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 출장 기행 문 (26)
2022. 5. 28. 07:22ㆍ아프리카 출장 기행 문
★ 아프리카 출장 기행문 (26)
아침 동이 트려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새벽 4시경(한국 시간 오전 10시) 부지런한 K사장은 일찍 일어나 우리 일행을 깨우러 다녔다.
실은 나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설치다시피 했기 때문에 이미 깨어 있는 상태로 침대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던 중이었다.
간밤의 잠자리는 약간 후텁지근한 기온이었지만 그래도 혹시 감기라도 걸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불을 덮고 잔 데다 모든 것이 생소해서 다소 불안감이 작용했던 까닭에 더욱 잠을 설쳤다.
발전기 가동은 밤 11시경에 멈췄고, 에어컨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문을 열어놓고 자고 싶었지만 각종 벌레와 모기가 극성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혹시 모를 야영까지 할 각오로 든든하게 짐을 챙겨 새벽 5시에 출발했다.
K사장은 우리 일행이 아침식사가 당기지 않아서 먹지 못한 빵을 이동 중에라도 혹시 배가 고프면 먹을 수 있도록 짐 속에 챙겨 넣었다.
그는 오랜 아프리카 생활에서 얻은 경험이 있어서인지 항상 유비무환 정신으로 임했다.
목적지는 1차 금광지역을 조사하기로 되어 있는 카 포에타(Kapoeta) 도시 인근 지역으로 자동차 편으로 약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역시 이동차량은 무장군인이 탄 선도차가 앞장을 섰고, 나는 쿨 총리와 함께 중간차량에 탑승했다.
뒤 차량에는 K사장 일행과 촐 재경부 장관 등이 탔다.
새벽 공기는 시원하고 정말 맑았다.
이곳은 어디를 가든지 비포장 길로 앞에서도 기술한 바와 같이 도로라기보다 우리나라의 우마차 길 정도에 불과했다.
이러한 길은 평원 위에 끝없이 이어졌고, 도무지 산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어쩌다 우기 철 홍수 비에 깎여 내려간 웅덩이진 곳과 말라붙은 하천바닥이 간헐적으로 나타날 뿐이었다.
이러한 길을 자동차는 덜커덩거리면서 불안스럽게 달렸다.
때로는 바퀴가 진흙탕 속에 빠져 모두 내려 밀고 당기는 등 고생의 악순환이었다.
그러다 보니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심신이 지치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 중 L 이사가 고통을 호소해 왔다.
그는 몸살이 난 것처럼 아프고 열이 나며 식은땀을 흘렸다.
차라리 그를 캠프에 두고 올 것을 너무 무리하게 강행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되돌아갔다가 다시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나는 챙겨 온 비상의약품을 꺼내 L 이사에게 건네주며 복용하라고 했다.
약품은 내가 평상시 잘 알고 지내는 병원의 수간호사 한 분이 충분한 양을 아주 꼼꼼하게 챙겨주어 가져왔다.
약품 병에 어디가 아플 때 어떤 약을 얼마만큼 같이 복용하라는 것까지 스티커에 기록해주어서 편리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보기 드물게 암반이 노출되어 있는 언덕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곳에 잠시 머물러 지질을 조사해보기로 하고, 차에서 내려 K기술사와 함께 지질과 암상(岩床)을 살펴보았다.
광물을 함유하고 있을 만한 조건인지를 파악하고 싶어서였다.
특히 금광상을 형성할만한 지질조건과 암상인지를 살펴보았으나 신통치 않아 보였다.
그런데도 남부 수단 정부 사람들은 암석의 색깔이 특이하거나 이상하게 생긴 돌이라면 무조건 광물성을 포함하고 있는 암석이라고 믿으면서 이것저것 들고 와서 묻기에 바빴다.
이제는 엊저녁에 말했던 전 자원부 장관의 이야기에 서서히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약 3시간 정도 달려와 드디어 카 포에타로 들어가기 전에 금을 채굴하고 있다는 첫 번째 어느 장소로 들어가는 길목에 도착했다.
이 지역의 이름은 나루스(Narus)라고 했다.
자동차가 좁은 소로 길과 나무를 밟고 지나면서까지 조금이라도 더 갈 수 있는 장소까지 들어간 다음 차에서 내려 약 20분 정도 더 걸어갔다.
걸어가는 길목 주위에서 원주민들이 무엇인가를 채굴한 흔적(채굴적)은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금광 채굴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주변 풍경을 캠코더(당시 200만 화소 SONY 제품)에 담고 있는 나에게 자원부 장관이 ‘디지털 캠코더냐’고 물으면서 화인 더 모니터에 영상이 보이는 것을 보고 신기해했다.
뙤약볕에 날이 더워 진땀을 흘리면서 도착한 장소에 원주민 한 사람이 토굴을 파고 있었다.
그는 토굴 속에서 정말로 금을 찾고 있었다.
토굴의 크기는 자신의 몸이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게 파 들어가고 있었는데, 호미 같이 생긴 기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해서 하루에 금을 얼마나 캐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지 대답은 하지 않고 눈만 깜빡거렸다.
이곳의 원주민들은 99% 문맹률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해서 자신들만이 통할 수 있는 토속어를 사용했고, 영어 등 외래어는 알지 못했다.
- 27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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