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62~1
2021. 5. 5. 07:15ㆍ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62화
☞ 대진제국(大秦帝國)의 멸망
역이기와 육가가 진나라 장수들에게 비밀리에 뇌물을 주고 돌아오자, 유방은 크게 기뻐하며 장량을 불러 상의한다.
“적장들에게 뇌물을 주는 것까지 성공했으니 이제는 어떤 수순을 밟아 가면 좋겠소이까?”
장량이 대답한다.
“저들이 뇌물을 받았으니 머지않아 반드시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옵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으면 됩니다.”
“뇌물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난다는 말씀이오?”
“지금까지는 적의 수비가 매우 깐깐했지만, 이제 머지않아 적의 수비가 허술해질 것이옵니다. 그것이 바로 뇌물의 효과이옵니다.”
유방은 장량의 말이 쉽게 와 닿지 않아서인지 다시 묻는다.
“뇌물을 받았다고 철통같던 수비가 과연 허술해질까요?”
“뇌물이란 상상 외로 무서운 작용을 하는 법이옵니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쇠 먹은 똥 식지 않는다.’란 말이 있지 않사옵니까? 저들은 뇌물을 받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우리와 내통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설사 우리에게 성을 빼앗기더라도 자기만은 결코 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저들의 수비가 허술해질 것은 분명한 일이옵니다. 지휘관이 결사적으로 싸울 각오가 없는데, 부하 병사들이 결사적으로 싸우려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저들의 수비가 느슨해지면 그때 총공격을 가하여 무관을 일거에 점령해버려야 합니다.”
“선생의 계략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헌데 이왕 뇌물작전을 썼으니 싸우지 않고 무혈점령할 방도는 없겠소이까?”
그러자 장량은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그것만은 불가능할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비록 뇌물을 받기는 하였지만 세 장수가 모두 비밀리에 받았기 때문에 성을 그냥 내주자는 말은 아무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이름깨나 알려진 무장들인지라 자신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자진하여 항복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해서 저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다가 수비가 허술해졌을 때 무력으로 탈취하는 수밖에 없사옵니다.”
유방은 들을수록 신통한 장량의 계략에 탄복하였다.
그리하여 그날부터는 군사행동을 일체 중지하고, 많은 첩자들을 보내 적의 동태만 살피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뇌물의 효과’가 구체적으로 나타날 때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무관을 굳게 지키고 있는 한영, 경패, 주괴 등은 유방의 ‘선물’을 자신만 받은 줄 알고 저마다 마음이 흐뭇하였다. 그리고 세 장수는 제각기 속으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내대장부는 의리에 감동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유방이 나를 특별히 생각하고 선물을 보내주며, ‘자신이 천하를 호령하게 되면 나를 만호후에 봉해 주겠노라’고 했으니, 나는 그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에게 맞설 필요는 없지 않은가?‘
뇌물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라 이것을 받은 세 장수의 마음속에는 저마다 사심이 넘쳐나 그들의 방어태세는 날이 갈수록 해이해질 수밖에 없었다.
뇌물을 준 이후 무관은 단순히 방어태세만 소홀하게 된 것이 아니라, 세 장수 모두의 마음속에는 ‘유방이 무관으로 쳐들어왔을 때, 그에게 적대행위만 하지 않으면 나는 머지않아 만호후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까지 들어 그들은 각자 자축의 술잔까지 들고 있었다.
장량은 첩자들의 보고를 통해 세 장수의 이러한 동태를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적의 방비가 완전히 해이해졌다고 판단되자, 유방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한다.
“뇌물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무관을 쉽게 함락시킬 수가 있으니 출동명령을 내려주소서.”
유방이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어떤 방법으로 쳐들어가는 것이 좋을지, 선생께서 작전 계획을 직접 설명해 주시지요.”
“먼저 설구(薛歐)와 진패(陳沛)를 적의 후방으로 깊숙이 잠입시켜 불을 놓아 적을 놀라게 만든 후 패공께서 대군을 휘몰아 정면으로 쳐들어가시면, 무관은 어렵지 않게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참으로 좋은 작전이외다. 그러나 무관의 지세가 워낙 험준하여 후방으로 잠입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은데, 그 점은 어떻게 하면 되겠소?”
“지세가 험하여 후방으로 잠입하기가 어려운 것은 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번 우리에게 귀순해 온 관영이 무관의 지리에는 자신이 있다고 말한 바 있으니, 그를 앞장세워 길을 인도케 하면 무난히 잠입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관영을 이 자리에 불러 직접 물어보겠습니다.”
장량은 즉석에서 관영을 불러 무관의 후방으로 잠입할 길을 물어보니 관영은 자신 있게 대답한다.
“지형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후방으로 직접 잠입할 길은 없사옵니다. 그러나 동쪽으로 70리만 돌아서 가면 지세가 비교적 순탄하므로 그곳을 통하여 능히 후방으로 침투할 수 있사옵니다.”
“그러면 그대가 선봉장이 되어 설구(薛歐), 진패(陣沛) 등과 함께 후방으로 잠입하도록 하라!”
드디어 무관 공략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관영이 설구, 진패 등과 함께 사흘 후 자시를 기해 적 후방의 산야에 불을 놓을 것을 다짐하고 출발하자, 유방은 번쾌 등과 함께 총공격으로 무관을 일거에 점령할 준비를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로부터 사흘 후 약속한 시각 유방은 번쾌를 선봉장으로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노도처럼 무관으로 쳐들어갔다.
자시는 모든 군사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는 시각이었다. 이런 시각에 유방의 군사들이 성벽을 넘어 구름떼처럼 쳐들어가니, 잠들었던 진군들은 크게 당황하여 싸우기보다 도망치기에 바빴다.
대장 주괴와 경패는 유방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일이 있는지라, 그들은 아예 항전할 생각조차 않고 백기를 들고 나와,
“나는 진장 주괴입니다.”
“나는 진장 경패입니다.”
하고 자기 이름을 소리 높이 알리는 것이었다.
유방에게 귀순하여 만호후가 되고자 하는 뜻이 분명하였다.
선봉장 번쾌가 그런 모습을 보고 크게 웃다가
“이놈들아! 뇌물을 받고 나라를 팔아먹는 놈들을 어디에 쓰려고 살려 둔다는 말이냐?”
하고 호통을 치며 말을 달려가 두 장수를 한칼에 베어버리자, 멀리서 그 광경을 목격한 적장 한영은 크게 당황하였다.
‘나도 항복을 해보았자, 결국에는 저 꼴이 될 게 아닌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한영은 남은 병사들을 수습하여 결사적으로 싸우고자 하는데, 갑자기 후방으로부터 누군가가
“적의 선봉이 이미 후방 깊숙이 침투하여 산과 들에 불을 질러놓고 공격해오고 있다.”
하고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전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한영은 남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황급히 함양으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유방은 무관을 점령하고 나자, 그 여세를 몰아 하후영(夏侯英)을 선봉장으로 삼아 함양을 향해 노도와 같이 쳐들어갔다.
때는 한겨울인 12월 초순 새벽, 초겨울의 칼바람이 살을 에는 듯 차가웠다. 그러나 승리에 승리를 거듭한 유방의 군사는 추운 줄도 모르고 파죽지세로 전진하였다.
드디어 함양이 바로 눈앞에 굽어보이는 패상(覇上)이라는 곳까지 당도하였다.
유방은 일단 그곳에서 전열을 가다듬으며,
“저기 내려다보이는 곳이 진나라의 도읍인 함양 관중(關中)이다. 최후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으니 모든 장졸들은 끝까지 분전해 주기 바란다.”
하고 사기를 돋우며 독전을 계속한다.
한편, 함양으로 쫓겨 돌아온 한영은 삼세 황제에게 급히 아뢴다.
“황제 폐하! 큰일 났사옵니다. 유방이 무관을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함양으로 쳐들어오고 있는 중이옵니다.”
삼세 황제는 기절초풍할 듯이 놀라며,
“뭐라고? 유방이 함양으로 쳐들어온다고? 그렇다면 어서 중신들을 급히 불러라.”
중신들이 급히 대궐로 몰려 들어왔다.
그러나 국정에 밝은 중신들은 조고와 함께 이미 목이 달아났고, 새로 부임한 중신들은 한결같이 국정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들뿐이었다.
“유방이 함양으로 쳐들어오는 중이라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경들은 대책을 급히 말해 보오.”
그러나 중신들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정에 어두운 그들에게 신통한 계책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위기를 맞아 어찌 대책이 하나도 없단 말이오? 경들은 빨리 대책을 말해 보시오.”
그러자 상태부 부필(孚畢)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지금 우리의 형편으로 승승장구해 오는 유방의 대군을 막아낼 길은 없사옵니다. 그러므로 폐하와 폐하의 존족의 존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폐하께서 백기를 들고 유방을 직접 영접하시어 항복하시는 길밖에 없는 줄로 아뢰옵니다.”
“뭐요? 짐이 백기를 들고 나가 항복을 하라는 말이오?”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어찌 존명을 보존하실 수 있으며, 어찌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가 있사옵니까?”
그 소리를 듣자 3세 황제는 목을 놓아 통곡하며 탄식한다.
“아!, 짐은 황제로 등극한 지 두 달도 못 되어 시황제께서 이루어 놓으신 대진제국을 망하게 하였으니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단 말이냐!”
그러나 통곡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고, 3세 황제 ‘자영’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만 있는데, 시신이 급히 달려오더니,
“폐하! 유방의 군사가 관중으로 물밀 듯이 몰려 들어오고 있다고 하옵니다.”
하고 급히 아뢰는 것이었다.
3세 황제도 이제는 죽지 않으려면 항복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항복을 할 것이니 수레를 급히 대령하여라!”
3세 황제는 마침내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항복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옥새(玉璽)를 가슴에 안고, 하얀 수레에 올라 백기를 들고 유방을 영접하기 위해 원문(轅門) 밖으로 마중을 나왔다.
원문 밖에서는 유방의 군사가 노도처럼 몰려오고 있는데, 선봉장 번쾌가 백기를 먼저 보고,
“진황제가 백기를 들고 항복하러 나오니 모든 장병들은 공격을 멈추어라!”
하고 큰소리로 영을 내리고, 3세 황제를 유방 앞으로 인도해 오자 3세 황제는 땅에 꿇어앉아 유방에게,
“나는 제위에 오르기는 했으나 덕이 없어 장군에게 항복하여 만백성들을 구하고자 합니다. 장군께서는 이 옥새를 받아주소서.”
하고 말하며, 유방에게 옥새를 두 손으로 받들어 올렸다.
유방은 옥새를 받아 들고 크게 기뻐하며,
“그대가 항복을 청해 왔으니 나는 초왕 전하에게 말씀드려 그대의 목숨은 구해 드리도록 하겠소. 그리고 토지 등도 많이 하사케 하여 여생을 불편 없이 지내시도록 해드리겠소.”
유방은 즉석에서 번쾌에게 명하여 진황과 황족들을 모두 한곳에 모이게 하였다.
이렇듯 유방의 처분은 어디까지나 관대하였다.
그러나 유방의 관대한 처분을 대장들 모두가 반대하고 나온다.
“진황 일가는 오늘날까지 대대로 백성들을 괴롭혀 왔는데, 패공께서는 그런 놈을 어찌하여 살려두려고 하시옵니까?”
유방이 웃으며 대답한다.
“초왕께서 나를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진을 치게 하신 것은 내가 관인을 베풀 줄 아시기 때문이었소. 그런데 내가 만약 항복해 온 진황을 죽인다면, 그것은 대왕 전하의 어의에 어긋나는 일이 될 것이오.”
그리하여 유방은 입성식을 거행하는 자리에서 모든 장병에게 논공행상을 후하게 내린 다음, 학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었고, 이로써 대진제국은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
일찍이 진왕 조정(趙政)이 6국을 통일하여 대진제국을 건립하고 자기 스스로를 ‘시황제’로 칭하게 하면서 2세 황제, 3세 황제로 이름 하여 자손만대로 계승해 나가고자 했었다.
그러나 그의 웅대한 꿈도 내부의 부패와 간신의 횡포를 막지 못하고 기울어가기 시작하니, 시황제가 BC 221년 대진제국을 건립한 지 불과 14년 만인 을미년 10월에 그의 장손 ‘자영’이 3세 황제로 등극한 지 43일 만에 대진제국은 유방에 의해 깨끗이 망해버리고 말았다.
※ 註) 조나라에서 태어났다 하여 ‘조정(趙政)’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실제는 여불위의 아들이라 ‘여정(呂政)’이라고도 하지만, 원래 진나라 왕통의 성을 따라 ‘영정(嬴政)’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외에 조상이 흉노족이라 흉노의 성을 붙이기도 함.
- 제 63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