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5화 소설
2021. 3. 9. 08:31ㆍ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제 5화
☞ 사람 장사 성공 전략
자초(子楚)를 화양부인의 적사자(嫡嗣者)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운 여불위가 진나라의 국도(國都)인 함양(咸陽)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달포가 지난 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대궐에 사는 태자비(太子妃) 화양부인을 직접 만나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함양에는 평소부터 상거래(商去來)를 해오던 정자장(鄭子莊)이라는 거상(巨商)이자 각별한 친구가 있었다.
여불위는 정자장을 찾아가 보석을 선물로 주며 말했다.
“내가 조(趙)나라에 볼모로 잡혀와 있는 자초 공자의 밀서(密書)를 은밀히 가지고 태자비를 만나 뵈러 왔는데, 어떡하면 화양부인을 만나 뵐 수가 있겠소?”
정자장이 대답하는데,
“그건 어렵지 않은 일이오. 화양부인의 남동생인 양천군(陽泉君)이 나와는 막역한 친구이니 그 친구에게 부탁하면 화양부인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것이오. 당신이 꼭 필요하다면, 내일이라도 양천군을 소개해 드리리다.”
이리하여 양천군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여불위는 양천군에게 자기를 소개하고, 곤륜산에서 나온 백옥(白玉 ) 한 쌍을 선물로 내밀며 말했다.
“저는 자초 공자의 밀명을 받고, 태자비를 만나 뵈러 왔사옵니다.”
“자초 공자가 무슨 일로 당신더러 태자비를 만나 뵈라 하더란 말이오?”
“밀서를 써 주시면서 아무도 모르게 태자비께 직접 전하고 오라는 분부셨습니다.”
“태자비(太子妃)께 밀서를 전해달라구?”
양천군은 고개를 기울여 보이며,
“당신은 자초 공자하고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사이요?”
하고 묻는다.
“자초 공자는 불우한 처지에 계신 관계로 틈만 나시면 저희 집에 놀러 오셔서 저를 형제처럼 믿고 항상 자기 신세를 개탄하시옵는데, 공자께서 자모(慈母)이신 화양부인을 사모하는 효성은 그야말로 눈물겹도록 간절하시옵니다. 모르긴 모르되, 밀서의 내용도 아마 그런 실정을 토로하신 글이 아닌가 싶사옵니다.”
“음... 그래요? 그런 편지를 가지고 왔다면 내일쯤 태자비를 한 번 만나게 해드리지요.”
여불위는 그 기회를 이용해 이렇게 물어 보았다.
“화양부인에게는 아드님이 몇 분이나 계시옵니까?”
“왕자가 많기는 하지만 당신이 낳은 아들은 한 명도 없다오.”
그 말에 여불위는 짐짓 놀라 보이며 말했다.
“친아들이 없으시다면 노후를 누구에게 의탁하실 것이옵니까? 지금이라도 현명한 왕자 한 분을 적사자(嫡嗣子 : 본처가 낳은 아이 또는 맏아들이라는 뜻이 있으나 여기서 자초는 화양부인의 아들도 아니고 맏아들도 아니므로 또 다른 뜻인 ‘대를 이을 사람’이 적당하겠다)로 선정하시어 노후를 대비하셔야 하실 것이옵니다.”
양천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 역시 그 문제 때문에 속으로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오.”
여불위는 내친김에 이런 말을 하였다.
“제가 자초 공자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자초 공자는 화양부인을 향한 효성이 하도 극진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화양부인은 나의 생모는 아니시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생모를 모르고 화양 부인 품속에서 자라 왔기 때문에 내게는 화양 부인이야말로 생모 이상으로 고마우신 어머님이라오.’하고 말씀하시면서 굵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제가 알기에 효성이 이토록 지극한 자초 공자를 제쳐 놓고 다른 아드님을 적사자로 선정하신다면, 먼 훗날 화양부인의 태후(太后) 지위도 다른 분에게 빼앗길 염려가 있는 것이 아니옵니까?”
양천군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내일 태자비를 만나게 해 드릴 테니 편지와 더불어 자세한 사정을 직접 말씀드리도록 하시오.”
다음날 여불위는 양천군과 함께 대궐로 들어가 태자비 화양 부인을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여불위는 화양부인께 큰절을 올리고 야명주(夜明珠), 조안주(照顔珠), 온량잔(溫凉盞) 등의 진귀한 선물과 함께 자초의 편지를 내 놓으며 품했다.
“이 편지와 선물은 모두 자초 공자(子楚 公子)께서 어머님께 전해달라고 하신 것이옵니다.”
화양부인은 양천군을 통해 대강 말을 들은지라 편지와 선물을 받으며 눈물부터 흘렸다.
“남의 나라에 볼모로 잡혀 가 있는 어린 자초가 이 에미를 그토록 그리워하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소이다. 이즈음 자초의 건강은 어떠하오?”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오나 그보다도 어머님을 그리워하시는 심정으로 하루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으시옵니다.”
“그런 고생 중에도 나를 잊지 않고 이런 편지와 선물까지 보내 주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르겠구려.”
화양부인은 너무도 감격스러워 남편인 안국군(安國君)을 그 자리에다 모셔다가 여불위를 소개하며 말했다.
“자초가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 가 있으면서도 이런 편지와 선물까지 보냈으니 얼마나 기특한 일입니까?”
태자 안국군도 아내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무슨 사연을 보냈는지 어서 편지를 뜯어보오.”
말할 것도 없이 그 편지는 여불위가 꾸며 쓴 내용이었다.
자초가 보낸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불초자(不肖子) 삼가 목욕재계하고 모친 전에 글을 올리옵니다.
불초자는 자애로우신 양친의 슬하를 떠난 이후로 부모님을 그리는 마음에 하루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날이 없사옵니다.
밤마다 꿈속에서는 부모님을 반갑게 만나 뵈오나 깨고 나면 운산(雲山)이 첩첩(疊疊)한 타국 멀리 적국(敵國)이어서 그때마다 눈앞이 캄캄해 올 뿐이옵니다.
제가 만약 새였다면 날아서라도 부모님을 만나 가 뵈오련만 날개가 없어 오직 눈물만 흘릴 뿐이옵니다...”
화양 부인은 여기까지 읽다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었다.
태자 안국군도 아들에 대한 측은지심을 금할 길이 없어 그 역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다음을 어서 읽어 보오.”
화양 부인은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편지를 계속해 읽었다.
“... 소자, 몸은 비록 타국에 잡혀 와 있사오나 마음으로는 고국을 생각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사옵니다. 더구나 저를 정성으로 길러 주신 아버님 어머님께 아무런 효도도 못하는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질 듯이 괴롭사옵니다. 소자가 비록 하씨(夏氏)의 몸에서 태어났사오나 어머님께서는 생모의 얼굴조차 모르는 저를 어렸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친자식과 추호도 다름없이 자애롭게 길러주셨기 때문에 어머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갚지 못함이 더욱 괴롭고 슬프옵니다.
이제 불효막심한 죄를 만 분의 일이라도 씻고자 야명주와 조안주, 온량잔을 구해 보내드리오니 어머님은 소자를 만난 듯이 받아 주옵시고, 아버님께서는 온량잔으로 약주를 드실 때마다 멀리 있는 소자를 생각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아버님께서는 후일에 왕위에 오르시거든 부디 만백성들에게 선정(善政)을 베푸시어 온 천하가 우러러 모시는 성상(聖上)이 되어 주시옵기를 멀리서 비옵니다.
끝으로 이 편지를 가지고 가는 ‘여불위(呂不韋)’라는 사람은 조(趙)나라의 유명한 거상(巨商)이온데, 소자를 물심양면으로 끔찍하게 도와주는 소자의 은인이오니 양친께서는 추호도 의심치 마시고 친절히 대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화양 부인은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껴 울기만 하였다.
안국군도 눈물을 닦으며 처남인 양천군에게 묻는다.
“자초를 본국으로 데려 올 무슨 방도가 없을까?”
양천군은 그 말을 받아 여불위에게 묻는다.
“당신은 유명한 거상이라고 하니까, 무슨 일에나 수완이 대단할 것이 아니오? 당신의 수완으로 자초를 여기까지 데려다 줄 수는 없겠소?”
그러자 안국군과 화양부인 내외는 약속이나 한 듯이 여불위에게 사정하듯 말했다.
“그대가 자초를 그처럼 도와주고 있다니 이왕이면 그 애를 본국으로 데려다 줄 수는 없겠소?
만약 그렇게 해 준다면 그 은공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여불위는 한참 동안 생각해 보는 듯 하다가 아뢰었다.
“자초 공자를 구출해올 방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생명의 위험이 따르옵니다. 그러므로 자초 공자를 구출하여 무겁게 쓰실 거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을 바에는 깨끗이 단념하시는 것이 좋으실 것이옵니다.”
그 말을 듣고 양천군이 즉석에서 반문하였다.
“무겁게 쓴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말이오?”
여불위가 대답했다.
“무겁게 쓰신다는 말씀은 자초 공자를 구출한 다음 적사자로 삼으시겠다는 뜻을 말씀드린 것이옵니다. 그처럼 무겁게 쓰실 생각이 없으시다면 막대한 재물과 목숨을 건 모험을 무릅써가며 무리하게 구출해 오실 필요가 없을 것이옵니다.”
그 말이 나오자 양천군이 화양부인을 바라보며 묻는다.
“누님께서는 친아들이 없으신 관계로 어차피 누군가를 적사자로 선정해 놓으셔야 할 형편이오니 이왕이면 효성이 지극한 자초를 적사자로 결정하시는 것이 어떠하시겠습니까?”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화양 부인은 남편인 안국군에게 말한다.
“이 기회에 자초를 적사자로 삼아 장차 그 애로 하여금 왕통(王統)을 계승하게 하면 어떠하겠나이까?”
안국군은 자초에 대한 애정이 새삼스러운지라 즉석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자초는 본디 영민한 아이니까 부인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려.”
그리고 이번에는 여불위에게 말한다.
“자초를 데려다 주기만 하면 그 애를 적사자로 삼을 터인즉, 수고스러운 대로 그대가 그 애를 꼭 좀 구출해주시오.”
그러나 여불위는 경솔하게 응낙하지 않았다.
“자초 공자를 기어이 적사자로 삼으시겠다면 제가 사재(私財)를 다 털어서라도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증표(證標)도 없이 무엇을 믿고 그런 모험을 감행할 수 있겠사옵니까?”
화양부인은 그 말을 듣자마자, 자신의 머리에 꽂혀 있는 옥비녀를 뽑더니 그 옥비녀를 둘로 부러뜨려 그 중에 하나를 여불위에게 내밀며 말했다.
“우리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내 옥비녀의 반쪽을 증표로 드릴 것이니 어떤 일이 있어도 자초를 구출해다 주시오. 내 태자비의 몸으로 평소에 애용하던 옥비녀의 반쪽을 증표로 드렸으니 어찌 후일에 모르겠노라 할 수 있으리오.”
여불위는 두 번 절을 하고, 증표를 두 손으로 받아들며 말한다.
“황공하옵신 말씀에 감동할 따름입니다. 소생 여불위, 신명을 받쳐 기필코 4~5년 안으로 자초 공자를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자초 공자를 모셔 오기 전에 한 가지 부탁 말씀이 있사옵니다.”
이번에는 안국군이 물었다.
“그것이 무엇이오?”
“자초 공자를 모셔오게 되면 미리 알려 드릴 것이오니 그때에는 국경 지대(國境地帶)에 자초 공자를 호위할 군사를 미리 대기시켜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경을 무사히 넘어오기 어려울지 모르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미리 알려주기만 하면 군사는 충분히 대기시켜 놓을 테니 행여 실수가 없도록 만전을 기해주기 바라오.”
그리고 안국군은 여불위에게 많은 금품까지 내려주었다.
이리하여 여불위가 진나라를 방문한 1단계 큰 목표는 성공적으로 달성되었다.
- 제 6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