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오백년! 초롱초롱 박철홍의 역사는 흐른다! 16
이방원 4
ㅡ이방원의 1.2 차 왕자의 난과 전두환 신군부 쿠테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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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올리는 글은 조금 탓을 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상당히 많은 밴드와 sns에 역사 글을 올려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편 글이 당시 어떤 밴드에서는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글에 대해서 저에 대한 심한 인신공격 성 댓글을 달았고 저를 빨갱이처럼 몰아 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저의 글에 많은 댓글들로 서로 논란이 일어났고 저에게 통고도 없이 강퇴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비슷한 경우가 또 있었습니다
이번 글은 아니지만 조국사태 때 조국에 약간 비판적 지지의 글을 썼다고 논란이 일어나 강퇴 당한 적도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진보, 보수 색채를 띤 두 곳의 밴드에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자칭 진보적 밴드라고 자부하는 곳에서는 조국을 조금 비판했다고 나를 매도하고 강퇴 시켰습니다.(조국 가족의 엘리트주의 교육관에 대해 비판)
보수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주가 된 밴드에서는 조국을 지지한다는 글을 썻다며 댓글로 공격하더니 느닷없이 나를 강퇴시켰습니다. ( 조국의 검찰개혁 의지를 높이 산다는 글)
같은 글을 두고 정반대의 입장에서 저의 글을 극단적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은 글이었습니다. 이곳에도 올렸던 글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참으로 지나치게 편을 가르고 있고 이념과잉 에 빠져있습니다.
좌든 우든 지나친 고정관념은 우리나라 현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가끔 극과 극은 정말 통하는 것을 봅니다
이번 연재에서 이 편을 뺄까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괜한 논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번 글이 조선오백년 연재로 가고 있는 저의 역사 글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600년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에서 큰 획을 그었던 역사적 사건이 너무나 비슷하게 진행된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내가 보는 저의 개인적 역사적 시각으로 비교한 것 뿐입니다.
정치적의도 차원의 글이 전혀 아닙니다.
전두환 12.12, 5.17 쿠테타는 현 대한민국 법정에서 쿠데타와 내란 죄로 이미 판결 되었습니다.
600년 전, 이방원의 1, 2차 왕자의 난도 지금 우리 시각으로 보면 분명한 쿠데타입니다.
12.12 당시 전두환 일당 중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600년 전 이방원의 1,2차 왕자의 난을 너무 완벽하게 재현 했습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할 수 없다' 는 너무 멋진(?) 말도 당시 이 쿠데타를 수사하던 검잘이 만들어 냈습니다.
당시 많은 국민들이 그 수사 결과 발표에 엄청 속이 상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역사를 배우는 것은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과 비교하면서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저의 역사 글에도 현실정치와 비교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사실 저의 역사 글이 개혁성이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쓰는 편이라 현실정치에서도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 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만 그런 글들을 받아주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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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상 성공한 쿠데타는 꽤 된다.
그 성공한 쿠데타를 살펴보면 대부분 쿠데타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하다고 생각되는 쪽이 불시의 기습으로 성공하고 그리고 쿠데타 성공이후 전개과정이 너무 비슷하다.
그 중 우리나라 역사상 전개과정이 가장 닯은 두 쿠데타가 있다.
바로 조선건국 직후발생한 '제1.2차 왕자의 난'과 600년이 지난 후 대한민국 '전두환일당 신군부에 의한 12.12, 5.17쿠데타'이다.
이 두 쿠데타를 비교해보면서 제1,2차 왕자의 난을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이 두 쿠데타의 주인공인 이방원, 전두환 둘 다 한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방원은 이성계와 정도전이 위화도회군 이후 역성혁명을 계획할 때 부터 직접 참여했기에 어렴풋이 왕을 꿈꾸었을지는 모르지만 방원 위로 4명의 형이 있었기에 엄두 내기는 힘 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생각지도 않게 장형인 이방우가 세자는 싫다며 낙향하고 그 뒤 1년만에 죽는다. 이에 이방원은 왕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방원 위로는 3명의 형, 아래로는 배다른 두 동생과 그 친모인 계비 강씨, 그리고 무엇보다도 넘기 힘든 당시 거의 모든 군권과 실권을 가진 정도전이 버티고 있었다
전두환은 박정희 총애를 받아 보안사령관에 올랐지만 그 당시까지도 최고권력자는 꿈도 꾸지 못했다.
당시는 박정희대통령이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여권에는 차지철, 김재규, 김종필등 쟁쟁한 인물이 버티고 있었고 야권에는 김대중 김영삼이 있었다.
그런데 경천동지할 10.26이 터져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 차지철이 동시에 사라져 버린다.
10.26사태는 당시 대통령시해범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수사권을 가진 보안 사령관 전두환에게 느닷없는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이방원은 방석이 세자가 되고도 6년 동안은 숨 죽이고 살아야 했다. 방원도 어느 정도 사병을 가지고 있었고 현존 왕의 친아들이자 개국공신이라는 명분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정도전 일파가 마음만 먹으면 이방원을 역모로 몰아 쉽게 죽일 수도 있었다. 당시 정도전에게는 그럴만한 충분한 힘이 있었다.
그러나 정도전은 이방원을 너무 경시했다. 이방원의 야망이 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기가 방원을 살려두어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또 자신을 친 삼촌처럼 따랐던 현존 왕 친아들인 이방원 목숨까지 빼앗는 일은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10.26직후 군권은 명목적으로 최규하대통령 권한대행과 계엄사령관 정승화에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최규화와 정승화는 보안사령관 전두환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럴만한 힘도 있었다.
군권을 장악한 정도전은 명나라의 심한 간섭과 자신을 압송하라는 명의 요구에 화가 나 요동정벌을 주장한다.
태조 이성계로 부터 요동정벌을 허락받은 정도전은 그 명목으로 사병을 혁파하고 군권을 장악해 나가려 한다.
정도전의 요동정벌은 여러 의미가 있었지만 왕자들의 사병, 특히 이방원의 사병을 혁파하여 그들의 손발을 잘라 놓으려는 의미가 컸다.
이에 이방원은 배수진을 치고 죽기 살기로 정도전일파를 불시에 기습하여 반격을 가한다. 이방원을 경시하여 별 대비를 하지 않았던 정도전은 이방원 기습 한방에 살해되고 정도전의 꿈도 멀리 날아가 버린다.
전두환도 당시 병력으로 보면 정승화 계엄사령관과 게임이 안 되었다. 정승화는 계엄사령관으로서 즉시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또한 수도권에 주둔하고 있는 장태완 수경사사령관과 정병주 공수특전단사령관이 정승화 편이었다.
10.26 수사를 하면서 힘이 생긴 전두환 월권이 심해지자 정승화는 전두환을 보안사령관에서 해임하고 동해안경비사령부 사령관으로 발령 내릴 준비를 끝마치고 발표만 남겨 놓았다.
이 정보를 미리 입수한 전두환과 신군부측이 발표 전날 기습적으로 선수를 쳤다. 바로 12.12 쿠데타이다.
이방원은 기습 쿠데타에 성공하여 정도전과 방석, 방번 이복동생들까지 살해한다. 쿠데타 성공이후 이방원은 실권을 장악했으나 당장 왕이 되지는 않는다.
허수아비 둘째 형 이방과를 왕으로 내세우니 그가 정종이다. 이방원은 '세제 '(왕의 동생이 후계자가 되는 것)가 되어 실권을 잡고 뒤에서 모든 일을 처리한다.
전두환도 12.12쿠데타에 성공했지만 당장 대통령이라는 최고권력자 자리에 앉지는 않는다.
최규하를 명목상 임시대통령으로 만들어 놓고 실권을 쥐고 뒤에서 모든 것을 조정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거의 대부분 성공한 쿠데타는 이처럼 상대적으로 더 힘을 많이 가진 정적과 비교도 안되는 작은 병력으로 단숨에 기습하여 일거에 성공시킨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란, 박정희의 5.16쿠데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쿠데타의 성공한 이방원과 전두환에게도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이방원은 자기와 성정이 비슷하며 왕에 대한 야망이 있고 사병도 엇 비슷하게 보유하고 있는 네째 형 이방간과 백성들의 여론이었다.
전두환에게는 당시 대통령 후보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과 국민의 여론이었다.
왕의 자리를 찾이하기 위해서 이방원은 어쩔 수 없이 친형 이방간과 전투를 치룬다. 그리고 승리한다. 제 2차 왕자의 난이었다.
그리고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드디어 왕위에 오르니 그가 조선 3대 왕 태종이다.
전두환일당은 5.17 쿠데타로 서울의 봄을 짓밟으며 김영삼,김대중,김종필을 제거하고 5.18광주항쟁을 야기 시킨다. 그리고 광주항쟁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최고권력자 자리에 오르니 제 5공화국이 탄생한다. 그리고 전두환은 무소불위의 대통령이 된다.
어떠한가?
이 두 쿠데타 전개과정이 너무 비슷하지 않는 가?
전두환일당이 600년 전 이방원의 쿠데타를 면밀히 연구하고 검토하여 벤치마킹 한 것임에 틀림 없어 보인다.
그만큼 이방원의 쿠데타와 왕위 쟁탈은 600년이 지난 후에도 벤치마킹 할만큼 철두철미한 계획아래 진행된 것이다.
제 1차 왕자의 난 당시 태조 이성계는 병석에 있었다. 이성계는 이방원의 쿠데타의 분노했지만 이미 병권을 빼앗겨 어쩔 수 없었다.
12.12 쿠데타 때 최규하는 전두환일당 신군부에 의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체포에 대해 결재를 안하고 버텨보지만 몇 시간 가지 못했다.
이성계는 방석과 방번을 살려준다는 이방원의 약속을 믿고 쿠데타를 용인한다.
최규하는 뭐 때문이지 모르지만 12.12 쿠데타를 용인하고 대통령 자리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방원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이방원은 방석과 방번을 함께 살해했다. 이 때 방석의 나이 17세였다.
후에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이 방석의 후사를 이었으나 금성대군이 세조에 반기를 들었다가 실패하고 32세의 나이에 처형되자 방석의 후사는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태조이성계는 이방원이 약속과 달리 이방석과 무안군 이방번, 그리고 사위 흥안군 이제의 죽음에 분노하고 충격을 받아 모든 일에 흥미를 잃고 지내다 1차 왕자의 난 한 달 뒤에 이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주니 그가 곧 정종이다.
태조이성계는 상왕으로 칭하게 된다.
이방원은 왕을 둘째 형 이방과(이방우 죽음으로 당시는 가장 큰형)에게 잠시 양보해서 장자승계의 법칙을 따르기 위해 어쩔 수없이 난을 일으켰다는 명분을 챙겼다. 그리고 쿠데타를 정당화시키려 했다.
이방원의 이러한 행위는 자신은 야심이 없다는 것을 신료와 백성들에게 보여주기위한 쇼였다. 고려시대 17살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기도 한 이방원답게 머리를 잘 썼고 기다릴 줄도 알았다.
이방원은 왕에 대한 별 야망없이 착하기만 형 이방과에게 차기 제왕의 자리를 양보함으로써 아비를 치고 아우들을 살해한 주동자로써의 책임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이방원은 왕에 대한 야망에서는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방원은 얼마든지 훗 날을 기약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과감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전두환도 12.12 쿠데타를 일으켜 모든 실권을 장악했으나 최규하를 얼굴마담 대통령으로 꽤 오래동안 대통령직을 하도록 놔 두었다. 그리고 5.17 쿠데타로 광주항쟁을 야기 시키고 그 빌미로 최규하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고 자기가 대통령이 되었다.
이방원은 정종이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세제가 된다. 그리고 2년 후 정종이 바늘방석에서 스스로 내려와 세제 이방원에게 왕위를 전위하니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세종의 친아버지 조선 3대 왕 태종이 되었다.
600년을 사이에 두고 일어난 1, 2 차 왕자의 난과 12.12 , 5.17 쿠데타 쌍둥이처럼 너무 닯지 않았는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당시 법으로는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할 수 없겠지만 역사의 법으로는 얼마든지 처벌할 수있다.
이어서 태종시대 1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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