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방랑기 61화

2020. 10. 11. 11:35김삿갓 방랑기


시인 김삿갓 방랑기 061화

[오얏나무 이씨조선, 한양의 풍수와 인심]

참담한 가슴을 안고 남한산성을 내려온 김삿갓은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한양으로 향했다.
이렇게 며칠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봄도 무르익어 이집 저집 담장마다 복사꽃과 오얏나무 꽃이 만발해 있었다.
※ 註 : 잠깐! 현재 개정된 표준어에는 ‘오얏나무’를 쓰지 않고, ‘자두나무’로 쓰고 있으나 여기서는 김삿갓의 옛글이라 그대로 씁니다. 참고 : 국립국어원 발행 ‘표준국어대사전’

오얏나무는 이씨조선과 인연이 깊다.
김삿갓은 李씨를 뜻하는 성씨가 “오얏나무 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 말엽 공민왕 때, 당시 한양 땅에는 난데없이 오얏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며 꽃을 피웠다.
누가 일부러 심은 것도 아닌데, 이같이 오얏나무가 무성하더니 해가 갈수록 그 숫자가 차고 넘쳤다.

“이상하다...”
모두가 이렇게 여기고 있을 때, 어떤 술사(術士)가 이를 보고 장차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한양 땅에서 크게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 또 이런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점점 퍼져 나가게 되었고, 급기야 공민왕의 귀에까지 백성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이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공민왕은 그런 소문을 듣고 크게 걱정하며, 민심을 되돌리는 조치로 송도에서 벌리사(伐李使)를 보내 한양 땅에 무성히 자라고 있는 오얏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리게 하였다.
그러나 오얏나무는 웬일인지 베고 또 베어내도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무성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결국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새 나라를 일으켜 송도에서 천도하여 이곳 오얏나무가 무성한 한양에 새로운 도읍지를 정하였으니 한 나라의 흥망이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운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광나루를 건너온 김삿갓이 한양 도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흥인지문(興仁之門, 東大門)이나 수구문(水口門, 光熙門)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시 수구문으로 불리는 광희문은 한양 장안에서 죽은 송장이 나가는 유일한 문이었다.
그러나 남달리 유난스러운 김삿갓은 남들이 다니기 꺼리는 수구문을 거리낌 없이 택하여 도성에 입성하였다.

이렇게 장안에 들어서니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즐비하고,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길을 오가며 사람들끼리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복잡하였다.

“사람도 많고, 집도 크고 많구나!”
김삿갓은 처음 보는 낯선 도시의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게다가 시장이란 곳에서는 오만가지 장사꾼들이 저마다 목판을 깔아놓고 물건을 팔고 있는데, 지나는 누구라도 붙잡고,

“싸구려~ 싸구려, 이야~ 기가 막히게 좋은 호박이 나왔어요!”
“동경 사시오, 동경(銅鏡)~ 노친네 새치도 잘 보고 뽑을 수 있고, 규중처녀 모양새도 다듬는 데는 동경이 최고요!”
하며, 호객(呼客)을 일삼는다.

김삿갓은 전국 이곳저곳의 시장판을 다녀 보았으나 한양 저자거리처럼 장사꾼들이 요란스럽게 떠드는 곳은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를 도대체 알아들을 길이 없었다.

“헛참, 조선 제일의 한양에서도 사람들이 먹고 살기가 어려운 모양이군!”
김삿갓은 종로 육의전(六矣廛) 거리를 지나 남산으로 올라갔다.
이곳으로 오른 까닭은 한양 도성의 면면을 살펴 수학(修學)할 때 읽었던 한양의 풍수지리를 실제로 확인하여 보기 위함이었다.
그때 김삿갓이 어렵게 구해 읽게 된 한양의 지세와 풍수는 아래와 같았다.

한양은 400여 년 전 도읍지로 결정될 당시에 백호1)가 너무 강하여 청룡2)을 누르는 형세였다. 이러한 지형 아래에서는 장손보다는 지손이 성(盛)하게 된다.

※ 註 : 글을 옮기다 보니 의혹이 생기는 부분이 있어서 잠깐 부언하면 아래와 같음.
註 1) : 백호 ⇒ 인왕산(仁旺山) : 한양의 내사산 중 서쪽 방위에 해당하는 산.
註 2) : 청룡 ⇒ 북악산(北岳山) : 청룡은 동쪽을 나타내야 하므로 한양의 동쪽 방위에 있는 낙산을 가리켜야 하는데, 북악은 북쪽 방위에 있는 산으로 김삿갓이 뭔가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나 원문대로 기술함.

따라서 이씨 조선 3대 임금이셨던 태종대왕부터 다음 대인 세종대왕을 비롯하여 지손이 번성하였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장손으로 등극을 한 경우도 있었으나 이렇게 권좌에 오른 임금은 권좌를 오래 지탱하지 못하고 물러났거나(5대 문종 대왕) 올랐더라도 정변에 의해 폐위되었다(6대 단종대왕).

한양의 지세가 이러했기에 약한 청룡을 보완하여 흥인문을 흥인지문이라 하여 산맥같이 생긴 ‘之’ 자 한자를 추가하여 문의 이름을 불렀고, 성을 산맥과 같이 둥글게 쌓았던 것이다.

※ 註 : 여기서 잠깐! 실제 동쪽 방위의 낙산은 높이도 낮고, 동대문 주변의 지세도 낮아 청계천의 물이 이쪽으로 흐른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성곽도 다른 곳과는 다르게 옹성(甕城)을 추가하여 쌓았으며, 4대문 중 유일하게 ‘之’ 1자를 추가하여 4자인 ‘興仁之門’으로 부르게 된 연유이다.

위의 북악산 운운은 결국 김삿갓이 착각하여 쓴 것으로 보이며, 북악에는 북대문인 숙정문이 있다.
오방신(五方神), 오방색(五方色), 오행(五行)과 연결해 보아도 청룡은 동(東)으로 보통 동청룡(東靑龍)이라 하고, 백호는 서백호(西白虎)라 하지 않는가?

이를 차례로 정리하면,
동(東)-푸른색(靑)-청룡(靑龍)-오행으로 인(仁)-흥인지문(興仁之門)-동대문,
서(西)-흰색(白)-백호(白虎)-오행으로 의(義)-돈의문(敦義門)-서대문,
남(南)-붉은색(朱 또는 紅)-주작(朱雀)-오행으로 예(禮)-숭례문(崇禮門)-남대문,
북(北)-검은색(玄 또는 黑)-현무(玄武)-오행으로 지(智)-숙정문(肅靖門)-북대문.
여기서 북대문에 ‘智’자가 들어 있지 않은 이유는 ‘백성이 똑똑하면 임금이 고달파지므로 숙청문(肅淸門)으로 지었다가 나중에 숙정문(肅靖門)으로 바뀌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리고 오방색의 마지막 노란색은 어디일까? 바로 중앙(中央)을 뜻하고 노란색(黃)-황룡(黃龍)-오행으로 신(信)-보신각(普信閣)이 이에 해당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도성의 출입문에 이름을 고치고 성을 둥글게 쌓은 효과가 없었던지 조선의 권좌 이동은 개국 초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격변에 의한 논란이 끊임없었다.

한편, 한양을 처음 수도로 정하고 성(城)과 궁궐을 축조할 때 풍수지리의 근거로 무학(無學)대사와 정도전(鄭道傳)의 의견이 서로 달랐다.

무학대사의 주장은 강한 백호를 누르기 위해 궁궐을 지을 때 인왕산을 뒤로하여 동향으로 앉혀 짓게 되면, 그 왼쪽의 청룡이 북악산과 삼각산이 되므로 장손이 번성하는 이상적인 왕도(王都)가 된다는 주장이었고,

반면 정도전은 유교의 옛 경전까지 인용하면서,
“왕은 마땅히 남면(南面)하는 법인데, 궁궐의 대문을 어찌 동쪽으로 앉힐 수 있는가?”하는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당시 새로 집권한 이성계의 추종세력은 고려시대의 숭불(崇佛)정책에 회의를 품은 유교학자 출신의 문신(文臣)들이었다. 이성계는 집권 초기에 혼란한 왕권을 유지하는데, 이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경복궁은 남향으로 지어지게 되었다.
그때 무학대사는 크게 탄식했다.

“허~ 이거 큰일 나지 않았나. 이렇게 대궐을 조성하면 몇 해 안에 국모가 죽고, 용상 바로 앞에서 붉은 피 낭자한 골육상쟁이 일어날 것인데. 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
무학대사의 예언은 과연 적중하여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1392년), 궁궐을 조성한지 불과 2년도 못 되어 신덕왕후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이후로 왕자의 난을 거쳐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정안군 이방원이 보위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에도 권좌의 이동은 장자 세습의 전통이 이어지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것 아니던가?
김삿갓은 쓸쓸한 왕조의 궁궐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어느 덧 멀리 서산으로 해가 기울기 시작하였다.
남산에서 내려온 김삿갓은 하룻밤을 보낼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절간이나 서당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오늘은 여염집에서 신세를 지리라 생각하고, 이집 저집 대문을 밀어 보았다.
그러나 어느 집을 막론하고 대문은 모두 굳게 잠겨 있었다.

‘허~ 문이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교류의 장이 아니던가! 이렇듯 대문을 걸어 잠근 것은 지나는 나그네에게 물 한 잔도 주지 않겠다는 표시가 아닌가! 한양의 인심이 이렇듯 고약한가?’
김삿갓은 한양이라는 고장의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그러나 어디선가 밥도 먹고, 잠도 자야 하겠기에 어느 집 대문을 두드렸다.

“이리 오너라!”
제법 크게 소리를 질러 보았다.
그러나 누군가 나오는 듯 하더니 중문 안에서 대꾸를 하는데,

“누구시냐고 여쭈어라!”
하고 거꾸로 묻는 것이었다.
누구냐고 묻는 폼이 집주인인 것이 틀림없었는데, 김삿갓은 한양에 사는 사람들은 하인이 없음에도 하인에게 이르는 것처럼 간접 화법을 쓴다고 이미 들은 바 있었다.
따라서 주인 편에서 하인을 둔 것처럼 대꾸할 때에는 손님인 이 편에서도 하인을 둔 척하고 간접 화법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하룻밤 신세를 지고 싶어 찾아 왔노라고 여쭈어라!”
하고 솔직하게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중문 안에서는,

“우리 집에서는 그런 손을 재울 방은 없다고 여쭈어라!”
하며, 씹어 뱉듯이 같은 소리를 내 던지고 중문을 힘차게 닫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삿갓은 기가 막혔다.
하는 수 없이 다음 집으로 가서 대문을 또 두드리며,

“이리 오너라!”
하고 소리를 크게 질렀더니, 이번에는 숫제 안마당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도 안 계시다고 여쭈어라!”
그러자 약이 바짝 오른 김삿갓이,

“아무도 안 계시다고 대답하는 그 소리는 개 소리냐고 여쭈어라!”
하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뭣~이? 어떤 놈이...!”
안마당에서 건장한 사내놈의 씩씩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중문이 급하게 벌컥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크! 개 같은 놈이 뛰쳐나오는 구나~”
김삿갓은 지팡이와 삿갓을 각각 손으로 움켜잡고,

‘걸음아 날 살려라.’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았다.

- 06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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