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내가 없는 세상

2026. 3. 18. 12:40자유게시방

언젠가 내가 없는 세상

어느 날 나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상상이 아니라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 숨을 쉬고
생각하고
울고 웃고
누군가와 함께
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언젠가
이 모든 작용은 멈춘다.

몸은 더 이상
나를 대신해 움직이지 못하고

내가 나라고 믿어 온
의식 또한
이 세상과의 연결을 놓게 될 것이다.

내가 없는 세상.

세상은 아무 일 없이
그대로 흘러갈 것이다.

아침은 오고,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잠에 들 것이다.

내가 없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질 일은 없다
.
그 사실 앞에서
문득 공허가 스친다.

내가 애써 온 시간들,
붙들고 지켜 온 마음들,
소중하다 여겨 온 많은 것들이
세상 전체로 보면
티끌처럼 작은 까닭이다
.
내가 없어도
세상은 강물처럼 흐를 것이다.

그러니 무엇 하나
온전히 내 것이라 할 수 없다.

나는 잠시 머물다 가는
한 점 구름 같은 존재.
살아 있다는 것은

붙드는 일이 아니라
맡겨진 시간을
제 몫만큼 살아 내는 일이다.

내 삶을 채워 준 것들,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
내 몸도
내 시간도
끝내는 내 것이 아니었다.

다만 한동안
내 곁에 머물렀을 뿐이다
.
그래서 오늘
이 순간이 더 또렷해진다.

물 한 모금,
낯익은 목소리,
창가에 드는 빛,
작은 꽃,
한 끼의 식사,
차 한 잔.
이 평범한 것들이
문득 눈부시다.

이 모든 것이
다시는 오지 않을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없을 그날은 오겠지만

바로 그 끝이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은
더 깊이 살아야 할 시간이 된다.

우리는 영원해서 소중한 것이 아니라

끝이 있기에
더 소중하다.

내가 없는 그날들

그 뒤에도
누군가의 가슴에
작은 온기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은 여전히 흐르겠지만
내가 다녀간 자리에는
조금 덜 차갑고
조금 더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다면,
나는 비록 없어도
내 삶은 헛되지 않았다고
조용히 음미하는
이 순간이다.


-능행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