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4화
2021. 3. 8. 08:23ㆍ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제 4화
☞ 자초의 대망(大望)
여불위는 정성껏 술상을 마련하고, 자초와 단둘이 마주 앉아 융숭히 대접하며 물었다.
“전하(殿下)는 지금 비록 이 나라에 볼모로 잡혀와 계시기는 하오나 언젠가는 고국에 돌아가셔서 왕통(王統)을 이어받으셔야 할 것이 아니옵니까?”
자초가 쓸쓸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언제 고국에 돌아갈 수가 있게 될지는 아득한 일이오. 게다가 나에게는 형제가 스물두 명이나 있어서 왕위 계승이 나에게 돌아오게 될지도 알 수가 없는 일이오.”
“전하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형제가 비록 스물두 명이나 더 있다고 하지만 태자비인 화양 부인의 친아들은 한 명도 없지 않사옵니까? 하오니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전하께서도 얼마든지 왕위 계승자가 될 수 있는 것이옵니다. 전하께오서 만약 그런 뜻이 계시다면 제가 사력(死力)을 다해 전하를 도와 드리도록 하겠사옵니다.”
자초도 평소부터 생각해 온 바가 있었던지 여불위의 부추기는 말을 듣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왕자로 태어난 몸이니 어찌 왕위에 무관심할 수가 있겠소. 그러나 나는 이곳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와 있는 몸, 언제 고국에 돌아가게 될지 그것부터가 문제요.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다오.”
여불위는 자초가 大望(대망)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되자, 크게 기뻐했다.
“전하께오서 고국에 돌아가시는 것은 수단 여하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옵고,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은 전하께서 화양 부인에게 적사자로 인정받으시는 것이옵니다. 그렇게 되면 왕위 계승권은 자동으로 전하께 돌아오게 될 것이옵니다.”
“나도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오. 그러나 여기에 있어 가지고는 어떠한 노력도 불가능한 일이오.”
“자고로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사옵니다. 더구나 이런 일에는 깊은 계략과 많은 자금이 필요하므로 아무나 나설 수가 없는 일이옵니다. 그러나 전하께오서 용납해 주신다면 제가 모든 지략(智略)과 전 재산을 기울여 전하께서 왕위를 이어받으실 수 있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그러자면 대인(大人)이 진나라에 직접 다녀와야 할 게 아니오?”
“물론이지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직접 뛰어들어야 합니다.”
자초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던지,
“도대체 대인은 무엇 때문에 나를 위해 그토록 애를 쓰겠다는 것이오?”
하고 묻는 것이었다.
여불위는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전하께서 잘되셔야만 저도 잘 될 것이 아니옵니까? 전하를 위하는 일이 곧 제 자신을 위하는 일이옵니다. 전하께서 왕위에 오르게 되시면 설마 저를 모르신다고 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자초는 그제서야 납득이 가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만약 나를 왕위에 오르게만 해 준다면 대인을 재상(宰相)에 봉할 뿐만 아니라, 대대손손 부귀와 영화를 누리도록 해 드리겠소이다.”
“황감하옵니다. 그 말씀 꼭 잊지 마시옵기를 바라옵니다.”
그리고 여불위는 현금으로 1천 냥을 자초에게 선뜻 내어주며 이런 부탁을 하였다.
“그러면 저는 일간 진나라로 가서 전하의 귀국 후의 일에 대해서 모종의 지략을 펼치고 돌아올 터 이온즉, 전하께서는 이 돈을 가지고 제가 없는 사이에 이 나라의 귀인(貴人)들과 친교를 깊이 맺어 두도록 하시옵소서. 앞으로 큰일을 도모하실 때 조나라는 전하의 적국이 되겠지만, 이 나라의 귀인들과의 친분을 두텁게 해 둘 필요가 분명히 있사옵니다.”
“알겠소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 일이 성공하면 대인의 은공은 죽도록 잊지 않겠소.”
두 사람의 굳은 언약이 성립되자 여불위는 진나라로 떠나기 위해 그날부터 진귀한 보물을 추리며 모으고 사들였다.
큰일을 도모하려면 많은 돈과 귀물을 아낌없이 써야 하기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를 하는 데는 쩐(錢)이 들기 마련이다.
소위 정치자금이 그것!
허나 그 쩐을 누구에게서 어떻게 조달하고 준비하는가에 따라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법이라...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쩐’에 관한 일을 보아도 그것이 자칫 그 사람의 정치생명이 달려있음이라...
- 제 5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