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숙인 의 시 / 장 금
2026. 3. 10. 20:23ㆍ자유게시방

어느 노숙인의 시 / 장 금
둥지를 잃은 나에게는
찾아오는 밤이 두렵다.
타인이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도
둥지를 잃은 나에게는
두려움의 그림자일 뿐.
한 때는
천방지축으로 일에 미쳐
하루 해가 아쉬윘는데
모든 것 다 잃어버리고
피붙이들은
이산의 파편이 되어
가슴 저미는 회한을 안긴다.
굶어죽어도
얻어먹는 한술 밥은
결코 사양하겠노라고
이를 깨물던
그 오기도 일곱 끼니의
굶주림 앞에 무너지고
무료급식소 대열에 서서
행여 아는 이와
조우할까 조바심하며
날짜 지난 신문지로
얼굴을 숨기고
아려오는 가슴으로
숟가락 들고 목이 메이는
아품의 한 끼니를 만난다.

그 많던 술친구도
그렇게도 갈 곳이 많았던
만남들도 인생을 강등당한
나에게는 이제 아무도 없다.
밤이 두려운 것은
어린아이만이 아니다.
육십 평생의 끝자락에서
잠자리를 걱정하며
공원 긴 의자에
맥없이 앉으니
뒤엉킨 실타래처럼
난마의 세월들이
만감의 상념들이
눈앞에서 춤을 춘다.
깡소주를 벗삼아
물마시듯 벌컥대고
수치심을 잃어버린
육신을 아무데나 눕힌다.


빨랫줄 서너 발
철물점에서 사서
청계산 소나무에 걸고
비겁의 생을 마감하자니
눈물을 찍어내는
지어미와 두 아이가
서리발처럼 눈에 꽃힌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교만도 없고,
자랑도 없고 그저 주어진
생을 걸어가야지,
내달리다 넘어지지 말고
편하다고 주저앉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날의 아름다움을 위해
걸어가야지...
걸어~가야지...
< 글: 장 금 >
20년 사업실패로 노숙인이 된
장금(1947년생)님께서는
1999년 봄, 이 시 한편을 남기고,
2009년 6월 1일 부천대성병원에서
연고자 없이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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