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향한 배신 감인가!

2025. 2. 25. 19:35자유게시방

누구를 향한 배신감인가!

 

주말에 떠나는 산행은 언제나 코흘리게 적 소풍날처럼 즐겁다.

가능한 한 주거지인 인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고픈 것이 나의 산행길인데 지지난주 오랜만에 가까운 북한산에 올랐다.

 

겨울 산행은 역시 시원해서 좋다.

푸르른 나뭇잎으로 가렸었던 숨겨진 모습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신난다.

 

백운대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하산을 하면서 발길이 급하다. 늘 그렇지만 하산 후에 마시는 한사발의 막걸리의 맛은 진정

산악인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그 무엇이다.

 

한참을 내려오다가 일행 중 한분이 복통이 왔노라고 배를 잡고 하소연을 한다. 산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 참으로 난감하다.

남자들이야 대충 처리를 한다고 하지만 여자분들은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절집이 있으니 그곳까지만 참자고 하고선 일행들은 발길을 재촉한다. 절집에 다다라서 요사체인 듯한

곳으로 발을 들여놓다가 그분과 나는 아연실색을 하고 말았다. 

 

커다란 개 두 마리가 우리에게 달라 드는데, 물론 목줄을 메긴 했지만 얼마나 줄이 길던지 우리 코앞에 까지 와서 악을

쓰면서 짖어대는데 혼비백산 했다.

 

그러자 비구니 스님 한 분이 문을 열고 나오셔서, 아니다... 아니지... 머리 깍은 여자가 나와서 개에게 뭐라고 뭐라고 하니까

개들이 조용하더니 '헥헥' 거리면서 우리를 노려보는 것이 무진장 기분이 상한다.

 

그 머리 깍은 여자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를 힐끔 처다 보더니 안채로 들어간다. 개들에게는 말도 잘하더구만 사람은 개만도

못해서 말을 하지 않는 건가. 참 기분 더럽고 웃긴다.

 

그 와중에도 우리 일행은 배가 아프다고 어떻게 해보라고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해서, 이번에는 부처님이 계시는

법당 옆으로 돌아 가보니 그곳에 작은 해우소가 하나 있어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더니 하이고야~~ 뭔 일이랍니까... !

화장실 문에 커다란 자물통이 뻔뻔스럽게 매달려 있다.

 

아! 이 배신감, 누구를 향한 배신감인가!

아~ 부처님 이런 더럽고 추잡한 곳에도 오시나이까... ?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밑으로 내려가는 잔뜩 실망한 그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소위 불자라고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중생이라고...

그러던 나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부끄러웠다.

 

언젠가 법정스님이 효봉 큰스님에게 들었다는 얘기가 문득 떠오른다.

큰스님이 젊은 시절 여름철 안거를 하기 위해 예전부터 말없는 언약이 지켜져 내려온다는 암자를 찾았다고 한다.

 

지대가 높고 인적이 미치지 않아서 스님들이 기도 정진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곳으로, 시월이면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이듬해 봄에 가서야 걷히는 곳이라고 한다.

 

스님이 도착한 그곳에는 소문대로 빈집에 양식과 장작이 쌓여 있고, 뒤뜰에 묻혀있는 독에는 김치가 가득 들어 있었다 하고,

해서 스님은 여름을 걱정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을에 그곳을 떠나오기 전에 다음에 올 스님을 위해 마을로 내려가 탁발을 해서 양식과 김장을 마련하고 땔감도

충분하게 마련해두고 다음에 오실분이 불편함이 없나 살펴보고 내려오셨다고 한다. 

 

지금은 비록 이끼 낀 전설처럼 들려오지만, 사람 사는 것이 그렇지는 못하다 해도 산중에서 개목에 쇠사슬 줄을 길게 매달아

시멘트 바닥과 쇠사슬이 부딪치는 그 '철커덩' 거리는 소리로 사람을 겁주고, 또 화장실 문에 커다란 자물통을 달아놓아야만

하는 건지. 그것도 부처님이 계시는 절집에서 말이다.

 

즐거운 산행길이 그날따라 왜 그리 발길이 무겁고 불자라는 것이 부끄럽기만 했던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그날의 일들이

벌써 수십 여일 이상이 지나갔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나를 괴롭힌다. 

 

배신감, 누구를 향한 배신감이였는지... !

 

-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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