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3화

2021. 3. 7. 09:02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제 3화

☞ 여불위, 자초(子楚)를 만나다.

그로부터 이틀 후 여불위는 진나라의 왕손인 자초(子楚)를 만나보기 위한 구실로 태산명옥(太山名玉) 한 쌍을 선물로 들고 대장군 공손건의 집을 찾았다.
공손건은 여불위를 반갑게 맞으면서 말했다.

“그동안 어디를 갔었기에 얼굴을 보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나?”
“장사 차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니 장군님께 자주 문안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가지고 온 태산명옥(太山名玉) 한 쌍을 두 손으로 받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것은 초나라에서 어렵게 구해 온 명옥이온데, 빛깔과 광채가 영롱한 구슬이옵니다. 장군전에 선물로 가져왔으니 취하여 주시옵소서.”
공손건은 명옥을 이리 저리 살펴보더니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사람아! 자네와 나 사이에 뭐 이런 것을...”
하며, 이내 술상을 내오게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을 외국의 한 유명한 성직자의 말이 떠오른다.
‘이 세상에 뇌물로 넘어가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가격이 아니라 그 가치가 문제이다.’
말씀인 즉, 금전이나 황금에 넘어가는 자(者)는 허접한 하수(下手)지만 나라를 통째로 바친다면 차원이 달라진다. 고수(高手)라고 할까?

여불위는 술이 몇 순배 돌아가자 공손건에게 짐짓 거짓말을 꾸며서 물어보았다.

“조금 전에 장군 댁으로 들어오다가 문간에서 낯선 청년 하나를 만났사온데, 그 청년은 누구이옵니까?”
공손건은 일순 어리둥절하다가 금세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아, 자초를 만났던 모양이구만.”
“자초요? 자초가 누구이옵니까?”
“그 청년은 진나라 왕손인데, 우리나라에 볼모로 잡혀 와서 지금은 내 집에 유숙하고 있다네.”
“진나라 왕손이라면 저도 한 번 만나 볼 수 없겠습니까?”
“그건 어렵지 않은 일일세. 지금 곧 이리로 불러올 테니 만나 보도록 하게.”
공손건이 하인에게 일러 자초를 불렀는데, 방안으로 들어오는 20세 가량의 자초는 체격이 왜소해 보였으나 얼굴이 맑고 눈동자가 또렷하고, 제법 똑똑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자초는 볼모로 잡혀온 처지인지라 행색이 초췌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런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순간 자초의 행색과 얼굴을 살펴 본 여불위는,
‘이만한 청년이라면 사람 장사를 한 번 시작해보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자초에게 술잔을 공손히 내밀었다.

“전하께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잠깐, 아주 잠깐, 여불위의 ‘전하’라는 호칭에 몸을 꿈틀하고 반응한 자초는 금세 평온한 얼굴로,

“고맙소!”
하고, 술잔을 받아 스스럼없이 마셨다.

공손건은 그 광경을 보고,

“이 사람아! 천하의 거상(巨商)인 자네가 볼모로 잡혀와 있는 청년에게 그토록 머리를 숙일 건 없지 않은가?”
“아니옵니다. 아무리 연배가 어리셔도 대국(大國)의 왕손(王孫)에 대한 예의만은 분명하게 지켜야 할 것이옵니다.”
여불위가 이렇게 말을 하자, 자초는 제법 근엄한 낯빛으로 여불위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적국에 볼모로 잡혀와 운신(運身)이 자유롭지 못한 처지의 자초로서는 여불위의 깍듯한 공대(恭待)를 고마워할 것이기에 여불위는 그런 사정을 십분 이용하여 자초를 깍듯이 받들어 모셨다.

얼마 후 공손건이 잠시 자리를 뜨자, 여불위는 얼른 자초에게 자기 집 약도를 그린 종이를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하께 긴히 여쭙고 싶은 말씀이 있사오니 조만간 저의 집으로 한 번 놀러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자초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여불위가 건네 준 종이를 들여다보며 고개만 묵묵히 끄덕였다.

여불위의 집은 조나라의 국도(國都)인 한단에서도 번화가에 있는 호화주택이었다.
여불위는 집으로 돌아온 그날부터 진(秦)나라 왕실(王室)의 내막을 소상하게 알아보았다.

진나라의 현왕(現王)인 소양왕(昭襄王)은 병중에 있어서 오래되지 않아 죽게 될 형편이었다.
그가 죽게 되면 태자(太子)인 안국군(安國君)이 왕위를 물려받게 될 텐데, 태자에게는 여러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 무려 스물세 명이나 있었고, 자초는 그중의 한 명이었다.

그러나 정작 태자비(太子妃)인 화양 부인(華陽婦人)의 몸에서 태어난 적통(嫡統)은 하나도 없었으므로 후일 안국군 이후 스물세 명의 서자(庶子) 중에서 누가 왕통(王統)을 계승하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옳거니! 이제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자초를 손아귀에 넣어 가지고, 그를 적사자(嫡嗣子)로 만들어 왕위를 물려받게 하면 나는 대번에 진나라의 중신이 될 수 있을 게 아닌가?’
진 왕실의 유동적인 상태가 여불위에게는 크게 고무적(鼓舞的)이었다.

활약 여하에 따라서는 자초를 왕통 계승자로 만들 수 있는 소지가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초를 그렇게 만드는 데는 몇 가지 불리한 조건도 있었다.
첫째, 자초의 생모는 자초를 낳은 뒤 태자에게 미움을 사서 대궐 밖으로 쫓겨났다는 사실이었고,
둘째, 자초 자신이 이곳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런 정도로 실망할 여불위는 아니었다.

객줏집에서 만났던 70객 노인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목표를 가지고 노력 여하에 따라서 세상에 전혀 불가능한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여불위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자초가 자기 집에 찾아와 주기만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자초가 여불위의 집으로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10여 일이 지난 후였다.

- 제 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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