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1. 04:37ㆍ그때그시절 세계역사 625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대한민국 근대사에 조선족은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나에 대해 간략한 기술이 필요하다.
간도 지방의 조선인 이주는 사실 19세기 중엽부터 이뤄졌고 일제 식민지하에서 "만주 개혁운동"이라는 이민정책으로
인구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해방 전까지 만주 지역의 이주 조선인 숫자는 대략 216만 명까지 증가했다.
이후 일본 패망과 함께 해방을 맞이하여 절반은 한국으로 귀국한 반면 나머지는 공산주의를 택하며 중국에 잔류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조선의용군을 거쳐 해방 후 창설된 조선인민군에 편입되었으며 김무정의 조선의용군 세력은
국공내전을 거쳐 모택동의 명령에 따라 만주로 이동 연변에 정착하여 조선족 자치주 형성의 근간이 된다.
이들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 조선인민군으로 6.25 남침 선봉에 섰으며 남진한 인민군 보병 21개 연대 가운데 47%에 해당하는
10개 연대가 만주의 조선족 부대였고 서울을 점령하여 중앙청에 제일 먼저 인공기를 꽂은 부대도 바로 이들이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고 1952년에 중국 공산당은 민족구역 자치실시요강을 발표하게 된다.
조선족들은 모택동의 국공내전에 참여함으로써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 장악에 큰 기여를 했고 이후 6.25 전쟁에서도
혁혁한 공로를 세웠기에 중국 공산당은 이들의 기여에 대한 공적으로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 규정하고, "조선족"이라는
명칭을 붙여줬으며 길림성 동부에 연변 조선민족 자치구를 탄생시킨다.
중국의 소수민족은 조선족을 포함하여 55개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중국 공민으로 조선족은 크게
흑룡강(헤이룽 강), 요령성(랴오닝 성), 길림성(지린 성) 이렇게 세 지역으로 구분된다.
이들 조선족에게 있어 6.25 전쟁은 미국에 대항하여 싸운 항 미원 조전 쟁이라 정의되며 이들은 자신들의 조국은 엄연히 중국이고
중국 공민이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갖게 되고 이런 의식은 2,3세대를 거치며 더욱 고착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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