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의 이 간 책

2025. 2. 23. 16:17자유게시방

조조의 이간책

저잣거리에서 30리나 떨어진 노루목 고개 아래,

조그만 주막에 가무잡잡한 젊은이가 당나귀를 타고 와서 다리를 살짝 절며 안마당 평상에 앉았다.

​허우대가 번듯한 말잡이가 당나귀를 주막집 삽짝 밖 감나무에 고삐를 매어 두고 뒤따라 들어왔다.

개다리소반에 국밥을 들고 나온 늙은 주모가 씩 웃었다.

​‘당나귀 탄 주인과 고삐 잡은 하인이 바뀌었으면 어울릴 건데….’

겸상을 하라고 한상에 국밥 두그릇을 올렸는데 말잡이 하인이 얼른 국밥 그릇을 들어 평상 바닥에 내려놓았다.

국밥을 비우고 나서 당나귀 주인이 주모 손바닥에 밥값을 놓자

늙은 주모가 깜짝 놀라 두 눈을 왕방울만 하게 떴다.

밥값은 삼십전인데 무려 서른냥을 쥐어준 것이다.

늙은 주모를 앞세워 안방으로 들어간 젊은이는 주모와 머리를 맞대고 한참이나 소근대더니

엷은 미소를 띤 채 당나귀를 타고 떠났다.

그로부터 며칠 후.

저잣거리 요릿집에 당나귀를 탔던 볼품없는 젊은이와 비단 두루마기를 입은 기품 있는 젊은이 둘이 마주 앉았다.

​“소인 조조라 합니다.”

먼저 당나귀 주인이 인사했다.

“이 초시라 불러주시오.

그런데 나를 만나자는 이유가 뭐요?”

조조가 약주 한잔을 들이켠 뒤 말을 꺼냈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겠소.

훈장님의 따님인 연화와 혼약을 맺었지요?”

이 초시가 깜짝 놀라자 조조는 헛기침을 하고선 싸늘하게 내뱉었다.

“연화는 내 여자요.”

이 초시가 벌떡 일어나 술잔으로 그를 내리치려 하자 조조는 눈도 깜짝이지 않은 채 대꾸했다.

​“연화에게 물어보시오.

오른쪽 사타구니에 검은 점이 있느냐고!”

이 초시는 털썩 주저앉아 혼이 빠졌고, 조조는 발딱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훈장님 외동딸, 천하미인 연화와 이 대감 둘째아들 이 초시의 혼약은 그렇게 깨지고 말았다.

연화가 치마를 덮어쓰고 저수지에 뛰어들었지만 조조의 말잡이 바우가 건져내 목숨을 맘대로

끊을 수도 없게 되었다.

정말로 조조는 연화와 정분을 나눴는가?

아니다.

18년 전,

훈장님의 부인이 연화를 낳다가 죽는 바람에 후처가 들어왔다.

그러나 그녀는 행실이 좋지 않아 1년 만에 쫓겨났고,

이리저리 색줏집을 떠돌다가 노루목의 주막집 주모가 됐다.

조조는 그날 주모에게 돈을 듬뿍 쥐어주고 연화의 신체 특징을 물었던 것이다.

결국 연화는 조조의 신부가 되었다.

스물한살 조식을 뭇사람들은 조조라고 불렀고, 그 자신도 그렇게 불리는 걸 좋아했다.

그는 주역을 열두번 읽었고, 삼국지도 서른여섯번 읽었다고 소문이 났다.

누군가 그에게 정말 그렇게 읽었느냐고 물어보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다리를 절룩거린다.

그가 당나귀를 타고 다니는 건 편하게 가기 위해서라기보다 다리 저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기 위함이다.

3년 전 장에서 당나귀를 사온 날,

조조는 서당 친구인 동갑내기 칠수를 불렀다.

늙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사는 칠수는 6척 장신에 어깨가 떡 벌어지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호남이다.

“칠수야, 요즘 어떻게 지내냐?”

​“나야 뭐 허구한 날 화전 밭뙈기에 매달려 입에 겨우 풀칠하지 뭐.”

“너 힘들게 일하지 말고 나를 좀 도와주지 않을래?

한달에 오십냥 줄게.”

​머슴들 1년 세경이 120냥밖에 안되는데 한달에 50냥이라니.

 

그런데 조건이 있었다.

친구지간은 허물고 주종관계를 요구했다.

이후 칠수는 이름도 ‘바우’로 바꾸고, 조조를 ‘나으리’라고 불렀다.

조조의 돈벌이 수단은 간사한 꾀였다.

사악한 짓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비열하고 음흉한 놈들이 조조를 찾아오면 기상천외한 술수로 일을

성사시켜 주고 거금을 받는 것이다.

조조의 명성은 널리 퍼졌다.

바우의 홀어머니가 저승길로 갔는데 조조는 문상도 오지 않았다.

50리나 떨어진 곳에서 오백석 부자의 기둥뿌리를 빼려는 큰 음모를 진두지휘하러 조조가

그들이 보낸 가마를 타고 그곳으로 갔다가 닷새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안방에 연화도 없고, 바우도 없었다.

다락 깊숙이 숨겨둔 금은보화 궤짝도 없어졌다.

조조에게 머리를 쪼개는 두통이 찾아왔다.

백약이 무효!

1년도 못 가 그는 두통으로 죽고 말았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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