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야화)이주국의 배짱
2026. 1. 1. 13:56ㆍ자유게시방
이주국의 배짱
조선시대 영조 때 이주국이라는 한량이 있었는데,
무과에 급제했지만 권신에게 미움을 사서 보직을
못 얻어 속만 끓고 있는 신세였다.
하루는 삼청동 뒷산에서 심심풀이삼아
활을 쏘며 소일하고 있는데, 좋은 장끼 하나가
꺼껑 푸드드득하고 놀라서 날아가기에, 겨냥해
쏘았더니 정통으로 맞고 그 아래 대궐
같은 큰 저택 뜰 안으로 떨어졌다.
곧장 내려와 그 집 솟을대문 앞에서 하인을
불러 꿩을 내놓으라고 호통을 쳤다. 하인은
대감의 세력만 믿고 그런 일이 없다느니, 있어도
내줄 수 없다느니 해 자연 언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그러는데 그 댁 청지기가 쫓아나와서, 대감마님
분부시라며 들어와 얘기하라고 전갈한다.
사랑 마당에 들어서서 곧장 층계 위로 올라 군례를
드리니, 영창을 열고 내다보던 노대감은 우선 이주국의
장부다운 기상에 호감이 가서 하인들을 꾸짖었다. “
남의 꿩이 들어왔으면 선선히 내어줄 것이지,
왜 일을 버르집느냐?”
그리하여 하인들이 숨겨 놓았던 꿩을 내어온
것을 보니 화살이 장끼의 산멱통을 꿰뚫고 있었다.
“자네 활솜씨가 엔간하이그랴! 내 마침 심심하게
앉아 있던 중이니 들어와 얘기나 좀 하세.
그리고 출출할 테니 술이라도 한잔하고…”
“그러시다면 이 꿩을 안줏감으로 드리겠습니다.”
이리하여 주인과 마주 앉게 되었는데 이분이
다름 아닌 홍봉한이니, 당시 권세를 한 손에
쥐고 있는 분이다. 홍대감이 허우대가 훤칠한
청년 이주국과 마주 앉아 얘기해보니 학식과
기개가 보통이 아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는데 부엌에서 장끼볶음을 안주로 술상이
나왔다. 잔을 주거니 받거니 웃음꽃을 피워가며
얘기를 나누다, 홍대감은 지필묵을 갖고 와 동생인
이조판서 인한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이주국에게 보직을 주라는 내용이다.
하인을 시켜 당장 갖다주라 이르고 다시
술잔이 오갔다. 술 한 호리병을 마시고 나자
심부름 갔던 하인이 답장을 들고 왔다.
이번엔 보직을 줄 수 없으니 다음에 보겠다는
내용이다. 그것을 본 이주국은 다짜고짜
홍대감에게 “꿩값을 주십쇼. 제 꿩은
산 것이었으니 예사 꿩값 몇곱을 주셔야 합니다.”
얼굴이 시뻘게진 홍대감은 이주국에게
돈을 던졌다. 그리하여 꿩값을 받아든 그는
대문을 나서면서 웃었다. 이튿날 기별지에는
그의 보직이 발표되었다. 그 길로 번듯하게
군복을 갖춰 입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홍봉한 대감댁이다.
“덕분에 한자리 했습니다. 어제 오죽이나
역정이 나셨겠습니까? 그 길로 그만두라는
쪽지를 보내셨을 것이고, 이조판서께서는
또 홍대감의 노여움이 대단하신 것으로
여겨 즉시 한자리 배정하신겁죠.
그저 죄송합니다.” 홍대감은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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