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247

2025. 2. 23. 10:14수호지

★ 수호지(水湖誌) - 247

그날 천자는 성원의 관원들에게 특명을 내려 송강을 비롯한 장수들에게 관작 봉할 일을 의논하라고 하였다.
태사 채경과 추밀 동관이 상의하여 아뢰었다.

“지금 천하가 아직 완전히 평정되지 않아 높은 관작을 봉할 수는 없습니다. 송강은 보의랑(保義郎) 겸 황성사(皇城使), 노준의는 선무랑(宣武郎), 오용 등 36명은 정장군(正將軍), 주무 등 72명은 편장군(偏將軍)에 봉하고, 삼군에게는 상으로 금은을 지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천자는 인준하고, 성원에 칙명을 내려 송강 등에게 관작을 봉하고 상을 지급하게 하였다.
송강 등은 문덕전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성은에 감사하였다.

천자는 광록시(光祿寺)에 명하여 연회를 열게 하고, 송강에게는 비단 전포 한 벌, 황금갑옷 한 벌, 명마 한 필을 상으로 내리고 노준의 이하 장수들에게도 상을 내렸다.

송강 등은 사은한 다음 궁궐을 나와 서화문 밖에서 말에 올라 영채로 돌아갔다.

그날 법사회의 관원들은 성지를 받들어 왕경을 함거에서 끌어내 죄상을 적은 패를 적어 사형에 처한 뒤 살을 발라내는 형벌인 과형(剮刑)에 처하기로 하였다.

왕경이 저자거리에 끌려나오자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더러는 침을 뱉고 욕을 하기도 하고 더러는 탄식하기도 했다.

왕경의 부친 왕획과 전처·장인 등 친인척들은 이미 왕경이 반란을 일으킨 초기에 체포되어 사형을 당하고 없었다.
그날은 단지 왕경 하나만 창칼이 늘어선 가운데 끌려나왔을 뿐이었다.

북소리가 두 번 울리고 징소리가 한 번 울리자 서릿발 같은 창칼이 늘어서고 검은 깃발이 검은 구름처럼 펼쳐졌다.
회자수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오시삼각(午時三刻)이 되자 죄상이 낭독되고 왕경은 능지처참을 당했다.
사형을 감독하는 감참관(監斬官)은 왕경의 수급을 효시하였다.

한편, 송강 등이 영채로 돌아온 다음 날 공손승이 중군 장막으로 와서 송강에게 말했다.

“지난날 스승 나진인께서 저에게 분부하시기를 형님을 경성으로 모셔다 드린 후 곧 산중으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형님께서 공을 이루고 이름을 떨치셨으니 빈도는 형님과 형제들을 작별하고 산중으로 돌아가 스승님을 따라 도를 배우고 노모를 봉양하면서 천수를 마칠까 합니다.”
송강은 공손승의 말을 듣고 말릴 수가 없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예전에 형제들이 모여들 때는 마치 꽃들이 피어나는 것 같더니 이제 형제들이 이별하려니 꽃들이 시들어 떨어지는 것과 같네. 내 비록 자네의 말을 어길 수는 없지만 또 어찌 차마 이별할 수 있겠는가?”
공손승이 말했다.

“만약 제가 중도에 형님을 버렸다면 인정 없는 자가 되었겠지만, 이제 형님께서 공을 이루고 이름을 떨치셨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송강은 서너 번 만류하다가 할 수 없이 송별연을 열어 형제들과 작별하게 하였다.

모두 술잔을 들면서 탄식하고 눈물을 흘렸다.
형제들이 저마다 금은과 비단을 건넸지만 공손승은 받지 않았다.

형제들은 보따리 속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
다음 날 공손승은 형제들을 작별하고 짚신을 신고 보따리를 메고서 북쪽을 향해 떠나갔다.

송강은 며칠 동안 공손승을 생각하며 눈물을 비 오듯 흘렸다.
설날이 다가오자 관원들은 신하들이 천자께 인사를 올리는 조하(朝賀)를 준비하였다.

채태사는 송강 등이 모두 와서 조하를 하면 천자가 필시 중용할 것이 염려되었다.
그래서 천자께 아뢰어 관작이 있는 송강과 노준의만 조하하고 나머지 관작이 없는 자들은 모두 예를 면해 주도록 명을 내리게 하였다.

설날 아침 백관이 조하하는데 송강과 노준의도 예복을 입고 대루원에서 기다리다가 반열을 따라 조하하였다.
그날 천자는 자신전(紫宸殿)에서 조하를 받았는데, 송강과 노준의는 반열에 따라 조하하고 전상에 올라가지는 못하였다.

송강과 노준의가 전상을 올려다보니 옥비녀를 꽂고 구슬 박힌 신을 신고 자줏빛 인끈을 단 관복을 입은 사람들이 오가며 잔을 들어 헌수하였다.

아침부터 시작된 연회는 오시가 되어 끝나고 어주가 하사되었다.
천자가 일어나자 백관은 해산하였다.

송강과 노준의는 내전을 나와 예복을 벗고 두건을 쓰고 말에 올라 영채로 돌아왔는데, 얼굴엔 시름이 가득하였다.
오용 등이 맞이하였는데, 송강의 얼굴에 시름이 있는 것을 보고 다들 근심하였다.

두령들이 모두 와서 세배하고 양쪽으로 나뉘어 섰는데, 송강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오용이 물었다.

“형님은 오늘 천자께 조하하고 돌아오셨는데, 무슨 근심이 있습니까?”
송강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내 팔자가 천박하고 명운이 막혔나 보네. 요나라를 격파하고 역적을 평정하면서 많은 노고를 겪었건만 오늘 형제들이 그 공을 보답 받지 못하여 그 때문에 근심이네.”
오용이 말했다.

“형님께서는 운수가 사나운 것을 이미 아시면서 뭣 때문에 근심하십니까? 세상만사는 다 정해진 바가 있으니 우울해 하실 필요 없습니다.”
흑선풍 이규가 말했다.

“형님은 그런 생각 마시오! 애초에 양산박에 있을 때에는 이런 기분 든 적이 없었는데, 오늘도 초안 내일도 초안하다가 막상 초안을 받게 되니 이런 번뇌가 생긴 것 아니오?
지금 형제들이 모두 이곳에 모였으니 차라리 다시 양산박으로 올라가는 것이 상쾌하지 않겠소?”
송강이 소리쳤다.

“저 시커먼 짐승이 또 무례한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이제 나라의 신하가 되었는데도 네놈은 도리를 깨닫지 못하고 그런 반심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단 말이냐!”
이규가 또 응답했다.

“형님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내일 또 수모를 당할 거요!”
두령들이 모두 웃으면서 술잔을 들어 송강에게 축수하였다.

그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가 헤어졌다.
다음 날 송강은 수십 기를 거느리고 도성으로 들어가 숙태위와 조추밀을 비롯한 성원 관료들에게 신년 인사를 드렸다.

오가는 도중에 송강 일행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채경에게 가서 그 사실을 알렸다.
다음 날 채경이 천자께 아뢰어 성원에서 각 성문에 다음과 같은 방을 내붙이게 하였다.

<출정하였던 모든 관원들과 장수들은 성 밖에 주둔하여 명을 기다리고, 조정에서 부르기 전에는 함부로 도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불허한다. 만약 어길 시에는 군령에 의거하여 벌을 내릴 것이다.>

방이 곳곳에 나붙자, 누군가 보고서 송강에게 가서 알렸다.
송강은 더욱 우울해졌다.

여러 장수들은 그걸 알고 모두 화가 나서 반심을 품게 되었는데, 다만 송강 때문에 참고 있었다.
한편, 수군두령들이 군사 오용을 사무를 상의할 게 있다고 하면서 불렀다.
오용이 배에 오르자 이준·장횡·장순과 완가 삼형제가 오용에게 말했다.

“조정은 신의를 잃었습니다. 간신들이 권력을 농단하고, 어진 이의 길을 막고 있습니다. 우리 형님이 요나라를 격파하고 전호를 토벌했으며, 지금은 또 왕경을 평정했습니다.
그런데 겨우 황성사라는 관작뿐이고 우리에게는 관작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도리어 그따위 방을 내붙여 우리가 도성에 들어가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저 간신 놈들은 우리 형제를 차츰 흩어 놓고서 각기 따로 처리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형님과 상의해 봤자 보나마나 들어주려 하지 않을 것이니, 지금 군사께 저희의 주장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여기서 들고 일어나 동경을 약탈하여 다시 양산박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습니다.“
오용이 말했다.

“송공명 형님은 결코 찬성하지 않을 거네. 자네들이 헛되이 힘을 써 봤자 화살은 쏘지도 못하고 활만 부러뜨리기 될 걸세. 자고로 뱀이 대가리가 없으면 갈 수 없다고 했는데, 내가 어찌 감히 그런 주장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일은 반드시 형님이 수긍해야만 비로소 행할 수 있는 것이니 만약 형님이 수긍하지 않는데 자네들이 그런 일을 벌인다면 그건 반역에 지나지 않네.”
오용이 감히 주장할 수 없다고 하자 여섯 수군두령들은 모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용은 중군 영채로 돌아와 송강과 한담을 나누다가 군정(軍情)에 대해 말을 꺼냈다.

“예전에는 형님도 항상 자유자재하셨고, 여러 형제들도 역시 쾌활하였습니다. 그런데 초안을 받은 이후로 국가를 위해 힘을 다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했건만, 뜻밖에 우리는 도리어 구속을 받고 임용도 되지 못했습니다. 형제들은 모두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송강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
“그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니 굳이 누가 말했다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옛 사람이 말하기를 ‘부귀는 사람이 바라는 것이고, 빈천은 사람이 미워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기색과 태도를 보면 그 속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군사! 만약 형제들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죽어 황천에 가는 한이 있어도 충심을 바꾸지 않을 것이네!”
다음 날 아침 군사 기밀을 상의할 것이 있다고 하면서 장수들을 모두 불러 모아 놓고, 송강이 말했다.

“나는 운성현의 하찮은 아전 출신이고 또 큰 죄를 범했는데, 여러 형제들의 도움으로 두령이 되고 오늘 또 조정의 신하가 되었소. 예로부터 이르기를 ‘사람이 되면 자유롭지 못하고, 자유로우면 사람이 못 된다.’고 하였소. 조정에서 방을 내붙여 우리가 마음대로 도성을 드나들지 못하게 한 것은 이치가 그러하기 때문이오.

이제 여러 장병들은 이유 없이 도성에 들어가지 마시오. 우리는 산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거친 군사들이 아주 많소. 만약 그로 인해 일을 일으키면 필시 법에 의거해 벌을 받게 될 것이며, 또 우리의 명성이 무너질 것이오. 지금 우리에게 입성을 불허한 것은 우리에겐 도리어 다행한 일이오.

여러분이 만약 구속받는 것을 싫어하여 다른 마음을 품었다면, 먼저 내 수급부터 참한 다음에 마음대로 하시오. 나를 참하지 않는다면 나는 얼굴을 들고 세상에 살 수 없으니, 자결하고 말 것이오. 여러분은 알아서 하시오!”

두령들은 송강의 말을 듣고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맹세하고 헤어졌다.
송강과 여러 장수들은 그날 이후로 일이 없으면 성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정월 보름이 다가오자 동경성에서는 연례대로 등불을 많이 달아놓고 대보름을 경축했다.
거리마다 관아마다 등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한편, 송강의 영채 내에서 낭자 연청이 악화와 상의하였다.

“지금 동경성에서는 등불을 밝혀 놓고 놀면서 풍년을 기원하고 있고, 금상천자께서도 백성과 함께 즐기고 있네. 우리가 옷을 갈아입고 몰래 성으로 들어가서 구경하고 돌아오세.”
그때 한 사람이 끼어들어 말했다.

“자네들이 등불 구경을 갈 거면 나도 데려가게!”
연청이 보니, 흑선풍 이규였다.
이규가 말했다.

“자네들이 등불 구경 가려고 상의하는 걸 내가 이미 다 들었네.”

연청이 말했다.

“형님과 함께 가는 건 어렵지 않지만 형님은 성질이 사나워서 무슨 일을 낼까 봐 걱정이오. 지금 성원에서 방을 내붙여 우리가 성으로 들어가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 만약 우리가 형님과 함께 성으로 들어가 등불 구경을 하다가 사단을 일으키면 성원의 계략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내가 이번에는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자네가 하라는 대로 하겠네.”
“그러면 내일 옷을 갈아입고 나그네처럼 꾸미고서 함께 성으로 들어갑시다.”

이규는 아주 기뻐하였다.

다음 날 이규는 나그네 차림을 하고 연청을 기다렸다.
그런데 악화는 이규와 함께 가기가 두려워 몰래 시천과 함께 먼저 성으로 들어가 버렸다.

연청은 할 수 없이 이규와 함께 성으로 들어갔는데, 진교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 돌아서 봉구문을 통해 성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연예장 앞에 이르자, 안에서 징소리가 들렸다.

이규가 들어가 보자고 졸라 연청은 할 수 없이 이규와 함께 사람들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얘기꾼이 『삼국지』의 관운장이 뼈를 깎아 독을 치료하는 장면을 얘기하고 있었다.

당시 관운장은 왼쪽 팔에 독화살을 맞아 독이 뼈까지 스며들었다.
의원 화타(華陀)가 말했다.

“이 독을 치료하려면 구리 기둥을 하나 세우고. 거기에 쇠고리를 단 다음 팔을 그 고리에 끼우고 밧줄로 단단히 묶어야 합니다.
그리고 살을 째고 뼈를 삼분 정도 긁어내 독을 제거한 다음 기름 먹인 실로 봉합해야 합니다. 상처에는 고약을 바르고 또 약을 복용하여 보름쯤 지나면 원래대로 회복될 겁니다. 아주 어려운 치료법입니다.”
관공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대장부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까짓 팔 하나쯤이야. 구리 기둥이나 쇠고리 따위는 필요 없으니, 그냥 살을 째시오.”
관공은 바둑판을 가져오라 하여 객과 바둑을 두면서 왼쪽 팔을 내밀어 화타에게 뼈를 깎고 독을 치료하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객과 태연히 담소하였다.
얘기가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이규가 사람들 속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그 사람 대단한 호남아로구먼!”
그 소리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 모두 이규를 바라보았다.
연청은 황망히 가로막으며 말했다.

“형님! 왜 이러십니까! 연예장에서 그렇게 큰소리를 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면 어떡합니까?”
이규가 말했다.

“얘기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갈채하게 되었네.”

- 248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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