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妓生) 소백주(小柏舟) - 33회
2025. 4. 23. 08:12ㆍ수호지
★ 기생(妓生) 소백주(小柏舟) - 33회
제33회 불행한 선비
소백주는 지난날 매일 밤 어울렸던 고위 관리들의 허장성세를 생각하고는 고개를 가로로 젓는 것이었다.
허명과 허세를 좇아 살며 온갖 뇌물을 받아 챙기면서 갖은 부정부패를 일삼고, 거래와 암약으로 세상을 농단하면서도 자신이 마치 정의로운 위대한 영웅이라도 되는 양 자기보다 못한 직급의 약자나 계집 앞에서 위세를 떠는 위인들을 보면 헛웃음이 자신도 모르게 베어 나오고 구역질이 나는 것이었다.
역시나 가소로운 소인배요 졸장부들이었다.
차라리 이런 세상의 틈바구니에서 온갖 탐욕 다 벗어버리고, 자신의 푸른 정신 하나 지키며 가난하고 옹색하게 살아갈지언정 그 마음만은 비길 데 없이 진실하고 올곧은 사내 하나 바랐건만, 역시 그런 사내는 이 나라 안에서는 오래전 씨가 말라버렸단 말인가?
소백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가야금을 꺼내 홀로 가락을 퉁겨가며, 외로운 마음을 달래는 것이었다.
“동지섣달 긴긴밤을 쓸고 가는 찬바람아? 이내 마음 둘 곳 없어 잠 못 이루는구나. 세상에 사내다운 사내는 없고 흥정만 남았으니? 새봄이 온다고 한들 이 새 밭에 씨 뿌릴 사람 없구나!”
소백주는 가슴 속 시심을 무연히 읊조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차가운 얼음 어는 겨울밤은 외롭게 홀로 기울고, 소문을 들은 사내들은 소백주의 미끈한 몸이 탐이 났던지, 재산이 탐이 났던지, 아니면 그 하찮은 기생의 명성이 탐이 났던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소백주는 속으로 ‘흥!’하고 코웃음을 치며 그들 모두에게 보기 좋게 퇴짜를 꽝꽝 먹여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또 한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어냐! 이런 간장 종지 같은 조그만 잔에 어찌 술을 마시란 말이냐!”
그때였다.
바깥이 소란하다 싶더니 커다란 사내의 목소리가 소백주의 쓸쓸한 시흥(詩興)을 찰나에 와락 깨뜨려버리고, 귀 고막을 가시처럼 날카롭게 뚫고 들었다.
“너의 주인 마음은 이만큼 밖에 되지 않는단 말이냐? 이놈아! 사람을 어찌 보느냐! 어서 이 잔을 물리고 술을 동이째로 내 오너라!”
‘어허라! 저게 무슨 소리인가? 누가 이곳에 와서 술잔 시비를 건단 말인가?’
소백주는 웬 사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갑자기 온 집안이 무너져 내리도록 울려 퍼지자, 자신도 모르게 문틈으로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봄꽃 피고 새가 우는 이 봄날 어스름 석양이 몰려드는데, 허름하게 차려입은 한 사내가 찾아 들어와 쓰라는 시(詩)는 써내지 않고, 느닷없이 작은 술잔을 탓하며 술동이 타령을 하다니!
소백주는 첫눈에 저 사내가 뜻을 이루지 못한 이 시대의 낙오(落伍)한 불행한 선비임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 34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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