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실 자격

2026. 3. 31. 19:54좋은글

  술 마실 자격

 

 

놀랍게도 내 입술에

첫 술 을 댄 사람은 아버지였다. 

나는 언제 술을 처음 입에 대었을까? 

아버지는 식사를 할 때 꼭 반주를
했는데 거의 청주였다. 

옛날의 식기는 뚜껑이 있는 것이

많았고, 밥 주발은 반드시

뚜껑을 덮어야 했다.  

아버지가 밥상 앞에 앉으면

엄마나 내가 주발 뚜껑을

열어 청주 를 부었다.  알맞게

거냉이 된 술을 한 잔 맛있게

마시고 식사를 시작했다.   술이

맛있냐고 묻는 내게, 아버지는

뚜껑을 내밀며 마셔 보라고 했다.

다 마시고 한두방울 남은 청주가

내 입에 들어온 것이,

나의 첫 술이었다.  맛 없다고,

뭐 이런 것을 마시느냐고

투정대는 나를 보고 아버지는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술은 맛이 없디

어린 네가 술이 맛있으믄

어찌 되갔니  술은 어른의

음식이니끼니.  

니 엄마도 마시고

싶은데 아직까지 한 방울도

못 마시는 거이는

어른이  덜 된 탓인 거이야. 

남자건 여자건

다 술을 마실 수는 있는

거인데, 취해서 망종이 되는

인간은 자격 상실인기야 알간

그 뒤 이북의 친조부모가

돌아갔을 것 같은

시간이 흐른 뒤, 아버지는

명절과 음력 9월 9일에 제사를

지냈는데,나는 아버지 와 함께

음식을 만들고 음복까지 했다. 

성마른 남동생은 제사를 지내는

분위기를 몹시 싫어했고, 엄마도

그다지 마뜩치 않아 했다. 

아버지와 나는 제사를 지내며

이야기를 하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시간에 술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길고 긴 옛 이 야기를

다 들었고 같이 눈물 흘리고,같이

보고싶어 했다. 정말

친 조부모가 보고싶었다.

"아가...마리야,니래 없었으믄

이 아바디래 숨이

막혀 죽었을 거이야. 

우리 마리야래 이렇게

아바디 말을 다 들어주고,울어
주고,아바디는 이 천지에 내 딸래미

밖에 말할 데가 없구나야..."

아버지는 술을 마실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어떤 술자리에서 든지

술의 종류를 불문하고 마셨으나,

취중에 실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행동이 커지고,목소리가 커지고,

웃음이 많아지고 기분 좋은 상태로

우리 앞에서 엄마를 껴안고 입을

맞추는 모습이 전부였다. 

취해서 아내와 자식을 때리고

온갖 행패를 부리던 남자들이
많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수치스러운 언행을 가장 싫어했고,

취중의 실수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술자리에서 웃고 떠들었
으나 그 자리를 벗어나면,

걸음걸이와 행동이

평소와 다름없었다.

아버지가 몇 날을 동굴에 갇힌

곰이 되어 술만 마실 때가

가끔 있었는데, 그 때 황소

울음을 우는 것을

엄마와 나만 알았다.
아무도 말릴 수 없는

폭음은 실향의 고통이

더해진 날이었다. 
그런 날은 갑자기 찾아 왔고

아무도 아버지의

폭음을 말릴 수가
없었다.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술만 마시는 날이

몇 날이 지나면,엄마는
나에게 아버지에게

가 보라고 했다.  

그 폭음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나뿐임을 엄마는

알았다.  

고향 생각과 가족 생각으로
술을 마시는 아버지를

엄마는 무서워하기도 했고

약간 미워하기도 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술 냄새,담배 냄새,그외

기이한 냄새로 숨도 못 쉴 것

같은 방에 들어가서, 쓰러져 있는

아버지의 옆에 앉아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발을 닦으면서 가만히

노래를 불렀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젖는 뱃사공

물새 우는 강 언덕을 몇 번이나

부르고 나면 아버지는 몸을

일으켜 가만히 나를 껴안았다.

우리 아가..  우리 마리야...

마리야레  아바디 데리러 왔구나야. 

그렇디. 우리 마리야가 데리러

오면 가야디.  우리 마리야하고 가야디

그 숨 막히던, 방에서의 폭음과

칩거는 아버지만의 고향 방문이 었다. 

나는 고향의 땅에 머문 아버지를

마중 간 것이고, 그렇게 시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 아버지 로 되돌아왔고 엄마의

다정한 남편으로 돌아왔다.  

만약 그 폭음을 다른 곳에서 하고

울고 그랬다면, 사람들은 아버지를

주정뱅이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언제 나 자신의 집,안방에서

폭음을 했고 어느 누구도 몰랐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찾으면, 볼일보러

먼 곳에 갔노라고 엄마는 태연히 말했다.  

엄마에겐 진실이었다.

단 한 번도 아지버지의 그런 폭음이

무서운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고 싶었던

아버지의 고통을 지금도

다 알지 못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술을 마실,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 다.   그 고통을 이기고

자신을 흐트러지게 두지 않았기 때문에.

 

(권영심작가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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