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방랑기163화
2021. 1. 23. 09:28ㆍ김삿갓 방랑기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63화
[김삿갓이 생각하지 못 한 위기]
김삿갓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친구들의 돈을 가로채 가지고 도망간 놈은 물론 나쁜 사람이야. 그러나 그 사람도 자네들의 친구임에는 틀림이 없지 않은가? 한 번의 실수쯤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법, 세 사람이 힘을 모아 그 친구를 찾아내어 네 사람이 함께 와서 맡긴 돈을 돌려받을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나?”
장사꾼들은 잠시 저희끼리 수군거리더니 김삿갓에게 이렇게 반문한다.
“우리 세 사람이 그 친구를 잡아 오면, 당신은 우리들의 돈을 책임지고 돌려줄 수 있단 말이지요?”
“물론이지. 네 사람이 함께 오기만 하면 돈을 돌려주고말고! 그 점은 내가 책임을 지겠네. 그렇게 되면 친구도 살리고, 자네들도 돈을 돌려받게 되니 모두가 좋을 게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무엇인가 미심쩍은 데가 있는지 잠시 미적거리다가 이렇게 반문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그 친구를 잡아 오려면 며칠이 걸릴지 모르오. 그동안에 그 친구가 그 돈을 죄다 써버렸으면 어떡하지요? 그런 경우에도 당신은 일천 냥을 고스란히 돌려주시겠소?”
김삿갓은 생각조차 못 했던 허를 찔리는 바람에 가슴이 뜨끔했다.
솔직히 말하면, 김삿갓은 눈앞의 일을 수습하는 데만 급급하여 돈을 가지고 도망간 놈을 붙잡아오기만 하면 만사가 원만하게 해결되리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도망간 놈이 그동안에 돈을 써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미처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돈을 가지고 도망간 놈이 며칠 사이에 일천 냥이라는 거금을 송두리째 써버렸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데 일부라도 써버렸다면 그 돈만큼은 이쪽에서 보충을 해주어야 할 판이었다.
김삿갓으로서는 백 냥은커녕 단돈 스무 냥도 보태 줄 여유가 없었다.
난처해진 김삿갓은 문득 방안에 노인들을 둘러보며 도움의 말을 청했다.
“마을 어른들께서도 들으신 바와 같이 여기 있는 젊은 세 사람이 돈을 가지고 도망간 친구를 꼭 잡아 올 테니 순천 댁에게 맡겨 둔 일천 냥은 어떤 일이 있어도 고스란히 돌려달라는 겁니다. 저도 그렇게 해주기로 이미 약속을 해버렸습니다. 그러나 도망간 사람이 그동안 돈을 얼마간 써버렸다면 그 액수만큼은 마을 어르신들께서 보충을 해주실 수밖에 없겠습니다. 거기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러자 마을 향장 노인이 김삿갓과 방안의 다른 마을 사람들을 돌아보며 큰 소리로 말한다.
“우리 마을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선생이 이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해 주시려고 애쓰고 계신데, 우리가 어찌 나 몰라라 하겠습니까? 다행히 우리 마을에는 오백 냥이 넘는 곗돈이 있으니까, 부족한 돈이 그 정도에 이르게 되면 우리가 능히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다. 마을에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하고 마을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방안을 가득 메운 이십여 명에 달하는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향장 어른의 말씀이 지당합니다.”
하고 모두 안도의 손을 모으는 것이었다.
세 젊은이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안심한 듯,
“여보게들!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놈을 빨리 잡아 오도록 하세! 제깟 놈이 뛰어야 벼룩이요, 날아야 하루살이지. 도망을 가면 어디까지 갔을 것인가? 우리가 잡아 옴세!”
하며 돈을 가지고 도망간 친구 놈을 잡아오려고 어둠 속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이처럼 걱정스러웠던 문제가 일단락되자, 마을 사람들은 김삿갓에게 몰려와 치하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더구나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순천 댁은 즉석에서 술상을 차려다 놓으며,
“만약 저 어른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쯤 황천객이 되어버렸을 것이옵니다. 게다나 제가 죽으면 어린 것들은 꼼짝없이 거지꼴을 면치 못하게 되었을 것이니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치옵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며 넋두리를 하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술을 나누어 마시고 얼큰하게 취한 김삿갓은 늦은 밤 사랑방에 돌아와 그날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아 길을 떠날 행장을 차리자, 이를 본 마을 노인들은 김삿갓을 한사코 놓아 보내려 하지 않았다.
“그놈들이 돌아와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는 선생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 마을을 떠나셔서는 아니 되시옵니다.”
마을 사람들은 김삿갓을 진짜 암행어사로 알았는지 대접이 여간 융숭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그날부터 끼니때마다 이 집 저 집에서 번갈아 김삿갓을 초대해가며 융숭한 대접을 해줄 뿐만 아니라, 밤이면 모두가 김삿갓이 거처하는 사랑방으로 모여들어 구수한 덕담을 목침돌림하듯 들려주는 것이었다.
친구들의 장사 밑천을 가지고 도망친 사내가 친구들에게 붙잡혀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사흘 후에 일이었다. 도망간 놈은 일천 냥 중에서 서른 냥만 썼고, 나머지 돈은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서른 냥만 보태주면 그만이었다.
도망갔다 잡혀 온 자는 면목이 없는지 얼굴을 들지 못했다.
김삿갓은 마을 노인들이 모여앉은 자리에서 순천 댁을 대신해 장사꾼들에게 돈주머니를 돌려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 16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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