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 황희
2025. 9. 18. 20:35ㆍ자유게시방
조선 태조 때부터 세종에 이르기까지 4대의 임금을 모셨으며,
18년 동안 영의정을 지낸 황희 정승은 매우 어질고 청렴하였다.
만백성은 황희를 어버이처럼 따랐다.
☆☆☆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젊은 선비 황희는 들길을 가다가 밭둑의 나무 그늘에서 쉬었다.
바로 그 앞의 밭에서는
늙은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늙은 농부는 두 마리의 소를 부리고 있었는데,
한 마리는 검은 소이고 한 마리는 누런 소였다.
황희는 소 두 마리를 바라보다가
늙은 농부에게 외쳐 물어보았다.
"여보시오, 두 마리 소 가운데
어느 소가 더 일을 잘합니까?"
늙은 농부는 이쪽을 바라보더니,
밭을 갈다가 날고 황희에게 걸어왔다.
농부가 황희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말했다.
"누런 소가 일을 더 잘해요. 검은 소는 가끔 꾀를 부린답니다."
황희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으나,
늙은 농부의 태도가 이상스러웠다.
'뭐하러 그 대답을 하기 위해서
일손까지 멈추고 와서 속삭일까?'
황희는 농부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밭에서 소리쳐 말씀하실 일이지,
어찌하여 여기까지 오셔서 귀엣말을 하십니까?"
"모르시는 말씀!"
농부는 손을 내젓더니,
다시 황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무리 짐승인 소라고 하더라도, 제 흉을 보면 좋아하겠소?"
"아아, 그래서……."
황희는 늙은 농부가 큰 소리로 대답하지 않고
다가와서 귀엣말을 한 이유를 알았다.
늙은 농부는 젊은 황희에게 큰 깨달음을 안겨 주었다.
'짐승도 제 흉을 보면 싫어하거늘, 하물며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 뒤부터 황희는 한 마디의 말이라도 조심하였다.
평생을 농부가 준 교훈을 잊지 않고 살았다.
☆☆☆
황희는 21살 때인 1383년에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27살 때인 1389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성균관 학관이 되었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황희도 두문동에서 72충신과 함께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다가,
2년 뒤에 태조 이성계의 부름을 받아 조정에 나아갔다.
그때, 황희는 조정에 나가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황희대감만은 꼭 나가셔야 합니다." 하고
선비들이 미는 바람에 충정의 뜻을 꺾었다.
'충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쌍한 백성을 돌보는 것이다!'
황희는 이렇듯 마음이 크고 넓게 썼다.
☆☆☆
태조 밑에서 성균관 학관이 된 황희는
태종때 민씨형제들의 횡포를 눌렀으며,
공조, 병조, 예조, 호조, 이조판서를 차례로 지내었다.
황희는 1418년 세자 폐위를 반대하다가
남원으로 귀양간 적도 있었다.
이 해에 세종이 왕위에 올랐고,
황희도 귀양에서 풀려나 예조판서에 올랐다.
60살이 된 황희는 강원도 감찰사로 나가
흉년이 들어 허덕거리는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도 하였다.
황희가 최고 벼슬인 영의정에 오른 것은
69살 때인 1531년이었다.
그 뒤, 황희는 정승으로서 좋은 정치를 베풀었다.
☆☆☆
세종과 황희는 나이로 보아 손자와 할아버지와 같은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은 한시라도 떨어져 있지 않았고 가깝게 지냈다.
하루는 세종이 황희의 집을 방문하였다.
황희는 깜짝 놀라 버선발로 뛰어 나가서 세종을 맞았다.
"어인 일로 이토록 누추한 저희 집을 찾아오셨습니까?"
"이 집에는 정녕 강아지 한 마리도 키우지 않는구려."
세종은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황희는 개를 키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개에게 먹일 것이 있으면
가난한 사람 하나를 더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세종은 언젠가는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행차한 김에 황희의 집에 들른 것이다.
그 때, 사랑방에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났다.
"앙앙앙……."
세종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어 사랑방에서 철없는 아이들이 일제히 밖을 내다보며 까르르 웃었다.
"저 아이들이 강아지 짖는 흉내를 내었사옵니다."
"하하하, 나는 또 황정승이
강아지 한 마리를 남몰래 방안에 두고 키우는 줄로만 알았소."
세종은 황희가 안내하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한데, 방안에는 그 흔한 돗자리 하나 깔려 있지 않고
꺼끌꺼끌한 멍석이 깔려있었다.
장농도 없었다.
"방석 하나도 마련치 못하여 황공하옵니다."
황희는 세종에게 멍석에 앉으라고 할 수도 없어서 쩔쩔매었다.
'한나라의 재상이 사는 집이 이토록 허술하단 말인가!'
세종은 황희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쳐들었다.
☆☆☆
이번에는 세종의 눈에 뻥 뚫린 천장이 바라보였다.
"비도 새겠군!"
"저것은 일부로 뚫어 놓았습니다."
"일부러? 아니, 왜요!"
"비오는 날 밤에 낙숫물 떨어지는 것을 받아 가며
가난한 백성들을 생각하느라고요.
그래야 좋은 정치를 펼 수 있을 게 아니옵니까?"
"오, 과연 황희정승답구료!"
세종은 감탄을 하였다.
☆☆☆
궁궐로 돌아온 세종은
황희 정승의 봉급을 더 올려 주라고 신하들에게 말했다.
그 신하는 빙그레 웃고는,
"더 올려 주어도 소용없사옵니다." 하고 말했다.
"아니, 왜?"
"봉급이 오르면, 오른 만큼
황정승 댁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몰려와서
밥을 얻어먹습니다."
"오, 아까 사랑방에서 강아지 짖는 흉내를 낸 아이들도
그럼 황정승 댁에 와서 밥을 얻어먹으며 노는 아이들이였군 그래."
"그렇사옵니다."
"황정승의 봉급을 조금 전보다 더 많이 올려 주시오."
☆☆☆
그처럼 황희는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이웃과 백성을 사랑했다.
황희의 아들 황치신은 호조판서의 벼슬에 있었다.
어느 날, 황치신은 새 집을 지은 기념 잔치를 벌이기 위해
여러 관리들을 집으로 초청하였다.
여기에 아버지 황희도 초대를 받았다.
황지신은 대문 앞에 나와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다른 사람은 다 모였는데, 왜 안 오실까?'
황치신은 목을 길게 빼고 황희를 기다렸다.
"저기 오시는군!"
황치신은 황희가 나타나자 급히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
황희는 아들이 가까이 오자,
아들의 집을 바라보고는 이내 발길을 돌렸다.
황치신은 당황하였다.
"아버님!"
"나는 저렇게 좋은 집을 지니고 사는 아들이 없소."
"아버님……."
"네가 진정 내 아들이라면,
오늘 열기로 한 잔치도 폐하고 또 저 집에서 살지 말아라.
나라의 녹을 먹는 자가
어떻게 저토록 좋은 집을 장만할 수가 있단 말이냐?"
황희는 이내 발길을 돌려버렸다.
황치신은 집으로 돌아와서 여러 사람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고,
잔치를 폐하였다.
또 집도 팔아 허술한 집을 장만하였다.
그제야 황희는 아들의 집을 찾아갔다.
☆☆☆
황희는 호랑이 장군으로 알려진 김종서를 추천하여
북쪽 국경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그 무렵, 북쪽 국경지방에는
여진족들의 침입이 잦아서 백성들의 피해가 컸다.
김종서는 함길도 관찰사가 되어
1434년에 북쪽 국경지방으로 나아가 6진을 개척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김종서는 황희와 마주 앉게 되었다.
김종서는 의자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어 앉았다.
'김종서가 공을 세우고 돌아오더니, 소문대로 매우 거만해졌군.'
황희는 하인을 소리쳐 불렀다.
"여봐라!" "부르셨습니까?"
하인이 달려왔다.
"김판서(김종서)가 앉은 의자가 비뚤어진 모양이니,
다른 의자를 가져오너라!"
김종서는 깜짝 놀라 자세를 가다듬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수양이 부족해서……."
"내 앞에서 똑바로 앉는 버릇을 들여야 상감께 실수하지 않을 것 아니오?"
"잘못했습니다."
김종서는 황희에게 용서를 빌었다.
☆☆☆
황희가 가는 곳에는 부정이 있을 수 없고,
예절이 흐트러질 수가 없었다.
나랏일에 그토록 엄한 황희였지만,
집안에서나 밖에서는 어질기 짝이 없었다.
황희가 거리를 지나가면,
"정승 할아버지가 가신다!" 하고 아이들이 좋아하였다.
☆☆☆
어느 날, 황희가 사랑방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밖에서 여자 종 둘이 악을 쓰고 싸웠다.
이윽고, 이쁜이가 달려와 황희 정승에게 말했다.
"대감마님, 억울하옵니다."
이쁜이는 방금 싸운 곱단이가 잘못했다고 낱낱이 고해 바쳤다.
"곱단이가 잘못했지요?"
"네 말이 맞다."
황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에는 곱단이가 달려 와서 황희 정승에게 말했다.
"대감마님, 억울하옵니다."
곱단이는 이쁜이와 싸운 까닭을 낱낱이 말하고는,
"이쁜이가 잘못했지요?" 하고 물어보았다.
황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네 말이 맞다."
☆☆☆
그것을 본 황희부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한 쪽이 옳으면 다른 한 쪽이 그른 법이 아니옵니까?
나라 정치도 그와 같이하면 어떻게 되옵니까?"
황희는 부인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부인 말도 맞소!"
이쁜이와 곱단이와 황희의 부인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
황희정승은 세 사람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사람은 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제가 잘한 일만을 쳐드는 법이니라.
각자 잘한 일만 나에게 고해 바치니,
나도 모두 다 잘했다고 할 수밖에 다른 수가 있는가?"
이쁜이와 곱단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황희 정승 앞을 물러갔다.
이윽고 이쁜이가 다시 나타나서 말했다.
"대감마님, 이번에는 제가 잘못한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네 말이 맞아."
다음에는 곱단이가 나타나서 황희 정승에게 말했다.
"저도 이번에는 제가 잘못한 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잘못하였습니다."
"네 말이 맞다."
맨 마지막으로 황희부인이 나타났다.
"대감, 나의 잘못도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신은 싸우지 않았지 않소?"
"아닙니다. 저 아이들이 싸운 것은 저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잘 다스리지 못한 까닭에, 저 아이들이 시끄럽게 싸운 것입니다."
"부인의 말도 맞소!"
또 한 번 황희의 집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
이번에는 황희도 세 여자와 함께 웃었다.
"정승 할아버지가 웃으신다!"
담 너머에서
아이들이 넘어다보고 까르르 웃었다.
'자유게시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랑방 야화 부부지간은 무촌 (1) | 2025.09.18 |
|---|---|
| ◎성공한 ‘자식 농사' 기준은?◎ (2) | 2025.09.18 |
| 동물들이 더 잘 안다 (0) | 2025.09.17 |
| 삼성 이재용 회장 아들 이지호와 이건희 어릴적 비교 (0) | 2025.09.17 |
| *** 구인사 (救仁寺) *** (0) | 2025.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