된 듯 한 말인데...’
계씨 부인은 그 자리에서 태후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조그마한 실수로 궁을 쫓겨나게 된 그녀는 노애에게 앙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내시로 가장하고 대왕을 속여 가며, 태후와 관계하는 주제에 감히 나를 쫓아낸다고?’
계씨 부인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5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사실을 노애는 몰랐을까? 열락(悅樂)에 취하여 잊었을까?
그런데 저녁쯤 되자 들려오는 말에 노애가 계씨(季氏) 부인을 참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게 아닌가!

계씨 부인은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는 밤을 도와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막상 도망을 가려고 길을 나서니 갈 곳은 무려 1,500 리나 떨어진 함양뿐이었다.

계씨 부인은 이를 악물고 태산준령을 넘고 넘어 두 달여 만에 함양에 도착한다. 그리고 궁궐로 직행하여 대사(大使) 조고(趙高)를 만난다.
조고는 계씨 부인의 초췌한 몰골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 註, 대사(大使) : 조선시대 왕을 보좌하는 도승지 벼슬로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 격임.

“그대는 태후마마를 모시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이런 모습으로 옹성에서 돌아왔는가?”
계씨 부인은 울면서 대답했다.

“저는 추잡스러운 노애의 손에 죽지 않으려고, 야반(夜半)에 도망을 쳐서 산 넘고 물 건너 돌아왔사옵니다.”
“노애가 추잡스럽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노애는 내시가 분명한데, 내시가 어떻게 추잡스럽단 말인가?”
계씨 부인은 그동안 있었던 노애와 태후와의 관계를 낱낱이 고해 바쳤다.

조고는 너무도 뜻밖의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그 사실을 즉시 진왕에게 아뢴다.
진왕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생모인 태후가 관련된 일이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애는 내시(內侍)가 분명한데,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겠나? 자세한 내막은 내가 옹성(壅城)에 직접 내려가서 처분할 것이니 길 떠날 채비를 차리도록 하라. 그리고 내가 옹성에 다녀올 때까지는 누구에게도 이 일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
이리하여 진왕은 지방 순시를 명목으로 옹성으로 떠나게 된다.

이때 물론 조고도 왕을 수행하였다.
한편, 노애는 진왕이 지방을 순시하는 중에 옹성(壅城)에 들른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한다.

“하늘이 내게 준 찬스다.”
이 기회에 진왕을 없애버리고,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세울 야심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노애는 가짜 옥새(玉璽)를 만들어 가까운 고을에 주둔하고 있는 근위부대(近衛部隊)와 근위기마대(近衛驥馬隊)에 옹성으로 오라는 긴급 군령을 왕명(진나라 왕)으로 내렸다.

진왕이 옹성에 도착하기만 하면 진왕의 폭정을 단죄하고, 새로운 왕으로 새 시대를 맞는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근위부대로 하여금 왕의 숙소인 기년궁(蘄年宮)을 급습하게 하여 진왕을 단숨에 제거해버릴 계획이었던 것이다.
노애의 심복 부하들은 그러한 반역 행위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노애는

“만약 이번 일이 뜻대로 되어 나의 세상이 되기만 하면, 그대들에게는 정국공신(靖國功臣)의 칭호를 부여함과 동시에 식읍(食邑)을 하사하여 자자손손 영화를 누릴 수 있게 할 것이니, 그대들은 목숨을 걸고 전력을 다해 목표 달성에 추호도 차질이 없도록 하라!”
는 특별 지시를 내렸는지라, 그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하여 역모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진왕은 이처럼 무서운 역모가 진행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옹성에 도착하자, 곧 숙소인 기년궁으로 향했다.
그날 밤은 기년궁에서 쉬고, 다음 날 아침에 태후궁으로 생모를 찾아갈 예정이었다.

진왕이 행차할 때는 조고는 항상 왕의 행차보다 수백 보쯤 앞서가며, 왕의 행차에 위험 요소가 있는지 살펴보며 조금이라도 수상한 점이 발견되면, 그 누구라도 가차 없이 처치하였다.
이처럼 조고는 진왕에게는 다시없는 심복이었다.

이날도 왕의 행차가 기년궁으로 향하자, 조고가 일단(一團)의 호위군(護衛軍)을 거느리고 앞질러 말을 타고 달려가고 있는데, 난데없는 기마병 하나가 앞쪽에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누구냐! 게 섰거라!”
조고는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칼을 뽑아 들고 당장이라도 목을 칠 듯이 달려 나갔다.
그런데 마주 달려오던 기마병이 조고를 보고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 말을 멈춰 서서,

“아니, 아저씨가 여기는 웬일이십니까?”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얼굴을 자세히 보니, 그 청년은 이웃 고을의 근위대장으로 있는 조고의 조카 희광(熙光)이가 아닌가?

“너는 희광이 아니냐? 네가 여기는 웬일이냐?”
“저는 왕명을 받아 근위부대를 인솔하고 조금 전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왕명에 의해 출동을 했으니까, 아저씨는 그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것이 아닙니까?”
“뭐라고? 왕명에 의해 근위 부대를 인솔해 왔다고?”
조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무언가 무서운 음모가 숨어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나도 모르는 왕명을 누가 너에게 내렸단 말이냐?”
“왕명이 내려진 것을 아저씨가 모르신다면, 그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니옵니까?”
희광은 고개를 갸웃해 보이면서,

“그렇다면, 제가 군령장(軍令狀)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번 살펴보시지요.”
하며 주머니에서 군령장을 꺼내 보였다.
그때 마침 진왕의 행차가 가까이 다가왔다.

“자세한 얘기는 대왕을 기년궁으로 모신 연후에 나누기로 하고, 너도 나를 따라오너라.”
조고는 대왕을 기년궁으로 모시고 나서 희광과 단둘이 다시 만났다.

그리고 군령장을 자세히 살펴보니, 거기에는 분명히 대왕의 옥새가 버젓이 찍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옥새가 가짜라는 것을 조고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이 군령장에 찍힌 옥새는 틀림없는 가짜다! 그렇다면 누가 역모를 하려고 꾸민 일인데, 이런 엄청난 짓을 할 사람은 노애가 아니고서는 없을 것이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군령장은 옹성 성주 노애로부터 받았습니다.”
조고는 즉시 사람을 놓아 노애의 동태를 은밀히 정탐해 오게 하였고, 얼마 후 돌아온 정탐꾼은

“노애는 오늘 밤 축시(丑時)를 기해 기년궁을 급습하여 대왕을 살해하고, 자기 아들을 왕으로 옹립할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무어라? 대왕을 시해하고, 자기 아들을 왕으로 옹립하려 한다고?”
조고는 후들후들 떨리는 몸을 추스른 다음 말을 이었다.

“네가 그런 음모가 있는 줄 어찌 알아냈느냐?”
“태후마마를 호위하는 군사 중에 제 친구가 한 사람 있사온데, 음모의 내막은 그 친구로부터 자세히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태후마마도 이 사건에 연루된 것이냐?”
“태후마마는 처음부터 이런 음모에 반대하고 계셨기 때문에 오늘 밤의 계획은 전혀 모르고 계시다 합니다.”
“잘 알았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거라.”
노애의 반역이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조고는 즉시 진왕에게 모든 것을 고해 바쳤다.
진왕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노애 일당을 지금 당장 체포하여 거열형(車裂刑)에 처하라!”
하고 명했다.
그러나 조고는 침착하게 왕에게 품했다.
※ 거열형(車裂刑) : 사지를 넉 대의 수레에 묶어 네 조각으로 찢어 죽이는 극형.

“노애가 축시에 거사하기로 했으니, 자시(子時)에는 일당이 틀림없이 한자리에 모일 것이옵니다. 이때에 놈들을 일망타진(一網打盡)하는 것이 상책인 줄로 아뢰옵니다.”

말하자면, 노애가 거사하기 두 시간 전에 그들의 본거지를 일시에 급습하여 일당을 한 놈도 남김없이 쓸어 없애자는 것이었다. 이렇듯 아무리 위급한 때에도 조고의 지략은 침착하고 치밀하였다.

‘과연 천하에 둘도 없는 비서실장 깜이로다!’
조고의 의견은 즉시 채택되었다.

이날 밤 자시, 조고는 진왕의 친위 부대와 조카 희광의 근위 부대를 몸소 이끌고, 노애의 본거지를 급습하여 노애의 심복 부하 20여 명을 잡아 즉석에서 목을 베었다.

그러나 노애는 음모가 탄로 난 낌새를 알아채고 도망가는 바람에 체포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진왕은 더욱 진노한다.

“노애를 잡아 오는 자에게는 상금 50만 냥을 주리라.”
하는 방문을 널리 써 붙이게 하는 동시에 태후의 몸에서 태어난 노애의 두 아들과 노애가 거느리고 있던 수천 명의 노복들도 가차 없이 몰살시켜 버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삼족이 멸문지화 된 숫자만도 무려 5만에 이르렀다.
노애 일당을 일망타진하고 나서 그 사건의 경과를 면밀하게 조사를 해보니, 태후에게 노애를 천거한 사람은 다름 아닌 승상 여불위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뭐야? 태후에게 노애를 천거한 사람이 여 승상이었다구? 그런 자가 무슨 승상이며 빌어먹을 중부(仲父)란 말이냐?”
진왕은 다시 한 번 크게 노하며 태후를 만나 보지도 않고, 그 길로 바로 함양으로 돌아와 버렸다.

무자비한 진왕도 차마 생모만은 죽일 수가 없어서 그냥 돌아와 버렸던 것이다.
진왕은 함양으로 돌아오자, 여불위를 제외한 모든 중신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말했다.

“승상 여불위가 노애의 반란사건에 관련되었음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오. 따라서 여불위의 관직과 직위를 모두 박탈하고, 그를 참형에 처하시오. 승상 후임에는 객경(客卿) 이사(李斯)를 임명하오.”
중신들은 영문을 몰라 모두 어리둥절하였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더니, 여불위는 승상의 권세를 누린 지 12년 만에 뜻밖에도 참형을 면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러자 승상으로 임명된 이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여불위의 죄상에 대한 대왕의 분부는 지당하신 분부이신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나 선왕에 대한 그의 공로는 지대(至大)한 바가 있사오니, 감(減) 일등(一等)하시와 유배형(流配刑)에 처하심이 어떠하올지 재고(再考)의 은덕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진왕도 그 말에는 일말의 수긍되는 점이 있어 오랫동안 말이 없다가 붓을 들어 여불위에게 보내는 친필 서한을 써 주었다.
여불위는 진왕의 친서를 받아 보고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다.

“아! 이제 다 늙은 몸이 서촉 산중으로 유배를 가서 무슨 보람으로 여생을 살아가랴. 불경에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이 있더니 나는 내 손으로 뿌린 악(惡)의 씨앗으로 인해 업보(業報)를 당하는구나. 내 자식에게 자식이라는 말 한 마디조차 못 해보고, 결국에는 자식의 손에 죽게 되었으니 정녕 이것이 하늘의 뜻이란 말인가!”
여불위는 이 같은 탄식을 하면서 스스로 독약(毒藥)을 마시고 죽으니 이때 그의 나이 53세였다.

여불위가 죽은 지 두 달 후에 옹성에 사는 늙은 농부가 여불위의 수급(首級)을 보따리에 싸들고 진왕을 찾아왔다.
여불위가 산중에서 극약을 마시고 자진한 것을 발견하고, 그의 목을 잘라 소금에 절여서 함양까지 장장 1,500리를 달려왔다는 것이었다.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여불위가 분명했고, 진왕은 농부에게 상금을 내주며 그를 치하하였다.
‘운명의 장난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인가?’

친자식에게 애비라는 말 한 마디 못한 채 자살하고, 자신을 낳아준 아비인지도 모르고 지 애비 목을 따온 자에게 크나큰 상금을 내린 후일의 진시황이 되었다.
이렇게 노애의 사건이 일단락되자, 노신(老臣) 모초(茅焦)가 진왕에게 간한다.

“태후마마를 옹성에 방치해 두심은 효에 어긋나시는 일이옵니다. 이젠 태후를 함양으로 모셔 오심이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진왕은 생모인 태후가 원망스럽고 불만도 많았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홀로 되다 보니 그런 과오도 범할 수 있었으리라 싶어 그해 가을 태후를 감천궁(甘泉宮)으로 다시 모셔왔다.

- 제 1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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