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008회
2020. 8. 20. 07:35ㆍ김삿갓 방랑기
#방랑시인 김삿갓-008화
[오애청산도수래(吾愛靑山倒水來) : 나는 본래 청산유수를 사랑한다오]
금강산까지 팔십 리 남았다는 말을 들은 김삿갓은 모호했다.
비로봉까지 팔십 리란 말인지 내금강 입구까지 팔십 리 남았다는 말인지 도통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떠랴, 어차피 세상을 떠도는 몸이거늘 팔십 리든 팔백 리든 남은 거리가 문제되진 않았다.
김삿갓은 한가로운 여름 구름 같이 유유자적한 터라 하루 삼십여 리만 걸어도 하루해가 지나갔다.
날이 다시 저물기 시작했다.
산골의 저녁은 빠른 법이다. 이렇게 날이 저물 때면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은 잠자리였다.
“허~ 날아다니는 새도 밤이 되면 찾아갈 둥지가 있건만, 나는 또 뉘 집 문 앞을 기웃거려야 한단 말인가?”
김삿갓은 탄식이 절로 났다.
두어 고개를 넘으니 조그만 동네가 보였다.
십여 호쯤 되어 보이는 빈촌이었으나 김삿갓은 내심 반가웠다.
더 걸을 수도 있겠지만 도중에 인가를 만나지 못하게 되면 심심산중에서 큰 낭패를 당하게 생겼기에 그는 다짜고짜 마을로 들어갔다.
그리고 발길이 멎는 대로 김삿갓은 어느 집 문간에서 주인을 찾았다.
“주인장 계시오?”
잠시 후 뒷 곁에서 허름한 차림의 집주인인듯한 남자가 나타났다.
“뉘십니까?”
“지나가는 길손이외다. 날이 저물어 하룻밤 신세를 질까 하고 염치없이 들렀소이다.”
“묵으실 수는 있겠으나 워낙 누추하여 모시기가 부끄럽습니다.”
남자는 무척 친절하게 대답했다.
“원,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불청객이 어찌 좋고 나쁨을 가리겠습니까? 재워주시는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그저 밤이슬만이라도 피하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들어오십시오.”
김삿갓은 사나이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억새풀로 엮은 자리가 깔려 있었다.
“저녁은 아직 안 드셨지요?”
“예, 허나 너무 염려 마십시오.”
거드름을 피는 무리들에게는 심술을 부리는 김삿갓이지만 이처럼 순박한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겸손한 그였다. 설혹 저녁을 못 얻어먹게 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여보!”
사나이는 부엌을 향해 마누라를 불렀다.
“왜 그러셔요?”
부엌에서 아낙의 대답이 들렸다.
“손님이 오셨으니 한 사발 더 들여오구려.”
“아니 이거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김삿갓이 보건대, 이 집 살림도 넉넉지 않아 보이는데 저녁까지 신세를 지게 되니 고맙고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잠시 후 곱게 생긴 아낙이 저녁상을 들여왔다.
“손님, 비록 험한 음식이지만 같이 드십시다.”
사나이는 상을 김삿갓 앞으로 밀어 놓으며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김삿갓이 그리 말을 하고 상을 내려다보니 소나무로 만든 개다리소반의 상에는 백기 사발 두 개에 죽 이 담겨져 있고, 김치 한 보시기가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초라한 상차림이었다.
“저 때문에 혹시 안주인께서 끼니를 거르시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김삿갓은 다소곳이 저녁상을 들여놓던 아낙이 생각되었다.
“아, 그야 모자라면 또 쑤면 되지 않겠습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 어서 드십시오.”
김삿갓은 수저를 들었다. 죽은 미음처럼 묽었다.
“그래, 어떻게 사십니까?”
김삿갓은 이런 죽으로 끼니를 삼으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염려가 불현듯 떠올랐다.
“이런 산골에 사는 놈이 별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그저 나뭇짐이나 해서 내다 팔아서 이렇게 풀칠이나 하며 살고 있지요.”
주인사내의 말을 들은 김삿갓은 코끝이 찡해 옴을 느꼈다.
(세상에는 하찮은 글줄이나 배워 그것을 팔아 거들먹거리며 사는 놈들도 많구먼...)
김삿갓은 막연한 분노를 느꼈다.
“실례가 됩니다만 내외간의 금슬은 어떻습니까?”
김삿갓은 대체 이들 부부가 이렇듯 곤궁한 가운데서 무슨 재미로 살고 있을지 궁금하여 물었다.
“금슬이요? 헤헤헤.. 그야 이를 말씀입니까?”
사나이는 갑자기 신명이 나는 듯하였다.
“그럼 됐습니다. 많은 재물로 호의호식하는 사람들 중에는 내외간 금슬이 좋지 않아 인생을 불행하게 보내는 사람도 많은데 주인장께서는 비록 가진 것은 적을지 몰라도 내외간 금슬이 좋으시다 하니 남들이 부러워할 행복을 가지신 분입니다.”
김삿갓은 이렇게 주인 사나이를 위로하고 그날 밤을 초라한 그곳에서 보내고, 다음 날 떠나며 시 한 수를 남겨 놓았다.
四脚松盤粥一器(사각송반죽일기) 네 다리 송반에는 죽 한 그릇 뿐인데,
天光雲影共徘徊(천광운영공배회) 하늘과 구름이 같이 서려 있구나.
主 人莫道無顔色(주인막도무안색) 주인은 무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吾愛靑山倒水來(오애청산도수래) 염려 마시오, 나는 본래 청산유수를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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