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妓生) 소백주(小柏舟) - 28회

2025. 4. 17. 08:30수호지

★ 기생(妓生) 소백주(小柏舟) - 28회

제28회 기이한 방

그렇다면 지금 김 선비 자신은 또 어떠한가
천운도 지운도 인운도 모두 가득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시운은 어떠한가?

작금의 실정은 이 정승 같은 외척이 온갖 권세를 누리는 시대였다.
호랑이 없는 산에는 여우가 왕 노릇 한다더니 틀림없이 그런 시대였다.

그런 시대의 선비는 힘이 없어 불의의 세상을 바로 잡지 못한다면, 초야에 묻혀 학문을 벗 삼아 욕심 없이 자신의 청정한 가슴에 품은 굳센 뜻 하나 우뚝 지키고 고단하게 사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야 하는데, 김 선비는 그 간악한 여우에게 모든 집안의 재물을 탈탈 털어 뇌물로 바치고 벼슬을 구걸하려고 했으니 인생의 최하위 밑바닥까지 가버렸지 않은가!

천운에 벼슬자리가 없는 것을 뇌물을 바쳐 사려한 것이 아닌가!
천운에 왕 자리가 없는 수양이 살육을 통해 왕위를 거머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늘의 이치에 부당하기는 수양이나 김 선비나 다 마찬가지가 아닌가!

“아~하하하하! 그리하여 불가(佛家)에 이르기를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요,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이라 했던가!
(3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100년 동안 탐한 재물과 권력은 숨 끊어지는 하루아침 먼지가 되어버리는구나!)

아아! 조선 천지에 나 같은 바보천치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탐욕으로 썩어 빠진 이내 가슴엔 모진 설한풍만 들이치는구나!”

​김 선비는 누가 듣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미친놈같이 큰 소리로 처량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남으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하염없이 따라 걸었다.

​점심도 쫄쫄 굶고 바삐 걷는다고 걸었는데, 땅거미가 질 무렵 당도한 곳은 수원이었다.
허기가 질대로 진 몸에 기운이 다 빠져 머리에 어질어질 현기증이 났다.

지나오면서 배고픈 속에 우물물만 잔뜩 들이켰더니 더욱 시장기가 더하였다.
엽전 한 닢 없는 자신의 처지에 과연 어디에 들어가 시장기를 때우고 잠을 청해 다시 길을 떠날 것인가?

바보처럼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정 먼 길을 떠나온 자신을 생각하면서 김 선비는 답답한 가슴을 치며 어디 기가 막힐 구원자라도 있을 양 막연한 기대를 하며 수원 거리를 이리저리 헤맸다.

​한참 거리를 헤매는데, 길모퉁이 담벼락 앞에 사람들이 여럿 모여 웅성거리는 것이었다.
김 선비는 무슨 일인가 하고 사람들 틈에 끼어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벽에 붙어있는 기이(奇異)한 방(訪)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용인즉, ‘수원 기생 소백주가 서방님으로 삼을 글 잘 짓는 선비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저게 무슨 소리인가요?”
김 선비는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영문을 몰라 검은 수염을 늘어뜨린 넓은 갓을 쓴 옆 선비에게 물었다.

​“그대는 아직 저것을 모른단 말인가?”

- 29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