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창과 홍랑의 순애보(殉愛譜) 제1편
2026. 2. 23. 09:20ㆍ자유게시방
매창과 홍랑의 순애보(殉愛譜) 제1편
조선 5백 년의 역사 속 전국 방방곡곡에는 내 노라 하는 기생들이 많이 있었다. 시 서 화 가 무 (詩書畵歌舞)를 고루 갖춘 기생을 명기(名妓)로 꼽았는데 그중에도 시를 쓸 줄 아는 시기(詩妓)를 으뜸으로 쳤다. 조선시대 3대 기생을 꼽으라 하면, 개성의 황진이, 전북 부안의 매창, 함경도 홍원 군의 홍랑을 들 수 있다. 황진이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지만, 매창과 홍랑은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황진이 못지않게 가무(歌舞)와 시(詩)에 능한 여류 예술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조는 대개 사대부들의 주연(酒宴)에서 즐겼기 때문에 일반 사대부가의 부녀자가 시조에 참여할 기회는 사실상 없었다. 그런 점에서 기녀들의 시조는 시조문학 측면에서 여러모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있다. 사대부와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기녀들은 여류 작가로 서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고 유교적 이념하에 남녀 간의 자유로운 애정표현을 금기시했던 당시에 기녀들은 그런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서 기녀들의 작품은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것들이 많았다.
실제 표현에서도 사대부가의 남성들에게 기대할 수 없는 진솔한 표현, 감각적언어 사용 등 특징이 발휘되어 있다. 조선시대는 엄격한 신분사회이므로 드러내놓고 기생이 사대부와 사랑을 나눈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매창과 홍랑은 기생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었고 그 열정만큼 그녀들의 시에도 정(情)과 한(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기생 매창의 본명은 이향금이고, 자는 천향(天香)이다. 전북 부안의 기생으로 계유년에 태어나서 계생(癸生) 이라고도 불렀다.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딸로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났으며 뛰어난 재주를 지닌 만큼 자부심도 대단했던 것 같다. 개성의 황진이와 더불어 조선 명기
(名妓)의 쌍벽을 이루었다. 황진이가 한글 時로 이름을 날렸다면 매창은 한시(漢詩)로 이름을 날렸다. 매창은 18세에 28살 연상의 천민 시인 유희경(劉希慶)을 만나 평생을 정인(情人)으로 지내게 된다.
여느 기생과는 달리 절개가 매우 곧았던 매창이 한 눈에 반해 정을 주게 된 유희경은 천민 출신의 時人이자 조선 시대 최고의 상례 (喪禮)사를 지낸 인물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장례지도사 라 할 수 있다. 유희경과 이매창의 만남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이루어졌다.
1591년(선조 24년) 초봄 부안에서 처음 만난 두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상대방에게 빠져 들었다. 28년이라는 나이 차이는 문제가 되지를 않았다. 당시 매창은 유명한 기생이었고, 유희경 역시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고 있었다. 천민과 기생이라는 사회적 신분에 대한 동병상련을 느끼고 시를 통해 서로 사랑의 깊이를 더해 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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