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66
제7장 청풍산의 두령들
제30편 명궁 화영 30-2(자료 없음)
제30편 명궁 화영 30-3
이윽고 날이 밝자 안에서 사람의 기척이 들리면서 화영이 활을 들고 나왔다.
군사들이 겁을 먹고 문밖에 몰려서 거동만 살폈다.
“군사들은 듣거라. 너희들이 유고의 명령을 받고 왔겠지만 헛수고만 했다.
내 활 솜씨를 보여줄 테니 나와 겨루고 싶은 자는 나와라. 먼저 대문 왼편에 세워둔 장군상의 머리털 끝을 쏠 테니 잘들 보아라.”
화영은 말을 마치자 곧 활에 살을 먹여 쏘았다.
시위소리가 일어나면서 화살은 곧바로 표적에 명중했다.
군사들이 모두 입을 딱 벌리고 있을 때 화영은 둘째 화살을 들었다.
“이번에는 오른쪽 장군상의 투구 끈을 겨냥하겠다.”
곧바로 시위를 떠난 화알이 이번에도 투구 끈에 명중했다.
화영은 다시 세 번째 화살을 들어 외친다.
“이번에는 흰 옷을 입은 너희 교두의 가슴 한복판에 꽂힌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교두가 몸을 돌려 달아나자 나머지 군사들도 모두 아우성을 치며 앞을 다투어 달아났다.
화영은 군사를 시켜 채문을 닫아걸게 한 다음 후당으로 들어가서 송강을 만났다.
“제 생각이 깊지 못해서 형님이 이런 곤욕을 치르셨습니다.”
“아닐세, 나야 아무 상관없네만 유고가 그냥 있지 않을 것이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오늘 밤 안으로 청풍산으로 몸을 숨기는 것이 좋을 것 같네. 나만 없으면 제가 아무리 일을 꾸며도 증거가 없지 않겠나?”
“글쎄요. 하지만 형님께서 그 몸으로 어떻게 산까지 가시겠습니까?”
“그래도 일이 워낙 급하니 오늘 밤을 넘길 수 없네.”
송강은 상처에 고약을 갈아 붙이고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 채문을 나섰다.
한편, 유고는 죄인을 잡아오라고 보낸 군사들이 화지채의 활 솜씨에 모두 간담이 서늘하여 돌아오자 아무래도 힘으로는 화영과 겨루어 볼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혼자 깊은 궁리에 빠졌다.
‘화영이란 놈이 산적을 빼돌리고 어쩌겠다는 것인가! 필연코 오늘밤 안으로 도적을 청풍산으로 도망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증거가 없는데 나만 괜히 무관에게 시비를 거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오늘 밤 군사를 풀어 청풍산 길목에 복병을 세워 놈을 잡아 소문내지 않고 집 안에 단단히 가둔 다음에 상관에게 보고하고, 이번 기회에 아예 화영이 놈까지 없애면 이 청풍채를 내가 독차지하게 될 것이다.’
유고의 계략은 적중했다.
밤에 청풍산 길목에 매복했던 군사들이 이경쯤 산으로 피신하는 송강을 잡아왔다.
유고는 송강을 후원에 깊이 가두고 보고서를 써서 두 명의 심복을 청주부(靑州府)에 보냈다.
그러나 화영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유고의 동태만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청주부의 모용(慕容)은 휘종(徽宗)천자가 총애하는 귀비의 오빠였다.
모용은 누이의 권력을 믿고 청주에서 세도를 부리며 백성을 해치는 악덕 지방관리로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모용은 유고의 편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
“화영은 공신의 아들인데 왜 청풍산의 도적떼들과 결탁했단 말인가. 어서 병마도감을 보내서 자세한 사실을 알아 오도록 하라.”
청주 병마도감 황신(黃信)은 뛰어난 무술로 그 일대에서 위엄과 명성이 높은 장군이었다.
청주에는 험한 산이 세 개가 있었다.
첫째가 청풍산, 둘째가 이룡산, 세째가 도화산이다.
그런데 이 세 곳은 모두 도적떼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황신은 일찍이 언젠가는 자기 혼자 힘으로 세 곳의 도둑 소굴을 모조리 소탕하겠다고 벼르고 있던 중이었다.
황신은 모용의 명령을 받고 물러나와 갑옷과 투구를 쓰고, 허리에 상문검(喪門劍)을 차고, 건장한 군졸 50여 명을 뽑아 그날 밤으로 청풍채로 갔다.
나무채 앞에 도착하자 병마도감이 왔다는 말을 듣고 유지채가 문밖까지 나와 그를 환영했다.
두 사람이 후당에 자리를 잡고 앉자 유고는 황신에게 청풍산의 도적 괴수 운성현의 장삼(張三)을 잡은 전후의 얘기를 했다.
그 말을 듣고 황신이 물었다.
“지채가 그놈을 잡아가둔 줄을 화영이 알고 있소?"
유고가 대답한다.
“간밤에 이경쯤 그놈이 청풍산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군사를 매복시켜 아무도 모르게 잡아왔으니 아직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겁니다.”
- 67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