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16화
2021. 3. 20. 07:39ㆍ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16화
☞ 권력(權力)에 취(醉)한 자(者), 권력으로 망한다.
이때의 진나라는 전국칠웅 가운데 영토가 제일 넓었다. 북으로는 멀리 호령(胡嶺), 곡구(谷口)에 이르렀고, 남으로는 양자강 지류인 경수(涇水)와 황하 상류인 위수(渭水)를 둘러싼 곡창 지대와 서쪽으로는 서촉(西蜀)의 태산준령이 가로막고 있어 천연의 요새가 따로 없었다.
동으로는 함곡관(函谷關)과 효산(肴山)이 있어서 천혜의 난공불락(難功不落) 요새가 되어 있었다.
※ 함곡관(函谷關) : 오늘의 하남성(河南省) 신안현(新安縣) 동쪽 끝에 있는 관문으로 진(秦)이 산동 육국으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지나야만 하는 험준한 관문임.
따라서 진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는 쉬워도 타국이 진나라를 공략하기는 쉽지 않은 지형이었다.
게다가 선왕인 소양왕 때부터 꾸준히 병력을 양성해왔으므로 군사와 무기는 막강하였다.
한편, 나머지 육국의 사정은 어떠한가?
이들 여섯 나라는 황하 유역의 비옥한 평야에 소재하는데다가 기후마저 온화하여 백성들이 농경(農耕)하기가 최적이었고, 인문(人文)도 융성하여 일찍부터 문화가 찬란하게 꽃피어 있었다.
조(趙), 위(魏), 한(韓), 초(楚) 등이 그러한 나라들이었으나 다만, 그들은 영토가 작고 군사력이 약하여 군사력에서는 진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진에서는 소양왕 때부터 중원 제국(中原 諸國)을 삼켜버리고 싶은 욕망이 넘쳐나 소양왕 스스로가 70 평생을 야전(野戰)에서 보냈거니와 미래의 진시황인 소년 왕 정(政)도 증조부의 원대한 뜻을 이어받아 등극한 그날부터 천하통일(天下統一)의 야망에 불타고 있었다.
그리하여 일찍이 실전을 방불케 하는 군사훈련을 계속해오면서 시간을 내 많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국토를 순회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나이에 비해 대단히 성숙한 소년 왕이었던 것이다.
어느덧 소년 왕이 등극한 지 3년이 되는 열다섯 살 나던 해의 생일날이었다.
소년 왕 정은 생일 축하연 석상에서 만조 백관들에게 돌연 다음과 같은 폭탄선언을 한다.
“내 나이 이미 열다섯 살, 남아 열다섯이면 당당한 대장부이건만, 나는 아직 영토를 조금도 확장하지 못했소. 이는 진실로 선왕들께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오. 이에 결심한 바가 있어 올해는 우선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韓)을 쳐서 영토를 넓혀나갈 계획이니 경들은 나의 뜻을 받들어 최선을 다해주기 바라오.”
열다섯 살짜리 소년으로서는 너무도 당돌하고 엄청난 폭탄선언이었다.
‘피는 속이지 못한다더니, 이 애가 나의 피를 이어받아서 배짱도 엄청나구나.’
여불위는 소년 왕의 패기에 한편으로는 어깨가 으쓱하도록 기뻤다.
그러면서도 즉흥적인 선언이 너무도 무모해 보여 충고라도 해 줄 생각에,
“대왕 전하!”
하고 말을 하려고 하자, 소년 왕은 손을 들어 제지하듯 하면서,
“나의 명령에는 오직 복종만 있을 뿐이오. 승상은 입을 다물어 주시오.”
하면서 일언지하에 입을 틀어막는 것이었다.
‘왕의 명령은 절대권을 가진다.’
어린 소년에게 일찍이 이와 같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여불위 자신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교육을 시켜 놓아야 후일에 자기에게도 유리하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소년을 절대권자로 만들어 놓은 이제는 자신이 아비라는 사실조차 말할 수 없게 되었고, 그의 명령에는 자신도 모르게 무조건 복종하지 않을 수밖에 되지 않았는가?
그야말로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것이야 어쨌든 몽오 장군은 왕명에 따라 10만 대군을 이끌고 한(韓)나라를 쳐들어가 13개 성읍을 일거에 탈취하였다. 이 싸움에서 장수 왕의가 전사(戰死)했으나 그런 것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진왕은 첫 번째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자, 이듬해는 위(魏)를 쳐서 영토를 넓혔고, 또 그 다음 해에 위를 다시 쳐서 산조성(酸棗城)을 빼앗았으며, 다음 해에는 연(燕)을 침공, 상양성(上陽城)을 비롯한 20개 성읍을 빼앗아 동군(東郡)이라 부르게 하였다.
청년 진왕은 몇 번의 싸움에서 자신감을 얻자, 그때부터는 닥치는 대로 침략하기 시작했다. 사태가 이에 이르고 보니 인접국(隣接國)들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어느 날, 초(楚)의 효열왕(孝烈王)이 승상(丞相) 춘신군(春申君)을 불러 상의한다.
“진이 지금은 비록 위와 연만을 침략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우리도 침략해오리라 생각되는데, 승상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춘신군은 식객을 3천 명이나 거느리고 있는 현자(賢者)라 왕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진의 목적은 진에 의한 천하 통일에 있사옵니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침략의 마수를 뻗어 올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옵니다.”
“만약 그런 경우에는 우리의 힘만으로 저 변방의 늑대 같은 진나라를 당해 내기가 어려울 것이 아니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대책이라면 어떤 것이 있겠소?”
“우리가 선수를 쳐서 진을 쳐 없애야 하온데, 그러자면 조(趙), 위(魏), 한(韓), 연(燕)나라 들과 군사 동맹을 맺어 진을 공동의 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사옵니다.”
“그들이 우리의 제안을 쉽게 들어주겠소?”
“평화로운 시기라면 어렵겠지만, 한과 연은 지금 당장 진의 침략에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군사동맹을 제안하면, 그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옵니다.”
“모든 일에는 사전 대비가 최상이니까, 경이 이 일을 시급히 추진해 주시오.”
이리하여 춘신군은 군사동맹의 중책을 띠고, 4개국 순방길에 올랐다.
춘신군의 군사동맹 제안은 가는 곳마다 크게 환영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침략자 진을 치기 위해 군사 동맹을 맺자고 하는데, 어느 나라가 싫다고 할 것인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도 군사 동맹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춘신군의 노력으로 5국의 군사동맹이 체결되자, 연합군은 진왕 6년에 드디어 진을 치고자 출동하였다.
조, 한, 연은 각각 군사 5만 명씩을 차출하였고, 위는 10만 명, 초는 15만 병력을 동원했다.
춘신군은 도합 40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진나라 정벌의 장도에 올랐다.
그리하여 진의 전초 기지인 수릉성(壽陵城)으로 노도와 같이 쳐들어가니 연합군 규모에 주눅이 든 성주 왕흘은 변변히 싸워 보지도 않고 성을 포기, 함양으로 도주하고 말았다.
이에 기세가 오른 연합군은 함곡관(函谷關)으로 진격을 계속하였다.
한편, 수릉성주 왕흘은 함양으로 도망쳐 와 어전(御殿)에 엎드리며,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어쩔 수 없이 성을 적에게 내주었사오니 대왕께서는 엄벌을 내려주시옵소서.”
하고 석고 대죄한다. 그러나 진왕은 오히려 위로의 말을 한다.
“전투에서 일승일패(一勝一敗)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 했소. 한 번 패했다고 어찌 그대를 벌하리오.”
하고 너그럽게 위로한다.
그러면서 어전에 시립(侍立)해 있는 군신을 둘러보며 말했다.
“적의 오합지졸(烏合之卒)이 40만 명이나 된다 하니 누가 저들을 무찌르겠소?”
“그 임무를 소신에게 맡겨 주시옵소서.”
몽오, 왕전, 장한의 세 장수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모아 말했다.
진왕은 만면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모두들 장하오. 그러면 세 분에게 각각 10만 명씩을 줄 테니 함곡관 수장(守將)인 몽무 장군과 협력하여 적을 일거에 섬멸하도록 하시오.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면 천하를 통일하는데 좋은 촉진제가 될 것이니 장군들은 분투노력해 주길 바라오.”
이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는 말투부터가 당당한 대왕이었다.
세 장수는 각각 10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함곡관으로 나가 삼면으로 무자비한 공격을 개시하였다. 연합군은 본래 전술과 병법이 각기 다른 군사들인지라 일사불란(一絲不亂)한 전법으로 배후에서 공격해 오는 진군을 막아내기는 역부족(力不足)이었다.
그리하여 창과 칼을 돌려 잡고 제각기 도망치기에 바빴다. 총사령관인 춘신군은 고군분투하였으나 진군의 공세가 워낙 거세 결국 전선에서 2백 여리나 후퇴하고 말았다.
결국 전쟁은 진군의 대승으로 끝났다.
진왕은 전선에서 보내온 승전보를 받고 크게 기뻐하며, 승상 여불위를 불러 말했다.
“5개국 연합군이 우리의 일격에 여지없이 무너졌으니 이제 천하에 우리를 당할 자 누가 있으리오. 천하를 통일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은데, 경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여불위는 너무도 엄청난 질문에 대답이 곤궁하였다.
천하 통일이란 선왕인 소양왕 때부터 수 십 년간 노력하였어도 못 이룬 꿈인데, 그날이 지금 눈앞에 다가왔다고 장담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 대답을 해야 옳단 말인가?
여불위로서는 연합군을 한번쯤 무찌른 것을 가지고 천하 통일과 직결시켜 생각한다는 것은 과대망상(誇大妄想)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답을 주저하고 있노라니 왕은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꾸짖듯이 다그쳐 물었다.
“승상은 왜 대답이 없으시오! 천하를 통일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되어서 대답을 안 하는 것이오?”
여불위는 순간 크게 당황하여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아, 아니옵니다. 대왕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인데, 무슨 일인들 불가능하겠사옵니까? 신(臣)은 다만, 천하 통일이 몇 달이면 가능할까? 그 점을 생각하던 중이었사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엉뚱한 대답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비위에 거슬리는 대답을 했다가는 목이 달아날 것만 같아서 무심중에 아첨의 말이 나왔던 것이다.
청년 왕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던지 별안간 통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몇 달이요? 하하하... 우리가 아무리 강하기로 몇 달 안으로 천하를 통일하기는 어려울 것이오. 천하를 통일하자면 아무리 줄잡아도 10년은 걸려야 할 것이오.”
“아, 아니옵니다. 대왕의 지략과 용기라면 천하를 통일하는데 무슨 10년이 걸리겠습니까?”
“하하하, 아무튼 고맙소.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나는 기어이 천하를 통일하고야 말 것이오.”
여불위는 어전을 물러나오면서 너무도 옹졸하고 비겁해진 자기 자신에 대한 환멸감을 금할 길이 없었다.
‘왜 나답지 못하게 이렇게도 비겁하고 옹졸한 인간이 되어버렸는가? 내 자식한테 애비라는 말조차 못하고, 그 앞에서 벌벌 떨기만 하고 있으니 어째서 내가 이렇게 못난 사내로 전락하고 만 것일까?’
따지고 보면 이처럼 비겁하게 된 원인은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 데 있는 것 같았다.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자리를 보존해 가려면, 왕 앞에서는 듣기 싫은 소리를 해서는 안 되는 비겁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권력과 영화의 이면에는 이처럼 비겁하고 옹졸한 생리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차라리 포의한사(布衣寒士)로 지내던 옛날이 그리운 생각조차 없지 않았다.
그러나 구종별배(驅從別陪)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집에 돌아오자, 꽃다운 시녀들이 문전에서부터 아양을 떨며 영접해 주는 것이 결코 싫지는 않았다. 아니 이런 상황을 영원히 즐기고 싶었다.
그러면서 여불위는 자기모순에 빠져 쓴웃음을 지으며, 자기 자신을 자위하였다.
※ 구종별배(驅從別陪) ☞ 구종(驅從) : 관원을 모시고 다니는 하인, 별배(別陪) : 벼슬아치 집에서 부리던 하인을 뜻하며, 이를 합쳐서 ‘구종별배’, 혹은 ‘별배구종’이라 함.
‘왕이란 인간이 아니고, 하나의 우상(偶像)인 것이다. 따라서 우상과 사람 사이에는 부자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왕을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우상에게는 오직 복종만이 있을 뿐이지!’
부귀영화의 맛은 아편과 같아서 한 번 중독되면 결코 헤어나지 못한다.
여불위는 그러한 진리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영화를 길이 누리고 싶은 욕망에서 자신을 정당화시키는데 급급했던 것이다.
- 제 17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