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방랑기134화
2020. 12. 23. 09:02ㆍ김삿갓 방랑기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34화
[江村暮景(강촌모경)]
김삿갓은 자신의 신분이 들통 나는 바람에 크게 당황하였다.
“하하하, 맞대 놓고 다그쳐 물으시니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군요. 내가 방랑객 김삿갓인 것만은 틀림이 없소이다. 내가 김삿갓인 것을 어찌 아셨소이까?”
김삿갓은 어쩔 수 없이 실토하며 반문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일제히 쌍수를 들어 환호하며,
“존귀하신 어른을 이런 자리에서 만나 뵙게 되어 다시없는 영광이옵니다.”
하고 한결같이 머리를 수그려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라 어떤 기생은 부랴부랴 술까지 따라 올리며 말한다.
“선생이 술을 좋아하신다는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이 술잔을 받으시옵소서.”
김삿갓은 술잔을 받아 마시며, 또다시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대관절 내가 김삿갓인 것을 어떻게 아셨냐 말씀이오?”
생전 처음 만나는 평양 기생들이 자기 이름을 알리라고는 생각지도 못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김삿갓의 의혹은 지극히 간단하게 풀렸다.
늙은 기생 하나가 김삿갓에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선생은 얼마 전부터 임진사 댁에 기거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임진사댁 별당에서 저녁마다 선생을 모시는 산월이라는 아이는 바로 나의 수양딸이랍니다. 저는 그 애를 통해 선생이 유명한 방랑시인 김삿갓이라는 말을 너무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촌수를 따지자면 저는 선생의 장모가 되는 사람이에요. 호호호”
장모라는 소리에 노기들은 허리를 움켜잡고 웃는다.
김삿갓은 적이 계면쩍어서,
“아, 그래요? 장모님을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큰절을 올리기로 하지요.”
하고 짜장 큰절을 올리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 바람에 모든 기생들이 박장대소를 하는 중에 한 기생이,
“너는 삿갓 어른 같은 유명한 시인을 사위로 두어서 얼마나 좋겠니?”
하고 농담을 하자, 장모라고 자칭한 노기는 시큰둥하게 웃어 보이며,
“씨도 안 먹히는 소리 그만하여라. 유명이 밥 먹여준다 더냐? 임진사께서 특별히 생각해주지 않으셨다면 우리 식구는 밥을 굶을 판이었다.”
하고 능청을 부려대고 있었다.
그러자 한 편에 앉아 있던 다른 기생은 그 말이 듣기 거북했던지,
“아무리 농담이기로서니 너는 어쩌면 그런 농담을 함부로 하고 있니? 얘들아! 오늘은 우연하게도 유명하신 선생님을 이 자리에서 만나 뵙게 되었으니 우리가 오늘 지은 시를 삿갓 선생한테 보여드리고, 강평을 한 번 받아 보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만은 모든 기생들이 정색을 하며, 찬성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래! 우리가 지은 시를 이왕이면 삿갓선생한테 강평을 받아 보면 크게 공부가 될 게야.”
김삿갓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허허, 나더러 여러분의 시를 강평해 달라고요? 시라는 것은 자기가 멋대로 지었으면 그만이지, 내가 무얼 안다고 남의 시를 강평한단 말이오?”
김삿갓은 사양을 하면서도 그들의 실력이 과연 어느 정도인가 내심으로는 은근히 궁금하였다.
그러자 저쪽 구석에 새침하게 앉아 있던 기생이 머리를 수그려 보이며 간곡하게 부탁한다.
“저희들은 지금 시를 공부하고 있는 중이옵니다. 선생 같은 어른께서 한 번 보아주시면 많은 공부가 될 것이니 꼭 한 번 보아 주십시오.”
대개는 장난삼아 시를 지은 모양이지만 그 기생의 태도는 사뭇 진지하였다.
김삿갓은 술과 안주를 잔뜩 얻어먹은 데다 이런 부탁까지 받고 보니 그냥 꽁무니를 빼기는 난처하게 되었다.
“여러분이 그토록 원하신다면 한 번 읽어 보도록 하지요. 그러나 조금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시라는 것은 자기가 직접 지어 보는데 즐거움이 있는 것이지, 잘 짓고 못 짓고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아요.”
김삿갓은 그들의 자존심을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그와 같은 예방선을 쳐놓고 시를 한 편 한 편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까부터 새치름해 보이던 기생이 이런 말을 일러 준다.
“저희들은 오늘 門, 竹, 昏 세 글자를 운자로 썼사옵니다. 그런 줄 알아주십시오.”
김삿갓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편 한 편 읽어 보았다.
그러나 이미 예상했던 대로 거의 전부가 읽어 볼 가치가 없는 졸작(卒作)들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제깟 것들이 주제넘게 무슨 시를 짓는답시고...’
김삿갓은 속으로 그렇게 얕잡아 보고 무심히 읽어 내려오다가 ‘강촌모경(江村暮景)’이라는 시에 와서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허~걱! 이 시는 대가(大家)의 풍모가 엿보이는데, ‘강촌모경’이라는 시는 누가 지었지요?”
사실 이처럼 훌륭한 시를 발견하게 되리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노기들은 좋은 시를 발견했다는 소리에 혹시라도 자기 작품이 아닌가 싶어 김삿갓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러나 자기 작품이 아닌 것을 알고 나자, 모두들 실망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얘들아! ‘강촌모경’이라는 시는 누가 지은 시냐?”
하고 도중으로 물어 쌓는다.
김삿갓은 처음에는 아무리 좋은 시를 발견하더라도 그 작품을 특별히 치켜 올리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워낙 시기심이 많기 때문에 어느 한 작품을 특별히 치켜세웠다가는 그들의 우정을 해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워낙 뛰어난 작품을 발견하고 보니 너무도 감격스러워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치며, 그 시를 흥겹게 읊어대었다.
千絲萬縷柳垂門(천사만누유수문)
綠暗如雲不見村(녹암여운불견촌)
忽有牧童吹笛過(홀유목동취적과)
一江烟雨自黃昏(일강연우자황혼)
(해설)
실버들 천만 가지 문 앞에 휘늘어져
구름인 양 눈을 가려 마을을 볼 수 없네.
목동의 피리소리 그윽이 들려오는데,
보슬비 내리는 강엔 날이 저문다.
- 13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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