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군의 아버지 김홍일 장군

2020. 9. 14. 20:08자유게시방

 

 

 

 

 

 

김홍일 장군

 

1898.09.23~1980.08.08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

 

 

 

평안북도 용천 출생, 오산학교에서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

 

오산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

 

 

 

1920년 구이저우의 육군군관학교 졸업후 중국 국민혁명군 소위 임관

 

중국 관내 항일단체 활동을 지휘(북만주 군비단, 한국의용군 사령관 등)

 

1932년 한인애국단원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거사에 필요한 폭탄을 제작하여 지원

 

※ 백범일지에서 한인애국단의 거사를 지원한 중국인으로 언급되는 '왕웅'이 바로 이분

 

 

 

1939년 국민혁명군 육군 소장(★)으로 진급, 제 19 집단군(야전군) 참모처 처장 임명

 

1941년 제 19 집단군 19사단장 대리로 일본군(33사단, 34사단)과의 샹가오회전(上高會戰)에서 승리

 

1945년 5월 중국 중앙군 중장(★★)으로 진급, 6월 한국광복군사령부 참모장 역임

 

 

 

광복후 3년이 지난 1948년 귀국, 12월 국군 창설 시기 육군 준장(★)으로 임관

 

창군 멤버 중 유일하게 대부대를 지휘하는 전투를 경험한 장성급 장교.

 

 

1949년 1월 육군사관학교 교장, 3월 육군 소장(★★) 진급(대한민국 국군 역사상 최초의 장군 임관자)
1950년 6월 10일 육군참모학교장 부임

 

 

 

1950년 6.25 전쟁 발발,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으로 부임(한강선 방어전투 지휘)

 

▶국군의 한강 방어선이 무너지자 한강선에서 밀려오는 북한군을 '1주일간' 방어

 

(김홍일 장군이 시흥지구전투사령관으로서 시간을 벌어주지 못했다면 낙동강 방어선 구축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미국은 '3일간'의 지연작전만을 요구

 

1950년 7월 5일 육군 제 1군단장으로 임명

 

▶수도사단, 1사단, 2사단을 지휘, 미군과의 협조로 진천-음성-청주 전선에서 성공적인 지연전을 수행

 

▶낙동강 방어선에서 포항 기계(杞溪)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반격작전의 기틀 마련

 

1950년 7월 24일 육군종합학교 교장
1951년 3월 2일 육군 중장(★★★) 진급
1951년 3월 20일 육군 중장 예편

 

 

 

 

 

※친일행적, 군부독재에 부역한 과오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