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야화 (명주 고름)

2026. 3. 18. 21:22웃으면 복이 와요

명주 고름


어느 주막의 여주인이, 손님에게 저녁에 술밥까지 대접하고 잠이 깊이 들었는데
서방이 한밤중에 밖에서 들어와 곁에 누우며 그 짓을 요구하니까,
금방 그러고 왜 또 보채느냐고 귀찮아한다.
서방은 버쩍 의심이 났다.
손님 중의 누군가의 짓이라.
이튿날 손님들을 떠나지 못하게 붙들어놓고 관에 고발하였다.

우선 손님 셋을 옥에 가뒀다.
원님은 현장을 잡은 것도 아니어서 판별하기 어려운 문제라 골치를 썩이다,
점심을 먹으러 내아에 들어서도 밥상 앞에서 골똘히 생각하자 부인이 무슨 걱정이냐고 물었다.
원님이 이런저런 사건의 고발을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더니
부인이 손수 관가의 옥으로 가서 갇혀 있는 세 사람을 보고 돌아오더니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하며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원님에게 가르쳐줬다.
원님은 점심상을 얼른 물리고 동헌으로 나가 주모를 불렀다.

“주모에게 묻노라.
어두워서 얼굴은 못 봤을 것이니 솔직하게 감촉했던 대로 말하라!
쇠꼬챙이로 찌르는 것 같더냐?
아니면 절굿공이로 짓찧는 것 같더냐?
명주 고름으로 문지르는 것 같더냐?”
주막쟁이라도 여자 체면에 낯이 홍당무가 되면서 대답한다.
“아주 곱상하니 명주 고름으로 문지르는 것 같았습니다.”
“제 서방하고 다르거든 그때 무슨 거조를 차릴 것이지.
여봐라!
저 늙은이를…”

청년, 장년, 노인 숙박객 중 늙은이를 형틀에 올려 매고 곤장을 안기니까 애고 대고 엄살을 부리며 자복을 한다.
“여염 사람도 아니고 그 짓을 했거든 해웃값을 치르고 떠날 것이지 고을 안을 시끄럽게 한단 말이냐?”
그리하여 상당한 금액을 치르고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데 사정이 이상스럽게 되어갔다.

부인은 자신이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해줬으니 칭찬을 들을 줄 알았는데,
퇴청해서 집에 들어온 원님은 싸늘하니 부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부인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다.
“여봐라, 밖에 누가 없느냐?”
원님은 하인을 불러 금침을 동헌 침방으로 옮기라 일렀다.
저녁상을 물리고 난 원님은 혼자서 동헌으로 가버렸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던 부인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무릎을 쳤다.
부인은 호롱불을 들고 동헌 침방으로 갔다.
원님은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실직고 하겠습니다.
저는 쇠꼬챙이에 찔려도 봤고 절굿공이에 짓찧어져도 봤고 명주 고름에 문질려도 봤습니다.
쇠꼬챙이에 찔린 것은 40년 전이었고 절굿공이에 짓찧어져 본 것은 20년 전이었고 명주 고름 맛은 근년이옵니다.”

회갑을 넘긴 원님은 부인을 의심했던 게 부끄러워 불을 끄고 오랜만에 부인을 쓰러뜨렸다.
동헌의 침방은 색다른 분위기라 운우의 정이 격렬했다.
“서방님, 절굿공이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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