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24. 20:16ㆍ삼국지
삼국지(三國志) .. (378)
재기를 노리는 조진
검각관(劍閣關) 협곡에서 장합을 비롯하여 그를 따르던 위군을 몰살시킨 강유는 비록 적장이지만 노장군 장합을 예우하여 그의 시신에서 화살을 모두 제거한 뒤에 그를 우마차에 실어 위군 진지로 보내주었다.
장합의 대패 소식과 함께 장합의 시신을 돌려받은 사마의는 장군들을 모아놓고 한탄의 소리를 터뜨렸다.
"나는 수십 년 낚시를 해오면서 낚시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했는데... 내가 제갈양의 낚시질에 걸리다니! 그런데 세상에 이런 낚시법도 있다더냐? 미끼는 무도에 두고 바늘은 본영에 두다니 말이야!"
부도독 곽회가 울먹이며 말한다.
"대도독, 장합 장군이 화살을 스무 대나 맞았습니다. 흐흐흑!"
곽회의 서러운 흐느낌으로 시작으로 자리에 함께 있던 장수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리며 장합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잠시 이들의 모습을 넋놓고 바라보던 사마의가 장합이 싸운 전투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장합 장군이 전사하긴 했어도 아군의 사기는 꺾이지 않았다. 알고 있나? 장합 장군이 이끈 이만 정병 중에 전열을 이탈해 도주한 병사는 하나도 없다. 모두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했지. 이것은 아군의 승리야! 군심이 이 정도인데 촉군 따위가 겁이 나는가? 겁을 집어 먹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지! 사마소! "
사마의는 말미에 아들을 호명하였다.
"예!"
"지금 당장 내 말을 죽여 가죽을 벗겨서 장합장군의 시신을 감싸라. 본 도독이 직접 삼군을 이끌고 장합 장군의 출상을 하겠다!"
"알겠습니다."
장합의 출상은 즉시로 이루어졌다.
군사들은 모두 상복을 걸쳐입고 노장군의 마지막 가는 길에 예를 다하여 도열하였다.
사마의 부자는 선두에 서서 장합의 상여를 어깨에 메고 행렬을 지휘하였다.
그리고 영문 밖에 대기하고 있던 수레는 장합의 시신을 싣고 낙양으로 운구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이즈음 촉장 강유의 위장 투항 계략에 말려들어 공명의 중군 군영을 공격했다가 참패를 면치 못하고 진창성마저 촉군에 내준뒤 와병을 핑계로 사마의에게 대도독 자리를 물려주고 옹양을 거쳐 낙양의 본가에 돌아온 전임 대도독 황제 조예가 보낸 궁중의(宮中醫)로 부터 진맥(診脈)을 받고 있었다.
아들 조상은 의원 뒤에 서서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보일 듯 말 듯한 웃음을 짓는다.
이윽고 진맥을 끝낸 궁중의가 끙끙 앓는 소리를 하며 눈을 감고 있던 조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대장군, 소인이 이 처방전을 쓰게 되면 반드시 한 부를 폐하께 바쳐야 하옵니다. 어찌 할까요. 병세를 있는 대로 적을까요, 아니면...?"
처방전을 쓰기 위해 붓을 든 궁중의는 고개를 기울이며 조진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조진이 가늘게 실눈을 떠보이며 묻는다.
"오늘의 진맥 결과, 자네가 처방전을 쓴다면 어떤 처방전을 쓸 건가?"
"아, 네. 지금 대장군의 병세대로라면 약을 쓸 것도 없지요."
꾀병임을 알아차린 궁중의가 계면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으응? 그건 안 될 말이지."
조진이 짐짓 놀란 소리를 하였다. 그리하여 궁중의가 머뭇거리는 사이 조진의 말이 떨어진다.
"어쨌든 폐하께 올리는 처방전에는 무조건 병이 중하다고 써야 될 게 아닌가. 응? 그렇지 않나?"
자신의 책임이 드러나지 않도록 아들까지 팔아 와병을 핑계로 전선에서 멀어졌으니 궁중의에게 말하는 조진의 의도는 빤한 것이었다.
그러나 궁중의는 대답을 주저한다. 그러다가 난처한 듯 입을 여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소인이 올린 처방전이 거짓임을 아시게 된다면 소인은..."
하고, 말하면서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손을 들어 목을 그어 보였다.
조진이 눈을 반쯤 뜬 상태로 이런 궁중의의 거동을 살펴보고,
"지금 내 병세는 자네 말고도 귀신 또한 모르는데 폐하가 어찌 아시겠나?"
하고, 강압적인 어조로 말을 하니 궁중의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아, 예...!"
"흐흠!"
조진이 다시 눈을 감았다.
이 모든 것을 곁에서 지켜보던 조상이 밖을 향해 명한다.
"여봐라!"
"예!"
대답과 함께 시종이 무언가를 들고 들어온다. 그리고 이내 들고 온 것을 궁중의 앞에 대령하는데,
"어...엇...? 이건..."
시종이 들고 온 것은 은전(銀錢)이 수북히 쌓여 있는 쟁반이었다.
궁중의는 놀라며 은전과 조진을 번갈아 보면서 조진의 하명을 기다렸다.
그러자 조진이 헛기침을 해보인다.
궁중의는 단박에 조진이 보여준 헛기침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잘 알겠습니다. 대장군. 그러면..."
하고, 붓을 들어 조진이 원하는 대로 병이 매우 중하다는 처방전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폐하께서 이 처방전을 보신다면 분명히 휴가를 반 년쯤은 주실겁니다."
하고, 자신있는 어조로 말하였다.
"반 년씩이나?"
조진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아, 예!"
궁중의의 대답은 즉시 나왔다.
"아, 고맙네."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은 조진은 머리를 베개로 가져가며 눈을 감았다.
궁중의는 조진의 병이 매우 중하다는 처방전을 작성하여 들어 보이자, 어련히 알아서 썼을 것이라 본 조진이 아들을 불러 사안을 마무리 짓는다.
"상아, 배웅해 드려라."
궁중의가 돌아가고난 뒤, 곧바로 전령 하나가 죽간을 들고 달려왔다.
"장군, 농서 군정의 소식입니다."
조상이 보고서를 받아 들고 즉시 풀어보고는 통쾌한 웃음을 웃어 보인다.
"하하하핫! 아버님! 희소식입니다!"
조상은 조진의 앞으로 한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희소식이라니? 뭔데 그렇게 웃는단 말이냐?"
"사마의가 제갈양의 유인책에 말려들어 이만 군사 모두를 잃는 대패를 했다고 합니다. 또한 대장군 장합이 사마의의 과실로 인해 전사했답니다."
"장합이 사마의 때문에 죽었다고?"
조진은 병석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물었다.
"그렇습니다."
조진은 이제 더 의심할 것도 없다는 듯 손가락을 들어 밖을 향해 아들에게 외친다.
"상아, 어의가 가져가는 처방전을 잡아라. 어서! 그리고 사마의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고! 내가 대도독 자리를 다시 찾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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