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방랑기 147화
2021. 1. 7. 09:29ㆍ김삿갓 방랑기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47화
[미궁 속의 방구월팔삼(方口月八三)]
김삿갓은 객줏집으로 돌아오며 여인에게 이런 농담을 하였다.
“오늘 저녁에도 자네 집에 끌고가설랑 숙박료부터 내놓으라고 극성을 부릴 텐가?”
여인은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그런 걱정은 마시라요. 이제는 돈 가지고 따질 우리 사이가 아니잖아요. 숙박료는 한 푼도 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 그 대신 상금이나 탈 수 있도록 하시라요.”
여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상금 생각만 꽉 차 있는 성 싶었다.
이날 저녁 김삿갓은 저녁을 먹고 난 뒤에 方口月八三이라는 글자를 백지에 커다랗게 써서 바람벽에 붙여 놓았다. 자꾸만 읽어 보노라면 무슨 해답이 떠오를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 보아도 신통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여보게! 죽은 사람이 뭐 하던 사람이라고 했지?”
“죽은 사람은 읍내에서 쌀장사를 해먹던 사람이라면서요.”
“쌀장사를 해먹는 사람이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비참한 죽음을 당했을까? 내일은 읍내에 들어가서 그 사람이 죽게 된 이유를 알아보고 와야 하겠는걸!”
여인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는 빛을 보이며 말한다.
“설마, 당신은 쌀장수 죽은 이유를 알아본다는 핑계로 도망을 가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김삿갓은 어이가 없어 너털웃음을 웃었다.
“이 사람아! 자네는 사람을 그렇게도 못 믿는가? 나는 상금이 문제가 아니라 이 문제만큼은 내가 꼭 풀어야 하겠다는 생각이네. 자네가 그렇게도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내일은 배낭과 삿갓까지 자네에게 맡겨두고 나 혼자서 읍내에 다녀오도록 하겠네.”
이리하여 김삿갓은 무참히 살해된 쌀장수 전명헌의 주변을 염탐하기 위해 다음 날 혼자서 읍내로 들어갔다.
방문이 붙어 있는 남대문 앞으로 찾아가 보니 이날도 많은 선비들이 방문을 열심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김삿갓은 방문을 두 번 세 번 자세히 읽어 보고 나서 옆에 있는 선비에게 물어보았다.
“방문을 보면 피살자의 등골에 ‘방구월팔삼’이라는 글자가 씌어 있다고 하는데, 혹시 잘못 쓴 글자가 아닐까요?”
선비가 대답한다.
“내가 보아도 ‘방구월팔삼’이라는 글자는 암만해도 말이 되지 않아요. 나도 노형과 같은 의심이 들어 시체를 직접 검사해 보았다오. 그런데 확실한 것은 ‘방구월팔삼’이라는 글씨가 쓰인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오.”
“노형은 시체를 직접 보셨던가요? 그렇다면 피살자의 시체는 어디 있습니까?”
“보고 싶거든 대문 안에 들어가 보시구려. 시체가 그늘진 곳에 거적으로 덮여 있을 것이오.”
김삿갓이 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과연 시체는 그늘진 곳에 거적으로 덮여 있고, 그 옆에는 피살자를 때려죽인 몽둥이까지 놓여 있었다.
거적을 들어 보니 시체의 등골에는 ‘方口月八三’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方口月八三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이 몽둥이를 이용해 풀어 보시오.’
라고 쓴 종이쪽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뭐......? 이 몽둥이를 이용해 풀어 보라고......?”
김삿갓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길이 없었던 김삿갓은 피살자가 운영하던 쌀가게를 찾아가 동리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쌀가게는 빈민촌 한복판에 있었다.
“전명헌이라는 사람이 평소에 누구에게 원한을 산 일이 있는가요?”
“글쎄요. 우리가 그런 것까지야 알 수 있나요.”
“원수진 사람이 없다면 사람을 함부로 죽였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누가 무슨 생각에서 죽였는지 우리들은 알 수가 없지요.”
“죽은 사람은 평소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어떤 평을 받아 왔습니까?”
“겉으로는 무척 양순한 사람이었지요. 그러나 장사에 있어서만은 너무 야박하다는 비난을 자주 들었지요.”
“장사에 야박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똑같은 한 말을 사 와도 다른 가게에서 사 오면 됫박이 넉넉한데, 전명헌네 가게에서 사 오면 언제나 되가 부족했다는 말이지요.”
“그런 줄 알면 다른 쌀가게에서 사 왔으면 될 게 아니오?”
“다른 가게에서는 외상을 주지 않지만 전명헌네 가게에서는 얼마든지 외상을 잘 주었거든요.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가난하기 때문에 전명헌네 가게는 되가 부족한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집에서 외상 쌀을 가져다 먹었다오. 그게 바로 가난한 사람들의 비애가 아니겠소?”
김삿갓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명헌이라는 쌀장수가 살해된 원인은 바로 그런 점에 있지 않았는가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이런 말도 하였다.
- 제14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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