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가설 극장 비화 1
2026. 3. 22. 07:25ㆍ웃으면 복이 와요
가설극장에 대한 글이 있기에
몇 회에 걸쳐 연재하려고 한다.
그 당시로 필름을 돌리시고
추억에 젖어 보시기 바라며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게 창문이나 담벼락에 붙어있는
영화 포스터가 눈에 띄면 반가움에 앞서
먼저 가슴부터 울렁이기 시작했다.
원술랑, 벽오동 심은 뜻은, 두만강이 잘 있거라,
가야의 집, 안시성의 꽃송이, 울어라 열풍아..
눈앞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영화 포스터를 바라보며
포스터가 모두 몇 개나 붙어 있는지
전쟁영화가 몇 편이나 되는지를 헤아리며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영화 속에 흠뻑 빠져들고 만다.
문짝 양 옆에 포스터를 잔뜩 붙인
제무시(GMC)가 마을을 누비며 영화 안내를 시작한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00 면민 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십니까?
본 00 합동영화사에서 오늘 밤 여러분들을 모실 영화
이민자, 최무룡 주연, 피리 불던 모녀고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
시네마스코프 총천연색, 피리 불던 모녀고개..
아.. 어찌하여 최무룡과 이민자는 헤어져야만 했던가..
오늘 밤 할머니 할아버지 손자 손녀, 손수건 지참하시고
손에 손잡고 오세요..
기대하시고 고대하시라, 피리 불던 모녀고개.."
라디오도 귀하던 그 시절
일 년을 통하여 겨우 몇 번 볼 수 있는 영화야 말로
마을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문화행사였다.
마을 한 구석 공터나 밭 한가운데 말뚝을 박고
천막을 빙 둘러 만든 가설극장 앞에 가보면
주렁주렁 전구가 달려있고
노랗게 빛나는 전깃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별나라에 온 것 마냥 어린 가슴 들은
그저 황홀감으로 가득 찼다.
마당 뒤쪽의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쉴 새 없이 발동기 소리가 들려왔다.
돈이 있건 말건 가설극장 앞은
언제나 동네 조무래기들이나
마을 어른들로 시끌벅적했다.
어른들과 함께 들어가거나
혹은 부모님께 얻은 용돈으로
표를 사서 천막 안으로 들어갈 때면
표를 사지 못해 극장 주변을 지키는
'기도'의 눈치를 흘끔거리며 서성이는
동네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날이면 누가 어떠한 방법으로
돈 안 주고 영화를 보았노라는
무용담으로 온 교실이 시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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