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妓生) 소백주(小柏舟) - 31회

2025. 4. 21. 08:22수호지

★ 기생(妓生) 소백주(小柏舟) - 31회

제31회 여인의 꿈

온갖 사내들의 짓궂은 장난과 그 등살에 놀아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것이 생활이 되고 보니 지긋지긋했다.

서른이 올려다보이는 어느 봄날 소백주는 모진 것이 세월이라고 울 밑에 난향같이 싱싱하던 자신의 몸도 초가을 단풍에 물 들어오는 나뭇잎처럼 한풀 시드는 낌새를 느끼고는 떡하니 평소 꿈꾸어오던 것을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내놈들은 인생살이의 목적이 권력이고 돈이고 출세인 줄은 몰라도 또 계집들 또한 남편이나 자식들 출세시키는 일인 줄은 몰라도 소백주는 그것이 아니었다.

기왕에 이 세상에 여인의 몸으로 태어났으니 마음이 통하는 멋있는 사내를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며, 비록 고대광실 좋은 집에 살며 맛난 것 먹고, 호의호식하며 살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진실한 마음 교환하며,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은 여인으로서의 소박한 꿈을 실현해 보고 싶은 것이었다.

​소백주는 담장 너머로 따뜻한 바람 불어오는 봄 진달래꽃 피는 앞산을 바라보며, 남녘 파란 하늘 멀리 그 꿈을 펼쳐보는 것이었다.

​그날부로 소백주는 당장 기생 일을 집어치우고는 글 잘하는 단정한 사내 하나를 찾는다는 방을 저잣거리에 대담하게 내다 붙였던 것이다.

적어도 글을 아는 선비라야 세속의 권세와 지위와 돈의 탐욕에서 벗어난 진정한 사람의 도리를 알 것이고, 또 시절 따라 모진 칼바람 불어오는 궂은 세상사를 지혜롭게 간파하며 살 줄 알 것이며, 또 무엇보다도 사람으로서 삶의 진실한 멋과 고매한 운치를 알 것이기 때문이었다.

​소백주가 수원 저잣거리 골목마다 방을 내다 붙이자 사내들이 거센 태풍에 격랑을 타고 구름같이 들이닥쳤다.
과연 소백주의 명성은 그저 빈말에 뜬구름만은 아니었다.

예쁘고, 글 잘하고,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소백주와 인생의 뜨겁고 질긴 사랑의 연을 맺어보려는 일대의 이름난 사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양 땅에까지 소문이 퍼졌는지 조선 각지의 선비들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고 무리 지어 날마다 몰려드는 것이었다.
​내 노라는 학식을 지닌 문장가들이며 고관대작들이 소백주의 환심을 사려고 들이닥쳤던 것이다.

높은 관리를 지내며 과거께나 급제했다는 사내들은 그저 소백주를 눈 아래로 흘겨보고, 네깟 기생 주제에 무슨 글재주를 시험하느냐는 식으로 깔보며, 허세가 잔뜩 담긴 글을 휘휘 내리갈겨놓고는 거드름을 잔뜩 피우는 것이었다.

화려한 기교와 잔재주 잔뜩 부린 허세 가득한 글 내용은 곧 그 사내 삶의 태도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소백주는 그런 류의 교만과 허풍에만 가득 찬 글들을 두어줄 읽다가 그만 구겨 불쏘시개 거리로 내팽개쳐 버리는 것이었다.

“고명하신 대감께서는 어려서부터 어렵게 익힌 천재적인 글솜씨로 얻은 높은 지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났군요. 그리하여 진실 한 톨 없는 치기에 가득 찬 허세로 교만하게 세상을 살아가시는구려! 안됐지만 낙방이올시다!”
소백주는 보기 좋게 낙방을 쾅쾅 먹였다.

- 32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