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 출장 기행문 맺음말(후기) - 1부

2022. 6. 17. 06:57아프리카 출장 기행 문

★ 아프리카 출장 기행문 맺음말(후기) - 1부

본 출장 기행문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평생 일기를 쓰고 있는 습관 때문에 수첩에 메모해 두었던 것을 어느 날 문득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간략하게 편한 마음으로 작성해 본 것입니다.

또한 출장을 다녀온 시기가 2002년도였기 때문에 모든 내용은 당시 상황을 기준한 것입니다.
따라서 기행문 내용 중 뉴 수단이 2003년 1월 15일경 반독립을 할 것이라는 것은 당시 미국의 중재 하에 북부 수단과 남부 수단 간의 위정자들이 합의한 것으로 반독립 후 향후 5년 이내에 완전히 독립하기로 합의된 상태였습니다.

반독립 상태란 UN 등에 대외적으로 완전 독립 시기까지 현재와 같이 하나의 수단(Sudan)이라는 국가 명으로 국가 형태를 갖되 남부 수단(뉴 수단)은 수단(북부 수단) 내에서 자치정부를 유지하고, 북부 수단으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으며, 뉴 수단의 대통령은 남북 통합 수단의 부통령직을 갖는다는 이원적 연방정부 형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중재 하에 이루어진 남·북 수단 간의 약정이 원만하게 이행되지 않음으로 해서 결국 2005년도까지 극렬하게 전쟁을 치르기에 이릅니다.
이후 휴전을 하게 되지만 간헐적으로 교전은 계속되었으며, 뉴 수단이 완전 독립국가가 되기까지는 수많은 진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북부 수단은 그동안 엄청난 석유자원 개발로 부를 축적해왔지만 남부 수단에는 그 부를 단 1%도 배분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많은 전쟁을 통하여 피를 흘려왔습니다.

이에 남부 수단은 앞으로 생산되는 석유의 50% 이상을 자국에 배분하라고 북부 수단에 요구하였으나 북부 수단은 배분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배분율에 합의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완전 독립을 할 수 없는 이유 중에 또 하나의 이유가 남부 수단은 한 마디로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즉, 땅이라고 주장하는 국토와 국민이라는 사람만이 존재하고 행정 수반과 몇몇 각료만 있을 뿐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재원과 어떠한 재원은 물론 아무런 기술과 기반시설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학교도 없고, 집도 없었으며, 공장도 없는 원시적인 지역으로 지구 상의 최빈국이었니다.
단지, 뉴 수단의 지각이 있는 일부 위정자들이 국가 형태를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은 하고 있었으나 오래전부터 미국의 젖줄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뉴 수단이 군대를 조직하고 유지하면서 북북 수단과 오랜 기간 동안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왔습니다.
이와 같이 뉴 수단이 아무런 기반도 없이 전쟁을 치르면서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경우 미국이라는 거대한 지원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미국이 무기와 20억 불을 지원해 주면서 북부 수단과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게 하는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72년 전 대한민국이 6.25 전쟁을 치를 때도 우리나라는 지구 상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였습니다.
당시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의 도움(참전)이 없었다면 아마도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뉴 수단은 2011년 7월 9일 미국과 유엔의 중재로 우여곡절 속에 남수단 공화국(Republic of South Sudan)이라는 국명으로 완전 독립을 하기에 이르며, 비로소 주권국가로 탄생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남수단은 최초 1870년 이집트로부터 지배를 받기 시작하여 1889년 영국 지배, 1956년에 북부 수단과 함께 하나의 국가인 수단으로 독립하였습니다.

그러나 뉴 수단은 기행문 첫 부분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북부 수단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을 당하는 등 실질적으로 북부 수단의 지배를 받아오면서 그들과 내전에 시달리다 1972년 휴전에 이르렀으나 2011년 완전 독립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국지전과 격전을 반복해 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1870년 이집트 지배를 시작으로 영국 지배, 나아가 북부 수단에 예속되어 오기까지 무려 141년 만에 완전한 해방을 찾은 독립 국가를 이루었고, 완전한 주권 국가가 된 것입니다.

뉴 수단은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2002년) 수도 주바(Juba)의 인구수가 불과 5천 명 정도였던 것이 2011년 남수단으로 완전 독립 후 100만 명으로 급증하는 양상을 보이는 등 급속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부족 간의 또 다른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2부로 이어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