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창의 순애보(殉愛譜) 제3편

2026. 2. 24. 08:06자유게시방

매창의 순애보(殉愛譜) 제3편

매창이 선조 6년(1573)에 태어나 광해군 2년(1610)까지 산것으로 기록이 분명한 것에 비해 홍랑은 그 생몰 연대가 불확실하다.

선조 때 함경도 홍원의 이름 난 예기(藝妓) 이자 재색을 겸비한 여류시인 홍랑(洪娘)은 기생으로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위치에 까지 올라갔다. 조선시대 최고의 명문가 라고 할 수있는 해주 최씨 문중산에 그녀의 무덤과 비석이 있으며, 그 문중에서는 지금까지도 해마다 시제와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기생으로는 유일하게 사대부의 족보에까지 올라간 홍랑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유교적 질서가 엄격했던 조선 시대에 천민의 신분으로 양반집 선산에 그녀의 유골이 묻혔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홍랑은 경성(鏡城) 관아의 관기였다. 비록 신분은 비천 했으나 문학적인 교양과 미모를 겸비했던 홍랑은 누구나 다 꺾을 수 있는 노류장화로 머물지 않았다. 교방(敎坊) 에서 각종 악기와 가무를 단련하면서도 문장과 서화 등 기예 익히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홍랑은 관아의 연회장 에서 흥을 돋우고 미색을 흘리는 여느 기생과는 달리 그 품성과 재주가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문학적 소양과 재주는 이미 양반 사대부나 유명한 시인 가객(歌客)들에 뒤지지를 않았으며, 일부 종사를 맹목적으로 실천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기생이지만 자신의 정절을 바쳐 사랑할 운명적인 만남을 꿈꾸면서 몸가짐을 함부로 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홍랑의 아름다운 재색과 지조는 마침내 그 당시 삼당시인(三唐詩人) 또는 팔문장(八文章)으로 명성이 높았던 고죽(孤竹) 최경창 (崔慶昌)을 만나면서 변하지 않을 뜨거운 사랑으로 발전하게 된다. 고죽(孤竹) 최경창 (崔慶昌1539년~1583년)이 함경 북평사(北評事)로 부임한 1573년 홍랑을 처음 만난 것으로 기록된것으로 보아 15~16세 정도 홍랑이 연상일 것으로 짐작 된다.

조선시대 기생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조선해어화사
에는 홍랑의 사랑에 관한 짧은 일화가 소개 되어 있다. 뛰어난 미모와 글재주를 지닌 홍랑은 12세때 어머니를 잃고 함경도 관북지방 홍원(洪原)의 관기로 들어간다.
영암군 구림마을에서 태어난 최경창은 탁월한 문장가 인데다 음률을 잘 알고, 악기를 다루는 재주 또한 뛰어
났던 인물인데 과거에 합격한 5년후 1573년(선조 6년)
에 경성 지방의 북도평사(北道評事:관찰사)로 부임하게 된다.

변방에 위치한 경성은 옛 부터 국방의 요지로 취급되는 대단히 중요한 군사지역 이었으므로 가족을 동반 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최경창은 이미 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오지중 오지인 경성에 머물러야 했다. 관기였기 때문에 관리와 만나는 일들이 자유로웠을 홍랑과 홀로 생활을 하던 최경창은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반해 운명적 사랑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