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방랑기 54화
2020. 10. 4. 08:02ㆍ김삿갓 방랑기
★시인 김삿갓 방랑기 054화
[아들에 이어 마누라를 잃은 사내를 위로하며(人生無常)]
오진사 집을 떠나온 김삿갓은 원주(原州)를 향해 걸어갔다.
때는 가을이 짙어져 산길 사이에 산들바람이 제법 차갑게 느껴졌고, 하늘가에는 어느새 기러기가 ‘끼룩’대며 떼 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김삿갓은 아침부터 스산한 기분이 들던 차에 갑자기 당나라 시인 유우석의 시가 머리에 떠올랐다.
何處秋風至(하처추풍지)
蕭蕭送雁群(소소송안군)
朝來入庭樹(조래입정수)
孤客最先聞(고객최선문)
(해설)
가을바람은 어디서부터 불어오는가?
솔솔 불어 기러기 떼를 보내네.
아침부터 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
외로운 나그네가 먼저 듣노니.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사십 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새로 만든 듯 한 무덤 앞에 엎드려 통곡하는 것이 보였다.
인정 많은 김삿갓은 그냥 지나쳐 버릴 수가 없어 사내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보시오. 누가 돌아가셨기에 이리도 섧게 우시오.”
그러자 눈물 콧물로 얼굴이 범벅이 된 사내가 고개를 들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호소하듯 대답한다.
“얼마 전에는 자식이 죽었는데, 이번에는 마누라가 또 죽었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오.”
김삿갓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 왔다.
천지간에 가족을 잃은 슬픔이야 그 어떤 슬픔에 견주랴, 생각한 삿갓은 사나이를 이런 말로 위로했다.
“인생이란 누구나 죽는 것이니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고 고정하시오. 불가(佛家)에서는 사람의 삶을 윤회(輪廻)로 보아 돌고 도는 것이라 하지 않소? 그렇게 생각하면 죽음이란 반드시 슬퍼만 할 일은 아닐지 모르오.”
사내는 잠자코 삿갓의 말을 듣기는 하였으나 지금 그의 슬픔은 몇 마디 말로서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이에 김삿갓은 즉흥시 한 수를 그의 앞에서 읊어 주었다.
哭子靑山 又葬妻(곡자청산 우장처)
風酸日薄 轉凄凄(풍산일박 전처처)
忽然歸家 如僧舍(홀연귀가 여승사)
獨擁寒衾 坐達鷄(독옹한금 좌달계)
(해설)
아들이 죽은 뒤에 마누라가 또 죽으니
찬바람 해걸음이 처량키 그지없네.
돌아온 집안은 절간처럼 쓸쓸하여
찬 이불 품에 안고 혼자서 밤새 울리.
인간의 삶이란 것은 희로애락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교차되다 보니 어느 순간에 슬픈 일이 닥치는 것일 진데, 하필이면 아들이 죽은 뒤에 연달아 마누라가 죽은 일은 누가 보아도 애달픈 일이며, 당사자가 겪는 슬픔을 어찌 말로 다 표현을 하랴 싶었다.
김삿갓은 어떡하든 그를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그만 울고 돌아갑시다. 혼자 집으로 돌아가기가 쓸쓸할 터이니 오늘밤은 나하고 댁에서 같이 지내면 어떻겠소?”
김삿갓은 어차피 남의 집 신세를 져야 할 판이었기에 이왕이면 하룻밤을 그와 함께 지내면서 마음껏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그러자 사내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했다.
“위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나 나는 딸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을 장모님이 계셔서 처갓집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사내는 아내를 잃은 자신의 슬픔도 크지만 사랑하는 딸을 잃은 장모님의 슬픔을 헤아리는 갸륵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사내는 김삿갓의 배려가 고마웠던지 다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다.
“저 고개를 넘어가면 초시 댁이라는 집이 있소. 칠십 넘은 노파 혼자 살고 있는 집이오. 혹시 그곳에 가신다면 오늘 하룻밤을 쉬어 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나이는 비통한 가운데 이렇듯 길에서 만난 나그네의 잠자리 걱정까지 해주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고맙다고 말을 하며 사나이에게 어서 아내를 잃은 슬픔을 추스를 것을 당부하고 고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05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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