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생(妓生) 소백주(小柏舟) - 37회

2025. 4. 29. 16:24수호지

★ 기생(妓生) 소백주(小柏舟) - 37회

제37회 이심전심

글을 읽어 내려가는 소백주의 흰 손이 가늘게 떨리며 입가에 오월 모란꽃 같은 희미한 미소가 살포시 수줍은 듯 방그레 지고 피어나 두 볼 가득 분홍빛으로 물들어 고이고 있었다.

​“漌泌激搖少白舟(근필격요소백주)
흰 돛대를 달고 맑은 물결을 가르며 가는 아리따운 배야!

進往幾年男望待(진왕기년남망대)
오고 가며 몇 해나 사내를 기다리느냐!

​後日洋滿誰先對(후일양만수선대)
훗날 배가 가득 차 누가 먼저 너를 건드렸느냐고 묻거들랑

​門到兼前晩湖也(문도겸전만호야)
문 앞에 함께 이른 이는 이 만호였다고 말하여라!”

​하얀 돛대를 달고 고기 잡으러 오가는 배에 소백주를 비유하여 쓴 시(詩)였다.

훗날 만선(滿船)이 되어 즉, 소백주의 배가 불러(아기를 가져) 포구에 돌아오면 사람들이 ‘누가 너를 먼저 건드렸느냐?’고 묻거들랑 이 만호(晩湖, 저물녘의 호수) 곧 소백주 집 저물녘에 도착한 김 선비 자신이 건드렸다고 말하라는 내용이렷다.

​꽃 피는 봄밤이라서 그랬을까?
얼었던 대지가 풀려 그 물큰한 흙 자리마다 물기가 돌아 만물이 생동하는 봄날 여인들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기 위하여 몸을 여는 대지처럼 그 몸을 열고 마침내 굳은 마음마저 여는 계절이기 때문이기에 그랬을까?

​김 선비의 시는 그 대지를 닮은 아리따운 여인 소백주의 마음을 심란하게 흩으러 놓기에 충분하였다.
아니 땅속 깊은 보드라운 살덩어리 실뿌리부터 물들어 오르는 봄날에는 지나가는 가녀린 훈풍에도 그만 물기 머금은 꽃잎을 열고 꿀 가득 고인 깊은 속내를 열어 보이는 것이 자연의 이치였던 것이다.

봄날 김 선비의 시는 소백주에게 깊은 속내를 열고 부끄러운 꽃잎을 피어나게 하는 훈풍 그 자체였던 것이다.
김 선비의 재기 넘치는 시를 읽고 난 소백주는 그새 얼굴이 양달 녘에 활짝 핀 붉은 모란꽃이었다.

아마도 마지막 구절에서 소백주는 김 선비의 앞뒤가 분명한 책임감 있는 사내의 진심을 읽어버렸고 그것이 감동으로 여인의 뜨거운 가슴을 치고 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호!.......”
소백주는 탄성을 지르며 속으로 은근한 미소를 삼켜 물었다.
그것은 작위적인 위선이 아니었다.

눈빛과 눈빛이 통하고, 드디어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말하지 않아도 부러 묻지 않아도 뜻과 뜻이 통했을 때 나오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전율로 짜릿하게 감겨오는 피 뜨거운 남녀에게만 통하는 무언의 감탄사였다.

소백주는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바깥의 일하는 아낙을 불렀다.

​“밖에 누구 있는가?”

- 38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