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154 편
2025. 1. 6. 15:00ㆍ수호지
수호지(水湖誌) - 154
수호지 제65회-2
다음 날은 날이 개이고 눈이 그쳤다.
왕정륙은 장순에게 은자 열 냥을 주면서 건강부에 다녀오라고 했다.
장순이 성안으로 들어가 괴교(槐橋) 아래 당도하니 안도전이 문 앞에서 약을 팔고 있었다.
안도전은 조상 때부터 내과와 외과 진료에 모두 능통해서 멀리까지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장순이 들어가 고개 숙여 인사하자 안도전이 물었다.
“아우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왔는가?”
장순으로 안으로 들어가서 강주에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송강을 따라 산으로 올라간 일을 일일이 얘기했다.
그리고 송강이 등에 종기가 나서 특별히 신의(神醫)를 청하러 왔다가 양자강에서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하고 그래서 빈손으로 오게 되었다는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
안도전이 말했다.
“송공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천하의 의사이니 마땅히 가서 치료해 주는 것이 좋겠지. 하지만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집안에 다른 가까운 사람이 없어 멀리 가기가 어렵네.”
장순은 간곡히 애원했다.
“만약 형님이 거절하고 가지 않으시면 저도 산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다시 상의해 보세.”
장순이 온갖 말로 애원하자 안도전은 비로소 승낙했다.
원래 안도전은 건강부의 이교노라는 기생을 자주 찾아가던 중이었다.
이교노는 미모가 뛰어나 안도전이 애정을 갖고 돌봐주고 있었다.
그날 저녁 안도전은 장순을 데리고 이교노의 집으로 가서 술을 마셨다.
이교노는 장순에게 시동생의 예로 절을 했다.
술잔이 서너 차례 돌고 술이 어느 정도 오르자 안도전이 이교노에게 말했다.
“내가 오늘 밤에는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는 아우와 함께 산동에 다녀와야겠다. 길면 한 달이고, 짧으면 20여 일 걸릴 것이다. 돌아오면 널 보러 오마.”
이교노가 말했다.
“난 당신을 보낼 수 없어요. 만약 내 말대로 안할 거면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마세요!”
“내가 약주머니까지 이미 모두 수습해 놓았으니 가지 않을 수 없다. 내일 떠날 것이니 마음 편히 먹고 있어라. 내가 가더라도 지체하지 않고 곧 돌아오마.”
이교노가 온갖 애교를 다 떨다가 안도전의 품에 쓰러지며 말했다.
“당신이 내 말을 안 듣고 가면, 당신 육신이 조각조각 나 버리라고 저주할 거야!”
장순은 그 말을 듣고, 이 계집을 한 입에 삼켜 버리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
밤이 점점 깊어지자 안도전은 잔뜩 취하여 쓰러졌다.
이교노는 안도전을 부축해 방안으로 데리고 가서 침상에 눕혀 주었다.
이교노가 장순에게 말했다.
“당신은 돌아가요. 우리 집에는 잘 데가 없어요.”
장순이 말했다.
“형님이 깨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갈 거요.”
이교노는 아무리 내보려 해도 장순이 꿈쩍도 안 하자 할 수 없이 문간방에서 쉬게 하였다.
장순은 근심으로 애가 타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한밤중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장순이 벽 틈새로 엿보았더니 어떤 사람이 살짝 들어와 기생어미와 얘기를 나누었다.
기생어미가 물었다.
“한동안 안 보이더니 그동안 어디 있었소? 오늘 밤에는 태의가 취해서 방안에서 자고 있으니 어떡하면 좋을까?”
“누이가 비녀와 귀걸이 사라고 황금 열 냥을 가져왔으니 할멈이 어떻게 해서든 누이랑 만나게 해주시오.”
“일단 내 방에 가 있어요. 내가 애를 불러오겠소.”
장순이 등불 그림자 아래를 살펴보니 바로 절강귀 장왕이었다.
그놈이 그날 강에서 재물을 얻어 여기서 쓰려고 온 것이었다.
장순은 그놈을 보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억지로 참고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노파가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이교노를 불러 장왕을 대접하고 있었다.
장순은 당장 달려들고 싶었지만 자칫 일을 그르쳐서 놈이 달아날까 염려되었다.
자정쯤 되자 주방의 일꾼 둘도 술에 취했고, 노파도 이리저리 비틀거리다가 등불 앞에서 술에 취해 졸고 있었다.
장순이 가만히 방문을 열고 주방으로 들어가 보니 부뚜막 위에 번쩍거리는 식칼이 놓여 있었다.
노파를 보니 의자에 엎드려 졸고 있었다.
장순은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 식칼을 들어 먼저 노파부터 죽였다.
일꾼들도 죽이려고 했는데, 식칼이 물러서 한 사람을 벴는데도 칼날이 무뎌져 있었다.
두 일꾼이 소리를 지르려고 하자 옆에 장작 패는 도끼가 있어 그걸로 둘을 찍어 죽였다.
방안에 있던 기생이 소리를 듣고 황망히 문을 열고 나오다가 장순과 딱 마주쳤다.
장순은 도끼를 들어 기생의 가슴을 쪼개 버렸다.
장왕은 등불 그림자 아래에서 기생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뒷창으로 나가 담을 뛰어넘어 달아났다.
장순은 장왕을 놓친 것을 아까워하다가 옷자락을 찢어 피를 묻혀 흰 벽에 ‘살인자 안도전’이라고 여러 곳에다 썼다.
날이 밝아오자 방안에서 안도전이 깨어나서 이교노를 불렀다.
장순이 말했다.
“형님! 소리 내지 마시오! 두 사람을 보여 드리리다.”
안도전이 일어나 보니 시신이 네 개나 있었다.
깜짝 놀라 온몸이 마비되고 부들부들 떨렸다.
장순이 말했다.
“형님! 벽에 쓰여 있는 것 보셨습니까?”
안도전이 말했다.
“자네가 날 죽이는구먼!”
“이제 두 가지 길만 남았습니다. 만약 형님이 소리를 지르면 저는 달아날 겁니다. 하지만 형님이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만약 형님이 아무 일 없으려면 집에 가서 약주머니를 들고 밤을 새워 양산박으로 달려가 송공명 형님을 구하면 됩니다. 둘 중 어느 길로 가시겠습니까?”
“아우! 어쩌면 이렇게 목숨을 재촉할 생각을 했는가!”
날이 밝았다.
장순은 노자를 거두어 넣고 안도전과 함께 집으로 갔다.
약주머니를 가지고 성을 나와 왕정륙의 주점에 당도하였다.
왕정륙이 맞이하며 말했다.
“어제 장왕이 여기 왔다가 갔는데, 형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 애석합니다.”
장순이 말했다.
“나는 큰일을 봐야 하니, 어찌 사소한 복수를 하겠는가?”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왕정륙이 말했다.
“장왕이란 놈이 오고 있습니다.”
장순이 말했다.
“그놈을 놀라게 하지 말고, 어디로 가는지나 잘 보게.”
장왕이 물가에 가서 배를 살펴보고 있는 것을 보고, 왕정륙이 소리쳤다.
“장형! 가지 말고, 우리 친척 두 사람 좀 건네주게!”
장왕이 말했다.
“빨리 오시라고 하게!”
왕정륙이 장순에게 알리자 장순이 안도전에게 말했다.
“형님! 저랑 옷을 바꿔 입고 배를 타러 가시지요.”
안도전이 말했다.
“왜 그러는가?”
“저한테 생각이 있으니까 형님은 묻지 마십시오.”
안도전은 장순과 옷을 바꿔 입었다.
장순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먼지를 막는 삿갓을 깊숙이 눌러썼다.
왕정륙은 약주머니를 지고 배로 갔다.
장왕은 배를 물가에 대고 세 사람을 태웠다.
장순이 고물로 가서 밑의 널빤지를 들춰 보니 칼이 그대로 있었다.
장순은 칼을 들고 다시 선창으로 들어갔다.
장왕이 ‘영차’ 하면서 배를 저어 나가 강심에 이르자 장순이 웃옷을 벗어 던지고 소리쳤다.
“사공! 빨리 와 보시오! 선창에 물이 샙니다!”
장왕은 계략인 줄도 모르고 머리를 흔들며 선창 안으로 들어왔다.
장순이 붙잡아 겨드랑이에 끼고 소리쳤다.
“이 강도야! 지난번 눈 오던 날 배 탔던 손님을 기억하냐?”
장왕이 장순을 보고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었다. 장순이 소리쳤다.
“네놈이 내 황금 백 냥을 빼앗고, 내 목숨까지 해치려 했지! 그 비쩍 마른 놈은 어디 있느냐?”
장왕이 말했다.
“호걸! 소인이 재물을 얻자 그놈과 나눌 마음이 없어 죽여서 강물에 던졌습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나는 심양강변에서 태어나 소고산 아래에서 자라면서 생선 판매 거간꾼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강주를 한바탕 소란하게 하고 양산박으로 올라가 송공명을 따라 천하를 종횡하여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네놈이 나를 속여 배에 태우고 두 손을 묶어 강물 속에 던졌겠다! 내가 물에 익숙하지 않았더라면 내 목숨은 끝장났을 것이다. 오늘 원수를 만났으니 네놈을 살려둘 수 없다!”
장순은 장왕을 선창 안으로 끌고 가서 밧줄로 두 손과 두 발을 꽁꽁 묶어 양자강 속에 던져 버렸다.
“나도 네놈에게 칼을 대지는 않겠다!”
장왕은 황혼 무렵에 귀신이 되고 말았다.
왕정륙은 그걸 보고 탄식했다.
장순은 배 안에서 전날의 황금과 은자를 되찾아 보따리 안에 챙겨 넣었다.
세 사람은 배를 저어 강변에 당도했다.
장순이 왕정륙에게 말했다.
“아우의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네. 자네가 날 버리지 않는다면 주점을 수습하고 부친과 함께 양산박으로 와서 대의를 함께 행하세. 자네 마음은 어떠한가?”
왕정륙이 말했다.
“형님 말씀이 제 마음과 똑같습니다.”
왕정륙을 작별하고 장순과 안도전은 길을 떠났다.
왕정륙은 두 사람을 작별하고 다시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행장을 수습하여 뒤를 따라갔다.
장순은 약주머니를 지고 안도전과 함께 부지런히 걸었다.
안도전은 글을 읽은 사람이라 30여 리를 걸어가자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장순은 시골 주점으로 들어가서 안도전에게 술을 대접했다.
술을 마시고 있는데, 바깥에서 어떤 손님이 들어오더니 소리쳤다.
“아우! 어째서 이렇게 늦었는가!”
장순이 보니, 신행태보 대종이었다.
장순이 황망히 안도전과 인사시키고, 송공명의 소식을 묻자 대종이 말했다.
“지금 송형님은 정신이 혼미하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죽기만 기다리고 있네!”
장순은 그 말을 듣고 눈물을 비 오듯 흘렸다. 안도전이 대종에게 물었다.
“피부의 혈색이 어떻습니까?”
대종이 대답했다.
“피부가 초췌하고 밤새도록 비명을 지르는데, 통증이 그치지 않습니다. 목숨을 보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몸이 아직 통증을 느낀다면 치료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늦을까 걱정입니다.”
“그건 쉬운 일입니다.”
대종은 갑마 두 개를 꺼내 안도전의 다리에 묶었다.
대종은 약주머니를 지고 장순에게 분부했다.
“자네는 천천히 오게. 나는 태의를 모시고 먼저 가겠네.”
두 사람은 주점을 나와 신행법을 써서 먼저 떠나갔다.
장순이 주점에 이삼일 더 머물고 있으니 과연 왕정륙이 보따리를 지고 부친과 함께 왔다.
장순이 맞이하고 기뻐하며 말했다.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네.”
왕정륙이 물었다.
“안태의는 어디 계십니까?”
“신행태보 대종이 맞이하러 와서 모시고 먼저 갔네.”
왕정륙은 부친을 모시고 장순과 함께 양산박으로 갔다.
한편, 대종은 안도전과 함께 신행법을 써서 밤새워 달려가 양산박에 당도했다.
산채의 두령들이 맞이하여 송강의 침상으로 안내했다.
송강은 침상에 누워 실낱같은 숨만 쉬고 있었다.
안도전은 진맥을 하고나서 말했다.
“두령들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맥은 무사합니다. 병이 위중하기는 하나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제가 큰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열흘 안으로 회복되실 겁니다.”
두령들은 그 말을 듣고 일제히 절을 했다.
안도전은 먼저 쑥뜸으로 독기를 빼낸 다음에 약을 먹였다.
겉으로는 고약을 붙이고, 안으로는 기력을 회복하는 약을 복용하게 하였다.
닷새가 지나자 피부에 점점 붉은 기운이 돌아오고, 육체에 윤기가 나면서 음식도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열흘이 지나자 종기가 완치되지는 않았지만 이전처럼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장순이 왕정륙 부자를 데리고 와서 송강과 여러 두령들에게 인사시키고, 양자강에서 약탈당했던 일과 복수한 일을 얘기했다.
두령들이 모두 칭찬하며 탄식했다.
“자칫했으면 형님의 병을 치료하지 못할 뻔했네!”
송강은 병이 호전되자 북경을 쳐서 노준의와 석수를 구할 방안을 오용과 상의했다.
안도전이 말했다.
“장군께서는 아직 종기가 다 낫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움직이시면 완치되기 어렵습니다.”
오용이 말했다.
“형님은 너무 근심하지 마시고, 편히 쉬시면서 원기를 회복하도록 하십시오. 제가 비록 재주 없지만 봄이 되면 북경성을 쳐서 노원외와 석수를 구하고 음부와 간부를 사로잡아 오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군사께서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비록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겠소.”
오용은 충의당에서 명령을 전했다.
- 155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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