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異厭喜(동이염희)
2026. 4. 7. 20:16ㆍ좋은글
菜根譚
제 198장 : 同異厭喜(동이염희) :
처세는 세속, 사업은 세인과 적절히 뒤섞어야 성공한다.
處世 不宜與俗同 亦不宜與俗異
처세 불의여속동 역불의여속이
作事 不宜令人厭 亦不宜令人喜
작사 불의영인염 역불의영인희
처세할 때 세속과 같이 해도 안 되고, 달리해도 안 된다.
일을 할 때 사람들이 싫어하게 해도 안 되고, 기뻐하게 해도 안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處世)와 일을 하는 작사(作事)의 이치를 논하고 있다.
세상을 살면서 세속에 너무 물들어도 문제지만, 너무 초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세속에 머물며 탈속(脫俗)한 모습을 보이는 게 좋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련의 사업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온통 싫어하도록 만들어서도 안 되지만 너무 좋아하게만 만드는 것도 문제다.
모든 사람을 다 즐겁게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줏대도 없고 비전도 없이 성공하기가 어렵다. 더불어 어울려 사는 게 답이다.
『도덕경』은 제56장에서 이같이 말했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욕심의 출구와 통행로를 폐색하는 색태폐문(塞兌閉門)과 욕망의 날카로움을 꺾고 엉킴을 푸는
좌예해분(挫銳解紛), 번쩍거림을 부드럽게 해 세속에 섞이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을 일컬어 현동(玄同)이라고 한다.
가까이도 멀리도 하지 못하는 불가친불가소(不可親不可疎)와 이롭게도 해롭게도 하지 못하는
불가리불가해(不가利不可害), 귀하게도 천하게도 하지 못하는 불가귀불가천(不可貴不可賤)을
통해 천하의 귀한 존재가 된다.”
지혜의 빛을 늦추는 것이 화광(和光)이고, 속세의 티끌과 함께 하는 것이 동진(同塵)이다.
여기서 ‘화광동진’ 성어가 나왔다.
요체는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는 뜻의 지자불언(知者不言)에 있다.
『순자』 「대략 大略」에도 유사한 구절이 나온다.
“말을 많이 하는데도 모두 합당하면 성인이고, 말을 적게 하는데도 법도에 맞으면 군자이고,
말을 많이 하고 법도에 맞지도 않는데다 그 내용 또한 종잡을 수 없으면 비록 말을 잘 할지라도 소인이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그 앎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앎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진정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진정한 앎이 있는 사람은 ‘색태폐문’과 ‘좌예해분’ ‘화광동진’을 행한다.
이게 바로 소리 없이 속세에 하나로 녹아든 ‘현동’이다.
순자가 말한 성인의 경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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