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새우젓 장수와 자반 장수
2026. 1. 28. 16:51ㆍ웃으면 복이 와요
새우젓 장수와 자반 장수
주천골은 이 산골 저 산골로 길이 갈라지는 오거리에 자리 잡고 있어 장사꾼들의 거점이 되는 곳이다.
가쁜 숨을 토하며 고갯마루에 앉아 주천골을 내려다보는 손 서방은 가슴이 뛰었다.
3년하고도 두어달 만이다.
간만에 나온 장삿길도 설레지만, 쿵쿵 가슴을 치는 것은 덕필댁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주천골 덕필댁은 마흔을 바라보는 후덕한 과수댁이다.
십여년 전 처음으로 새우젓을 노새 등에 싣고 주천골에 온 손 서방은 주막 대신 덕필댁에 거점을 마련했다.
젓독을 맡겨놓기에 주막은 찜찜했다.
손 서방은 덕필댁 처마 밑에 큰 젓독을 놓아두고 거기서 작은 독에 젓을 조금씩 옮겨 노새 등에 싣고 다녔다.
험한 길로 갈 때는 노새도 덕필댁에 맡겨둔 채 지게를 지고 산길을 넘어 산동네 화전민을 찾았다.
며칠씩 이 산골 저 골짝을 돌다가 주천골 덕필댁으로 돌아오면 아래채 방에 기거하며 손수 밥을 끓여 먹고
덕필댁 소죽솥에서 노새 여물도 끓였다.
손 서방이 방값과 젓독 보관료를 주려 하면 과수댁은 손사래를 쳤다.
“관두시오. 여기가 뭐 주막인가요. 노는 방을 댁이 쓰니 든든하고 좋구먼요.” 언제나 이런 투였다.
손 서방이 새우젓과 멸치젓을 사발에 듬뿍 담아 주면
“비싼 젓을 이렇게나 준다요”하며 젓독에 젓을 다시 붓고 젓국물만 조금씩 떠갔다.
어느 날 두부찌개를 해놓고 덕필댁이 손 서방을 불렀다.
겸상해 밥을 먹으며 서로 신세타령을 했다. 손 서방도 홀아비였다.
70리 밖, 안정에 있는 집에는 와병 중인 어머니와 큰누님뿐. 하나뿐인 딸은 멀리 시집갔다.
어느 달 밝은 밤,
손 서방이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덕필댁으로 갔는데 귀뚜라미 울음 사이사이 철퍼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를 따라 부엌으로 갔다가 부엌문 틈새로 덕필댁이 목간하는 걸 보게 됐다.
그날 밤 둘은 만리장성을 쌓았다.
홀아비 손 서방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들병이다, 주모다, 기생이다 온갖 치마를 다 벗겨봤지만
덕필댁은 달랐다. 허리춤을 올리면서도 급하지 않았고, 그 옛적 마누라처럼 포근했다.
고갯마루에 앉아 지난 세월을 더듬는 동안 주천골은 어두워졌고 이 집 저 집 창문이 초롱처럼 불을 밝혔다.
오늘 밤, 3년 만에 덕필댁을 안으려니 벌써 하초가 뻐근했다. 노새를 앞세워 고개를 내려갔다.
허리춤에 찬, 덕필댁에게 줄 박가분·동백기름·비단 한필이 걸음을 재촉했다.
드문드문 있는 집들을 돌고 돌아 덕필댁 사립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선 손 서방이 얼어붙었다.
방 안에서 과수댁의 자지러지는 감창소리와 씨근거리는 남정네의 콧김이 한데 엉켜 들린 것이다.
손 서방이 문을 확 열어젖히고 벌거벗은 남정네를 걷어찼다.
두 사내는 마루로 박차고 나갔다가 마당으로 떨어져 뒹굴며 주먹다짐을 벌였다.
대충 옷을 걸친 덕필댁은 마루 끝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피투성이가 돼 싸움박질하던 두 사내가 제풀에 꺾여 처마 아래 이쪽저쪽에 앉았다.
“네놈이 이럴 수 있어?” 손 서방이 씩씩거리며 말하자 자반장수 오 서방이
“죽었다던 형님이 어째 살아서 돌아왔소?”라고 반문했다.
새우젓장수 손 서방과 자반장수 오 서방은 호형호제하는 가까운 사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집에 들른 손 서방은 아파 누운 어머니를 돌보던 큰누님마저 병이 나 드러눕자
꼼짝 못하고 집을 지키게 됐다.
그러다 어느 날 장돌뱅이를 만나러 동네 주막에 들른 체장수 마 생원에게 주천골에 가거든 덕필댁에게
자신의 처지를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덕필댁에게 은근히 흑심을 품고 있던 마 생원이 손 서방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덕필댁은 식음을 전폐하고 울었다.
그때 그를 ‘형수님’이라 부르며 따르던 자반장수 오 서방이 피골이 상접한 덕필댁을 살려냈다.
마당에서 싸우던 두 사람과 덕필댁이 이 모든 사연을 알게 됐다.
형님, 제가 떠나겠습니다.” “아닐세. 내가 떠나겠네.”
결국 공평하게 문제가 해결됐다. 두 사람 모두 떠나지 않았다.
한 사람이 한달 동안 이 산골 저 산골을 돌다 올 동안 나머지
한 사람은 대처에 나가 물건을 떼와 덕필댁과 살고, 한달이 지나면 임무가 교대됐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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