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김삿갓 005회

2020. 8. 16. 12:34김삿갓 방랑기

#방랑시인김삿갓-005화

[김삿갓 눈 앞에 우뚝 솟은 금강산]

청운의 큰 뜻이 이루어져 청루거각에 누워 있어야 할 몸이 멍석이 깔려 있는 낯선 사랑방에 누워 있다니 대체 어느 쪽이 잘못되어 있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모두 뜬 구름이야, 뜬 구름...”
“아니 이 양반이 잠꼬대는... 웬 잠꼬대?”
더벅머리 머슴놈이 부지 중에 김삿갓이 내뱉은 말을 잠꼬대로 들었던지 툭툭 발길질을 한다.

“총각, 내 잠세.”
김삿갓은 이렇게 말하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김삿갓은 계속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절은 벌써 오월이었고 집을 떠난 지 어언 한 달이나 되었다.
봄도 지금은 다 지나가고 신록과 더불어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김삿갓은 양구를 거쳐 금강산의 관문인 단발령에 도착하였으니 집에서부터 오백 리 길을 걸은 셈이다.

단발령(斷髮嶺)..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쫓겨, 이곳을 넘었을 어린 단종왕의 심사가 어떠 하였을까? 하는 애처로운 마음이 김삿갓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 고갯마루에 앉아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회한에 젖어 있다가 다시 발길을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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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수양대군에 쫓겨 단종이 단발령을 넘었다는 이 얘기는 아마도 김삿갓의 착각이 아니었나 싶다. 역사를 살펴보면 단종이 넘은 것이 아니라 세조가 넘은 것으로 나오는데...

쿠데타를 일으킨 세조가 단종을 영월 청령포에 귀양 보냈다가...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던 사육신 등의 거사를 처리하고 난 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아예 단종을 죽이게 된다.
그 후 단종의 어머니(세조의 형수)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 세조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네 반드시 천벌을 받을 것이다’ 하였다는데, 이후 세조의 온몸에 부스럼이 나고 이것을 치료하기 위해 금강산으로 가던 중에 바로 이곳 단발령을 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도 단종의 무덤인 장릉이 영월에 있고, 김삿갓도 영월을 근거지로 살았는데...
어떤 착각에 의해 이렇게 글을 쓴 것 같다.

단발령(斷髮嶺)의 유래와 관련 이야기는 이 글의 말미에 별도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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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령을 지나면 천하의 명산 금강산의 품에 안긴다. 이곳에서 비로봉까지의 거리는 백 리 길이지만 수려한 내금강의 첫머리가 밟히는 지점이었다.
금강산을 눈앞에 두자, 김삿갓의 가슴은 쿵쿵 뛰고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는 길마다 길가에 나무며, 막 자란 풀 한 포기며, 뒹굴고 있는 돌멩이 하나까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금강산 어귀 골짜기에는 드문드문 동네도 있었는데 명산을 배경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인심도 나쁘지 않았다. 어느 골짜기에 이르니 무릉도원 같은 마을이 나타났다.
김삿갓은 쉬어갈 겸 동네 어귀로 들어갔다.

마침 글방에서 아이들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집이 있어 김삿갓은 다짜고짜 들어갔다.
방안에는 여나믄 학동들이 있었는데 불쑥 나타난 김삿갓을 보자 호기심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침 글을 짓는 시간이군.”
김삿갓은 학동들이 쳐다보던 말던 개의치 않고 학동들이 펼쳐놓은 종이를 바라보았다.
글제는 〈역발산(力拔山)〉으로 항우의 글을 지으라는 훈장의 분부였다.
김삿갓은 호기심에 한 학동이 지어 놓은 글을 주욱 읽었다.

〈南山北山神嶺曰(남산북산신령왈) 남산 북산 신령이 말하기를
項羽當年難爲山(항우당년난위산) 항우가 살았을 적에는 산이 되기 어려웠다더라.〉

김삿갓은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린 학동이 지었다고 믿을 수 없는 솜씨였다.
그래 옆에 아이는 어떻게 썼는가 하고 읽어 보았다.

〈右拔左拔投空中(우발좌발투공중) 오른손 왼손으로 빼내어 공중에 던지니,
平地往往多新山(평지왕왕다신산) 평지 곳곳에 새 산이 많이 생겼다.〉

김삿갓은 감탄했다. 어린 학동들의 글 짓는 솜씨가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글 좀 하는 선비들은 힘센 장사는 두려워하지 않지만 글 잘 하는 인재는 두려워하는 법이다.
김삿갓도 어린 학동들을 보기가 무서웠다.
그렇다고 슬그머니 나오기도 멋쩍은 일이라서 자기도 한 수 적어놓았다.
〈項羽死後無壯士(항우사후무장사) 항우가 죽은 후 힘센 장사가 없었으니,
誰將拔山投空中(수장발산투공중) 지금은 누가 산을 뽑아 공중에 던질 것인가?〉

김삿갓이 처음에 이곳에 들어올 때는 학동들에게 글줄이나 가르쳐 주고 하루쯤 쉬어갈 요량이었으나 어름어름할 자리가 아닌 듯하여 황망히 뛰쳐나오고 말았다.

며칠을 더 걷자 금강산이 눈앞에 우뚝 서 있었다. 때는 여름이 되었고 수풀 사이에서 목탁을 두드리고 불경을 외우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절이 있었다.
김삿갓은 성큼성큼 법당으로 오르는 층계를 밟았다.
법당 안에는 까까머리 스님 한 분과 유건에 도포를 입은 젊은 선비 하나가 대좌하고 김삿갓이 온 것도 모르고 무언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에헴!”
김삿갓은 인기척을 하였다.

“누구요?”
중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절 구경 좀 왔소이다.”
김삿갓은 천연스럽게 대꾸하고 다짜고짜 법당 안으로 썩 들어섰다.

“아니 이 양반이 여기가 어디라고 무례하게 함부로 올라오는 게요?”
유건을 쓴 선비가 쌍심지를 치켜세우며 날카롭게 내뱉는다.

“법당이지요, 자비로우신 부처님께서 어디 양반 상놈 가리신답니까?”
“아니 이 사람이...”
선비가 어이없어 하며 김삿갓을 위 아래 훑어보고 행색을 살핀다.
차림새는 비록 남루하지만 말하는 태도를 보아하니 글줄이나 읽은 사람으로 보였는지, 이 무례한 방문객을 보기 좋게 물리칠 계책을 재빨리 궁리했다.

“어디서 오셨소이까?”
이번에는 중이 말문을 열었다.

“예,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올씨다. 잠시 쉬어갈 겸 절 구경을 왔습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젊은 선비가 눈살을 찌푸리며 노골적인 언사로 말을 하였다.

“여보시오, 우린 지금 긴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자리를 삼가해 주시오.”
“어허, 보아하니 은밀한 말씀을 나누고 계신 모양인데 참 딱도 하시오.”
“아니 뭐가 딱하단 말이오?”
김삿갓은 냉큼 일어날 기색은 없이 그들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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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단발령(斷髮嶺) 고개에 얽힌 간단한 전설을 부연하여 올립니다.
[단발령(斷髮嶺)과 전설(傳說)]

단발령은 강원도 창도군 창도읍(옛 김화군 통화면)과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옛 회양군 내금강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지금은 북한에 있어서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신라가 고려에 의해 망하고 금강산으로 가던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이 고개에서 삭발하였다 하여 ‘단발령’이라 부른다고 전해진다. 높이는 834m로, 태백산맥 속의 내방산맥(內方山脈)의 북단에 솟은 옥전봉(玉田峰, 1,241m)과 그 남쪽 구단발령봉(舊斷髮嶺峰, 1,241m)과의 사이 안부(鞍部 :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우묵한 곳)에 있다.

이 고개의 동쪽 사면은 북한강의 지류인 금강천(金剛川)의 상류 계곡으로 통하고, 상신원리를 거쳐 동금강천을 따라 동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금강산의 입구인 장안사에 이른다. 서쪽 사면은 북한강 상류의 현리에서 동쪽으로 갈라지는 계곡으로 연결된다.

또한, 단발령 일대는 내금강구조선(內金剛構造線)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 철원과 내금강의 장안사를 연결하는 금강산 전기 철도와 북쪽의 말휘리를 경유하여 금강산에 이르는 국도가 신설될 때까지는 이 단발령을 지나는 도로가 금강산으로 통하는 간선 도로였다.

이 고갯길은 심한 굴곡을 이루어 금강산 전기 철도가 단발령을 통과하기 위한 1,000m 가량의 단발령 터널이 뚫려 있고, 동서 사면에 각각 단발령역과 오량역(五兩驛)이 개설되어 있다. 경사가 심하므로 이 고개의 양쪽에는 철도에 스위치백(switch back)을 설치하여 전차의 통행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단발령의 남서 산록에는 오량동(五兩洞)이, 북동 산록에는 피목정(皮木亭)이라는 마을이 있다. 오량은 옛날 고개를 지날 때 산적을 막기 위하여 안내인에게 닷냥[五兩]의 돈을 주고 호송을 부탁한 데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신라말 애사에 의하면 마의태자가 아버지 경순왕에게 하직하고 개골산(皆骨山)으로 입산할 때, 이 고개에서 부처의 도움을 받고자 멀리 금강산의 여러 봉우리를 바라보며 출가를 다짐하는 뜻에서 삭발하였다고 한다.

또한 단발령에 얽힌 세조의 전설도 극적이다. 조카 단종을 죽인 세조가 꿈에 형수를 본다. ‘더러운 인간’이라며 침을 뱉자 그날부터 온몸에 종기가 돋았다고 한다. 세조는 금강산에서 기도하기 위해 단발령에 오른다. 산색은 청정하고 물소리는 부처님 음성을 듣는 듯했다. 그대로 중이 될 것을 생각했다. 신숙주가 말려 윗머리만 잘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침 어제(8월 10일) 퇴임 교장님의 별장이 연천군 서쪽 관문이라는 고랑포에 있어서 방문하였는데, 일전에 갔을 때는... 근처에 경순왕릉이 있어서 둘러보고 신랑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릉이 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듣고... 또한 근처에 마의태자 무덤도 조성되어 있는데 이 무덤에 마의태자 시신은 없노라고~~ 마의태자는 갈 수 없는 북쪽 금강산에 묻혀 있으므로 이곳 무덤은 혼백만 모신 시신 없는 무덤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註] 스위치백(switchback)
높이의 차이를 가진 두 지역에 선로를 부설할 때 이 방법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열차가 운전할 수 있는 기울기의 선로를 지그재그(zigzag)형으로 여러 층 부설하여 열차가 톱질하는 식으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오르게 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강원도 도계의 흥전역(상부역)과 나한정역(하부역)간에 스위치백 방식을 사용했으나, 2012년 6월 27일 동백산-도계간 솔안터널이 개통되면서 사라졌다.

산악지방의 경우 지형적 요건으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선로로 연결할 수 없는 높이의 차이를 가진 두 지역에 선로를 부설할 때 이 방법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열차가 운전할 수 있는 기울기의 선로를 지그재그(zigzag)형으로 여러 층 부설하여 열차가 톱질하는 식으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오르게 하고 있다. 스위치백은 등산철도에도 이용된다. 열차는 많은 차량을 연결하여 선로를 운행하기 때문에 기관차의 견인력에 한계가 생기게 되며, 따라서 기울기가 80% 이상이 되면 운전하기가 힘들다.

이 선을 부설할 때 오르는 선은 구배가 지게하고, 퇴행으로 들어가는 선은 평면으로 구성하여 운전에 안전을 기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히 구간이 길어서 도중에 정거장을 설치하는 경우와 전철기 부근은 모두 평면으로 만든다. 이 방법은 구배를 극복하는 방편이기는 하나 열차가 퇴행할 때에 위험이 따르고, 고속운전에 큰 장애가 되므로 점점 그 이용이 줄고 있다. 〈두산백과〉

〈제006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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