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구팽(兎死狗烹)의 유래

2025. 10. 7. 21:18자유게시방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유래

항우를 물리치고 중원을 제패한 유방이 한 고조로 즉위한 뒤, 

초왕으로 책봉한 한신을 처형한 사실은 두고두고
후세 사가들의 시비의 대상이 되어왔다.
책사 장량, 상국 소하와 함께 유방을 도운

삼걸(三傑)의 한 사람인 대장군 한신은 항우,
유방과 더불어 천하를 삼분할 만한 실력을 지닌 군략의 천재였다. 
그러므로 통일된 후에는 한신의 실력과 위치가 유방에게 위협으로

느껴지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반역을 꾀한다는 죄목으로 포박 당한 한신은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약은 토끼가 죽고 나니 공을 세운 사냥개는 쓸모없다 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는구나(狡兎死良狗烹).’ 
아울러 함께 건국을 도운 무장으로 각각 왕으로 봉해졌던

팽월과 영포 등도 결국 한신과 같은 운명을 맞았다.

수년 전, 

회의장을 지낸 모씨가 사정의 칼을 맞고 쫓겨날 때 썼던
유명한 말 ‘토사구팽(兎死狗烹)’은 한신이 남긴 이 말을 다시 인용한 것이다.
유방의 공신에 대한 처사는 각박하다 못해 잔인하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권력을 잡고자 하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쟁취하거나 권력을 지킬 필요가 있으므로,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은 단호히 처단하는 것은 패자(覇者)의 선택이 아니겠는가. 

한 고조로 즉위한 유방으로서는 태자로 책봉된 아들이 총기가 없고

유약한 데다, 
그러므로 황실을 넘볼만한 공신들을 미리 제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4백 년 동안 한 제국이 융성했던 것은

이때 황실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해둔 유방의 정치수완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지금 와서 도리켜 잘생각 해 볼 지어다~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