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24. 07:39ㆍ수호지
★ 수호지(水湖誌) - 248
연청은 이규를 이끌고 도망치듯 연예장을 빠져나왔다.
한 골목길로 접어들었는데, 어떤 사내가 남의 집에 벽돌과 기와를 집어던지고 있었다.
그러자 집안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이 깨끗한 세상에 빚을 두 번이나 지고서도 돈을 갚지 않으면서 도리어 남의 집을 때려 부수느냐!”
흑선풍이 그 말을 듣자 그 사내를 치려고 하였다.
연청이 사력을 다해 이규를 끌어안았다.
그래도 이규가 두 눈을 부릅뜨고 사내를 치려고 하자 사내가 말했다.
“내가 저놈하고 다투고 있는데, 네가 왜 간섭이냐? 나는 지금 장초토(張招討)를 따라 강남으로 출정할 거니까 넌 끼어들지 마라.
거기 가도 죽을 거니까 치려면 어디 한 번 쳐 봐라! 여기서 죽으면 좋은 관이라도 얻겠지.”
이규가 말했다.
“강남으로 간다는 게 무슨 말이냐? 조정에서 군대를 파견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연청은 이규를 끌고 골목길을 나와 작은 찻집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시고 있는데, 맞은편에 노인이 앉아 있는 걸 보고 연청이 차를 권하며 말했다.
“어르신께 뭐 좀 여쭤 보겠습니다. 좀 전에 골목에서 어떤 군인이 싸움을 하면서 장초토를 따라 강남으로 출정할 거라고 하던데, 어디로 출정하는 건지 아십니까?”
노인이 말했다.
“손님은 아직 모르시는군요. 지금 강남의 도적 방랍이 반란을 일으켜 8주(州) 25현(縣)을 점거하고서 목주부터 윤주까지 자기 나라라고 하면서 조만간 양주를 치려하고 있소. 그래서 조정에서 장초토와 유도독(劉都督)을 보내 방랍을 토벌하려 한답니다.”
그 말을 들은 연청과 이규는 얼른 찻값을 치르고 성을 나와 영채로 돌아가 군사 오용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오용은 그 말을 듣고 심중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송선봉에게 가서 강남의 방랍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조정에서 장초토를 파견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송강이 말했다.
“우리 장수들과 군마가 여기서 한가롭게 머물고 있는 것은 별로 좋지 않네. 차라리 숙태위로 하여금 천자께 아뢰게 하여 우리가 병력을 일으켜 방랍을 토벌하러 가겠다고 청하는 것이 좋겠네.”
송강이 장수들을 모아 상의하자 모두 기뻐하였다.
다음 날 송강은 옷을 갈아입고 연청을 데리고 성으로 들어가 숙태위를 찾아갔다.
송강이 절을 하자 숙태위가 말했다.
“장군은 무슨 일로 옷을 갈아입고 오셨소?”
송강이 말했다.
“근래에 성원에서 방을 내붙여 출정했던 관군들은 조정에서 부르지 않으면 멋대로 도성을 출입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오늘 소장이 사사로이 이곳에 온 것은 상공께 드릴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문을 들으니 강남의 방랍이 반란을 일으켜 주군(州郡)을 점거하고 멋대로 연호를 고쳤다고 합니다. 윤주까지 침략하고 조만간 강을 건너 양주를 치려고 한답니다.
송강 등의 인마가 이곳에 오래도록 한가롭게 주둔하고 있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희들이 병마를 거느리고 가서 역적을 토벌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오니 상공께서 천자께 아뢰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숙태위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말했다.
“징군의 말이 내 뜻과 같소. 내가 천자께 힘껏 아뢸 테니 장군은 돌아가 계시오. 내일 아침 천자께 아뢰면, 반드시 중용할 것이오.”
송강은 숙태위를 작별하고 영채로 돌아와 형제들에게 알렸다.
한편, 숙태위가 다음 날 아침 입조하니 천자는 피향전에서 문무백관과 방랍에 관해 논의하고 있었다.
천자가 말했다.
“이미 장초토와 유도독에게 토벌을 명했건만, 아직 진척이 보이지 않는구나.”
숙태위가 반열에서 나와 아뢰었다.
“소신이 생각건대, 이 도적은 이미 큰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폐하께서 이미 장초토와 유도독을 파견하셨지만 다시 회서를 토벌하고 온 송선봉을 보내셔서 두 군마가 선봉이 되어 역적을 토벌하게 하면 필시 큰 공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천자는 숙태위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급히 성원의 관원들을 불러 성지를 내리는 한편 장초토와 종참모·경참모에게도 송강의 인마를 선봉으로 보낸다는 것을 알리게 하였다.
성원의 관원들은 성지를 받들어 즉시 가서 송선봉과 노선봉은 피향전으로 와서 천자를 알현하라고 전하였다.
송강과 노준의가 피향전으로 와서 절을 올리자 천자는 칙명을 내려 송강을 평남도총관(平南都總管)에 봉하여 방랍을 토벌하는 선봉이 되게 하고, 노준의를 병마부총관(兵馬副總管)에 봉하여 부선봉이 되게 하였다.
천자는 두 사람에게 각각 황금혁대 하나, 비단 전포 한 벌, 황금 갑옷 한 벌, 명마 한 필, 비단 25필을 하사하고, 나머지 정장과 편장들에게도 각각 비단과 은냥을 하사하고 공에 따라 관작을 더하기로 하였다.
송강과 노준의가 성지를 받고 천자를 작별하려 하는데, 천자가 말했다.
“경들 가운데 옥석에 글을 잘 새기는 김대견과 좋은 말을 잘 알아보는 황보단이 있다고 들었다. 그 두 사람을 남겨 궁궐에서 명을 받게 하라.”
송강과 노준의는 성지를 받들어 재배하고 사은한 다음 궁을 나와 영채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기뻐하면서 말을 나란히 하여 성을 나와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어떤 사내가 막대기 두 개에 줄을 꿰어 잡아당겨 소리를 내고 있었다.
송강이 그걸 보고 사내에게 물었다.
“그게 무엇이오?”
사내가 대답했다.
“이건 호고(胡敲)라는 건데, 손으로 줄을 당기면 소리가 나는 겁니다.”
송강은 그 말을 듣고 시를 한 수 읊었다.
<낮은 소리도 나고 높은 소리도 나는데
맑은 소리가 저 푸른 하늘까지 울리네.
헛되이 많은 힘센 기력을 지니고서
끌어주는 사람이 없어 헛된 노력만 하는구나.>
송강이 마상에서 노준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저 호고가 꼭 우리 같네. 헛되이 하늘을 닿을 만한 실력을 지니고서도 끌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노준의가 말했다.
“형님은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가 흉중에 지닌 학식은 고금의 명장들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실력이 없다면 끌어주는 사람이 있다 한들 또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우의 말이 틀렸네! 숙태위가 천거해 주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천자께서 우리를 중용하셨겠는가? 사람은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되네.”
노준의는 실언했음을 자각하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영채로 돌아와, 장수들을 소집하였다.
그때 경영은 임신을 했고 또 병이 났었다.
그래서 동경에 남아 있게 하고, 섭청 부부로 하여금 보살피게 하였다.
나머지 장수들은 모두 방랍 토벌을 떠날 준비를 하게 하였다.
후에 경영은 병이 낫고 달이 차서 얼굴이 넓적하고 귀가 큰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장절(張節)이라 하였다.
훗날 남편 장청이 독송관에서 적장 여천윤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영은 애통해 하다가 혼절했는데, 섭청 부부와 함께 독송관으로 가서 장청의 영구를 모셔다가 고향인 창덕부에 안장하였다.
섭청이 또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경영은 섭청의 아내 안씨와 함께 아들을 길렀다.
장절은 장성하여 오개를 따라가 화상원에서 금나라 장수 올출을 크게 이겼는데, 올출은 수염까지 자르고 도망쳤다.
그리하여 장절은 관작을 받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를 봉양하며 천수를 마쳤다.
또 장절은 천자께 어머니의 정절을 아뢰어 표창을 받게 하기도 하였다.
한편, 송강은 방랍 토벌의 조칙을 받은 다음 날 조정에서 내려온 비단과 은냥을 장수들과 삼군의 우두머리들에게 나누어주고, 김대견과 황보단을 대궐로 보냈다.
송강은 수군두령들로 하여금 배를 정비하여 먼저 양자강으로 나아가게 하고, 마군두령들로 하여금 갑옷과 무기 등을 정돈하여 수륙으로 병진하게 하였다.
그때 채태사가 사람을 영채로 보내 성수서생 소양을 대필인(代筆人)으로 데려가겠다고 하였고, 다음 날에는 왕도위(王都尉)가 직접 찾아와 철규자 악화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하니 도위부에서 쓰겠다고 송강에게 요청하였다.
송강은 허락할 수밖에 없어 두 사람을 보냈다.
그리하여 김대견·황보단·경영·소양·악화 다섯 형제를 떠나보내고, 송강은 마음이 우울하였다.
송강은 노준의와 의논하여 장수들에게 출정 준비를 하라고 명하였다.
한편, 강남의 방랍은 반란을 일으킨 지 이미 오래되어 세력이 점점 커져서 생각 밖으로 큰 사업이 되었다. 방랍은 원래 흡주의 산속 나무꾼이었다.
어느 날 시냇가에서 손을 씻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머리에 평천관(平天冠)을 쓰고 몸에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때부터 방랍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천자의 복을 타고났다고 말했다.
그때 주면이라는 자가 오나라에서 화석강(花石綱)을 강제로 징수하여 백성들이 크게 원한을 품고 반란을 생각하게 되었다.
방랍은 그 기회를 틈타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청계현 방원동에 궁전을 짓고 목주와 흡주에 각각 행궁을 지었다.
문무백관의 관직을 설치하여, 성원(省院)의 관료를 두고 재상과 장수 등을 임명하였다.
목주는 지금의 건덕인데, 송나라는 엄주로 개명하였고, 흡주는 지금의 무원인데 송나라는 휘주로 개명하였다.
방랍은 목주와 흡주에서부터 윤주까지 점거했는데, 지금 진강이라 부르는 곳이다.
모두 8주 25현을 차지했는데, 8주는 흡주·목주·항주·소주·상주·호주·선주·윤주였다. 25현은 모두 이 8주 관할이었다.
방랍은 국왕이라 자칭하면서 한 지방을 제패하였으므로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방랍은 위로 천서(天書)에 응했다고 하는데, 당나라 때의 예언서인 추배도(推背圖)에 이런 말이 있었다.
“십천(十千)에 점을 하나 더하고, 겨울이 끝나면 존귀함을 칭하게 된다. 종횡하여 절수(浙水)를 건너 오나라 땅에서 자취를 남겨 흥하리라.”
‘十千’은 ‘만(万)’이고 그 위에 점을 하나 찍으면, ‘방(方)’ 자가 된다.
겨울이 지나면 섣달 곧 ‘납(臘)’이 된다.
존귀함을 칭한다는 것은 남면하여 임금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방랍(方臘)’ 두 글자에 응한다는 것이다.
강남 8주를 점거하였는데, 장강(長江)에 의해 중원과 격리된 천연의 요새지였으므로 회서와는 많이 달랐다.
한편, 송강은 군대를 일으켜 성원의 관료들을 작별했는데, 숙태위와 조추밀이 친히 나와 전송하면서 삼군을 위로하였다.
수군두령들은 이미 배를 타고 사수(泗水)와 회하(淮河)를 지나 양주 회안현에 모여 있었다.
송강과 노준의는 숙태위와 조추밀에게 인사하고, 인마를 다섯 부대로 나누어 양주를 향해 출발하였다.
전군(前軍)이 회안현에 당도하여 둔영하자, 본주의 관원들이 연석을 마련하여 기다리고 있다가 송선봉을 맞이하여 성중으로 들어가 대접하였다.
관원들이 말했다.
“방랍의 세력이 커서 가벼이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전면이 양자강인데, 그곳은 강남 제일의 험준한 요해처입니다. 강 건너편이 윤주인데, 지금 방랍 수하의 추밀 여사낭이 12명의 통제관과 함께 강안을 지키고 있습니다. 만약 윤주를 얻어 근거지로 삼지 못하면 방랍을 대적하기 어렵습니다.”
송강은 그 말을 듣고, 군사 오용을 불러 계책을 의논하고 전면에 큰 강이 가로막고 있으므로 수군의 배를 이용하여 나아가려 하였다.
오용이 말했다.
“양자강 안에 금산과 초산이 있는데, 이 두 산은 윤주의 성곽과 맞닿아 있습니다. 형제 몇 명을 보내 길도 정탐하고 강 건너편의 소식도 알아본 다음에 강을 건너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송강이 수군두령들을 불러 말했다.
“형제들 가운데 누가 먼저 가서 길을 정탐하고, 강 건너편의 소식을 알아오겠는가?”
그러자 네 명의 장수가 자원하였다.
- 249회에 계속 -
★ 수호지(水湖誌) - 249
9천 3백 리를 흐르는 양자대강(揚子大江)은 한양강·심양강·양자강 세 강과 만나면서 사천(四川)을 지나 바다에 이르는데, 중간에 많은 곳을 거치므로 만리장강(萬里長江)이라 불리기도 한다.
오(吳)와 초(楚)를 갈라놓은 이 강의 가운데에 금산과 초산이라는 두 산이 있다.
금산 위에는 절이 하나 있는데, 산을 두르면서 세워져 있어 사리산(寺裏山)이라 불리고, 초산 위에 있는 절은 산의 움푹한 곳에 숨어 있어 형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산리사(山裏寺)라고 불린다.
이 두 산은 강 가운데 있어 초나라의 꼬리가 되고 오나라의 머리가 되는데, 한쪽은 회수 동쪽의 양주이고 다른 한쪽은 절강 서쪽의 윤주로서 오늘날의 금강이다.
한편, 윤주의 성곽은 방랍 수하의 동청추밀사(東廳樞密使) 여사낭이 강안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원래 흡주의 부호였는데, 방랍에게 많은 돈과 곡식을 바쳐 동청추밀사에 임명된 자였다.
어릴 때부터 병서를 읽었고, 한 자루의 장팔사모를 잘 써서 무예도 출중하였다.
여사낭 밑에는 강남십이신(江南十二神)이라 불리는 12명의 통제관이 있었다.
경천신(擎天神) 복주 심강, 유혁신(游弈神) 흡주 반문득, 둔갑신(遁甲神) 목주 응명, 육정신(六丁神) 명주 서통, 벽력신(霹靂神) 월주 장근인, 거령신(巨靈神) 항주 심택, 태백신(太白神) 호주 조의, 태세신(太歲神) 선주 고가립, 조객신(弔客神) 상주 범주, 황번신(黃幡神) 윤주 탁만리, 표미신(豹尾神) 강주 화동, 상문신(喪門神) 소주 심림이었다.
추밀사 여사낭은 남군(南軍) 5만을 거느리고 강안을 점거하고 있었는데, 감로정(甘露亭) 아래에 전선(戰船) 3천여 척을 늘어놓고 있었다.
맞은편 북안에 있는 과주의 나루터는 앞에 흘러가는 강물만 있을 뿐 장애물이 없었다.
한편, 송강이 누가 먼저 가서 길을 정탐하고 강 건너편의 소식을 알아오겠느냐고 묻자 네 명의 장수가 자원하였다.
소선풍 시진, 낭리백조 장순, 반명삼랑 석수, 활염라 완소칠이었다.
송강이 말했다.
“자네들 네 사람이 두 길로 나누어 장순과 시진이 같이 가고 완소칠과 석수가 같이 가게. 곧장 금산과 초산으로 가서 머물면서 윤주의 역적 소굴의 허실을 정탐하고 양주로 돌아와 알려주게.”
네 사람은 송강을 작별하고, 각각 두 명의 졸개를 데리고 나그네로 분장하여 양주를 떠났다.
그때 백성들은 대군이 방랍을 토벌하러 온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 가족을 데리고 시골로 몸을 피했다. 석수는 완소칠과 함께 졸개 둘을 데리고 초산으로 갔다.
시진은 장순과 함께 졸개 둘을 데리고 마른 양식을 가지고, 몸에는 날카로운 칼을 숨기고 손에 박도를 들고서 과주를 향해 갔다.
때는 초봄이어서 날씨가 온화하고 꽃향기가 풍겼다.
양자강변에 당도하여 높은 언덕에 올라가 바라보니 하얀 파도가 도도하게 굽이치고 물안개가 깔려 경치가 아름다웠다.
멀리 북고산 아래를 살펴보니 일대가 모두 파란 깃발과 흰 깃발들이 나부끼고, 강변에는 수많은 배들이 ‘一’ 자로 늘어서 있는데, 강의 북안에는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시진이 말했다.
“과주로 오는 길에 보니 민가에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강 위에는 건너갈 배도 없으니 어떻게 강 건너편의 소식을 알아낼 수 있겠나?”
장순이 말했다.
“형님은 일단 빈 집에 들어가서 쉬고 계십시오. 제가 건너편 금산 아래로 헤엄쳐 가서 허실을 정탐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네 사람이 강변으로 내려와 근처에 있는 몇몇 초가를 찾아가 보았는데, 모두 빗장을 질러 놓아서 문을 밀어도 열리지 않았다.
장순이 모퉁이를 돌아가 한쪽 담을 허물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백발 노파가 부엌에서 나오고 있었다. 장순이 말했다.
“할머니! 왜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까?”
노파가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겠소. 지금 조정에서 대군을 일으켜 방랍을 치러 온다고 들었소. 여기는 길목이기 때문에, 가족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피하고 이 늙은이만 남아서 집을 지키고 있소.”
“이 집의 남자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가족을 돌보려고 시골로 갔소.”
“우리 네 사람이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어디 가면 배를 찾을 수 있습니까?”
“배를 어디서 찾겠소? 근래에 여추밀이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배들을 모두 윤주로 끌고 가 버렸소.”
“우리 네 사람이 양식은 있으니까 방만 빌려서 이틀 정도 쉬겠습니다. 방세로 은자를 드리고 괴찮게 하지도 않겠습니다.”
“쉬어도 좋지만, 침상이 없어요.”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조만간에 대군이 올 텐데…”
“그땐 알아서 피하겠습니다.”
장순은 문을 열어 시진과 졸개들이 들어오게 하였다.
박도를 벽에 기대놓고 보따리를 풀어 마른 양식과 구운 떡을 꺼내 먹었다. 장순이 다시 강변으로 나가 경치를 살펴보니 금산사는 강 가운데 있었다.
강변을 한 바퀴 둘러본 장순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윤주의 여추밀이란 놈은 필시 수시로 저 산을 오르내릴 것이다. 내가 오늘밤 가서 소식을 알아봐야겠다.”
장순은 돌아가서 시진과 상의하며 말했다.
“지금 이곳에는 배가 한 척도 없으니 강 건너편의 일을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오늘 밤 은덩어리 두 개를 옷으로 싸서 머리에 이고 헤엄쳐서 금산사로 가겠습니다.
중들에게 뇌물을 주고 적의 허실을 알아본 다음 돌아가서 송선봉 형님께 보고합시다. 형님은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시진이 말했다.
“얼른 갔다 오게.”
그날 밤은 달이 밝고 바람이 없어 물결도 잔잔하고 강물과 하늘이 같은 색이었다.
황혼이 되자 장순은 웃옷을 벗고, 아래에 흰 잠방이만 입었다.
두건과 옷으로 은덩어리 두 개를 싸서 머리에 이고, 허리에 날카로운 칼을 찼다.
과주에서 물속으로 들어가 강 가운데로 헤엄쳐 갔다.
물이 가슴까지밖에 차오르지 않아 물속에서도 마치 육지를 걷는 것 같았다.
금산 기슭에 당도해 보니 강변 바위에 작은 배 한 척이 묶여 있었다.
장순은 배로 올라가서 머리에 이고 있던 옷 보따리를 풀고, 젖은 옷을 벗고서 마른 옷을 갈아입고, 배 안에 앉아 있었다.
그때 윤주에서 자정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장순이 배 안에 엎드려 살펴보고 있는데, 상류 쪽에서 작은 배 한 척이 내려오고 있었다.
장순은 생각했다.
“저 배가 오는 모양이 뭔가 수상쩍어 보인다. 필시 첩자가 탔을 것이다!”
배를 풀어 나아가려고 했는데, 뜻밖에 배는 굵은 쇠사슬에 묶여 있고 노나 삿대도 없었다.
장순은 할 수 없이 다시 웃옷을 벗고 단도를 뽑아 들고서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배 가까이 다가갔는데, 배 위의 두 사람은 노를 저으면서 북안만 바라보느라 남쪽은 보지 않고 있었다.
장순은 물속에서 솟구쳐 올라 뱃전을 잡고 단도를 빼들었다.
노를 젓던 두 사람은 노를 내던지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장순이 배 위로 올라가자 선창에서 두 사람이 나왔다.
장순이 단도로 한 사람을 베어 물속으로 빠뜨리자, 다른 한 사람은 깜짝 놀라 도로 선창으로 들어갔다.
장순이 소리쳤다.
“너는 누구며 어디서 오는 배냐? 사실대로 말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호걸께 아뢰겠습니다. 소인은 이곳 양주성 밖의 정포촌에 사는 진장사(陳將士)의 일꾼입니다. 소인은 여추밀께 양식을 바치겠다는 주인의 말씀을 전하러 윤주에 갔는데, 여추밀께서 우후 한 사람을 소인과 함께 보내면서 벼슬을 얻으려면 쌀 5만 석과 배 3백 척을 예물로 바치라는 말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 우후는 이름이 무엇이고, 지금 어디 있느냐?”
“우후의 이름은 섭귀인데, 방금 호걸께서 칼로 베어 물속에 빠뜨린 자입니다.”
“너는 이름이 무엇이고, 언제 강을 건너갔으며, 배 안에는 무슨 물건이 있느냐?”
“소인의 이름은 오성이고, 금년 정월 7일에 강을 건너갔습니다. 여추밀은 소인을 소주로 보냈는데, 거기서 황제의 아우 삼대왕(三大王) 방모를 뵙고 깃발 3백 개와 주인 진장사를 양주부윤 및 중명대부에 봉한다는 공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군복 1천 벌과 여추밀에게 보내는 답서도 받았습니다.”
“네 주인의 이름은 무엇이고, 거느리고 있는 인마는 얼마나 되느냐?”
“거느리고 있는 사람은 수천 명이고, 말은 백여 필이 됩니다. 아들이 둘 있는데, 장자는 진익이고 차자는 진태입니다. 주인의 이름은 진관입니다.
장순은 자세한 사정을 알게 되자, 한칼에 오성을 베어 물속에 빠뜨리고 노를 저어 과주로 돌아갔다.
시진이 노 젓는 소리를 듣고 급히 나와 보니, 장순이 배를 저어 오고 있었다. 시진이 묻자, 장순이 좀 전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얘기했다. 시진은 크게 기뻐하면서, 선창으로 들어가서 문서 보따리, 붉은 비단 깃발 3백 개, 잡색 군복 1천 벌을 꺼내 왔다. 장순이 말했다.
“저는 가서 옷을 가져오겠습니다.”
장순은 다시 배를 저어 금산 기슭으로 가서 옷·두건·은덩어리를 가지고 과주 강변으로 돌아왔다.
그때 하늘이 비로소 밝아오면서 짙은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장순은 배에 구멍을 뚫어 강물 속에 가라앉히고 돌아왔다.
시진과 장순은 노파에게 은자 두세 냥을 주고, 두 졸개와 함께 짐을 메고 양주로 돌아왔다.
그때 송선봉의 군마는 모두 양주성 밖에 주둔하고 있었다.
양주의 관원들은 송선봉을 영접하여 성으로 들어가 역관에서 쉬게 하고, 연일 연회를 열고 군사들에게도 음식을 공급하였다.
시진과 장순은 연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역관으로 가서 송강을 뵙고 진관 부자가 방랍과 결탁한 일과 조만간에 역적들을 이끌고 강을 건너와 양주를 공격할 것이라는 것을 자세히 얘기했다.
천행으로 강에서 그놈을 만난 것은 하늘이 송선봉으로 하여금 공로를 세우도록 한 것이었다.
송강은 장순의 보고를 받고 크게 기뻐하면서 군사 오용을 불러 계책을 상의하였다..
오용이 말했다.
“이제 이런 기회를 잡았으니, 윤주성을 얻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입니다. 먼저 진관을 사로잡으면 대사는 정해지는 겁니다. 여차여차하면 됩니다.”
송강은 즉시 낭자 연청을 불러 섭우후로 꾸미게 하고, 해진과 해보는 남군으로 꾸미게 하였다.
연청은 정포촌으로 가는 길을 알아본 다음 해진·해보와 함께 짐을 메고 양주성을 떠나 정포촌으로 갔다.
양주성에서 40여 리를 가서 진장사의 장원 앞에 당도하였는데, 문 앞에는 2~30명의 장객들이 같은 복장을 하고 줄지어 서 있었다.
연청은 절강 사람의 사투리로 장객들에게 물었다.
“장사께서는 댁에 계십니까?”
장객이 말했다.
“손님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윤주에서 왔는데, 강을 건넌 후 길을 잘못 들어 반나절을 헤매다가 물어 물어서 이제 당도했습니다.”
장객은 세 사람을 객방으로 안내하여 짐을 내려놓고 쉬게 하고, 연청을 데리고 진장사가 있는 후당으로 갔다. 연청이 절하고 말했다.
“섭귀가 인사드립니다.”
진장사가 물었다.
“족하는 어디서 오셨소?”
“다른 사람들을 물리치시면, 상공께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저의 심복이니, 말씀하셔도 무방합니다.”
“소인의 이름은 섭귀인데, 여추밀 밑에 있는 우후입니다. 정월 7일에 오성이 가져온 밀서를 받고 추밀께서 아주 기뻐하시며, 저더러 오성과 함께 소주로 가서 황제의 아우이신 삼대왕을 뵙고 상공의 뜻을 자세히 말씀드리게 하였습니다. 삼대왕께서는 폐하께 상주하여 상공을 양주부윤에 봉한다는 교지를 내리셨습니다. 두 자제분은 다음에 여추밀을 만나보신 뒤 다시 관작을 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오성과 함께 돌아오려고 했는데, 뜻밖에 오성이 감기에 걸려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추밀께서는 대사가 그릇될까 염려하시어, 저에게 교지와 추밀 문서, 관인과 인수, 깃발 3백 개, 군복 1천 벌을 상공께 갖다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날짜를 정해서, 상공께서는 식량을 윤주 강안으로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연청이 교지와 문서를 건네자 진장사는 그걸 보고 크게 기뻐하며 황망히 향안을 마련하여 남쪽을 향해 절하고 사은하였다.
그리고 두 아들 진익과 진태를 불러 연청과 인사를 나누게 하였다.
연청은 해진과 해보에게 군복과 깃발을 뒤채로 옮기게 하였다.
진장사가 연청에게 자리를 권하자 연청이 말했다.
“소인은 졸개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 감히 상공과 마주 앉겠습니까?”
진장사가 말했다.
“족하는 여추밀께서 보낸 사람이고, 또 나에게 교지를 가져다준 사람인데, 어찌 가볍게 대할 수 있겠습니까? 같이 앉아도 무방합니다.”
연청은 재삼 사양하다가 멀리 떨어져 앉았다.
진장사가 술을 가져오게 하여 연청에게 술잔을 권하자 연청이 사양하며 말했다.
“소인은 원래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진장사가 거듭 권하자 연청은 마지못한 듯 두세 잔을 마셨다.
진장사의 두 아들도 부친에게 경하하면서 번갈아 술을 권했다.
연청이 해진과 해보에게 눈짓을 하자 해보가 몰래 술병에다 약을 탔다.
연청이 일어나며 말했다.
“섭귀가 비록 술을 가지고 강을 건너오지는 못했지만, 상공의 술을 빌려 경하의 뜻을 표하고자 합니다.”
연청은 큰 술잔에 술을 따라 진장사에세 권하고, 또 두 아들에게도 술을 권했다.
그리고 심복 장객들에게도 모두 한 잔씩 권했다.
연청이 신호를 보내자, 해진이 밖으로 나가 불씨를 구해 장원 앞에서 신호 깃발을 세우고 호포를 터뜨렸다.
그러자 이미 좌우에 매복해서 기다리고 있던 두령들이 호포소리를 듣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청은 진장사를 비롯한 사람들이 하나씩 쓰러지기 시작하자, 단도를 빼들고 해보와 함께 그들의 목을 베었다.
그때 장원 문 밖에서 열 명의 호걸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화화상 노지심, 행자 무송, 구문룡 사진, 병관색 양웅, 흑선풍 이규, 팔비나타 항충, 비천대성 이곤, 상문신 포욱, 금표자 양림, 병대충 설영이었다. 문 앞에는 장객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그들을 어떻게 당해낼 수 있겠는가?
안에서 연청과 해진·해보가 진장사 부자의 수급을 들고 나왔다.
장원 바깥에서 한 떼의 관군이 당도하였는데, 앞장선 여섯 장수는 미염공 주동, 급선봉 삭초, 몰우전 장청, 혼세마왕 번서, 타호장 이충, 소패왕 주통이었다.
이 여섯 장수가 1천 군마를 이끌고 와서 장원을 포위하여 진장사 가족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사로잡은 장객들을 앞세우고 나루터로 가 보니 3~4백 척의 배가 있었는데 배마다 식량이 가득 실려 있었다.
장수들은 송강에게 그대로 보고하였다.
- 250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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