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방랑기141화
2020. 12. 30. 09:44ㆍ김삿갓 방랑기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41화
[온종일 산 공기(山空氣)만 마셨나니 나를 신선으로 아는가!]
김삿갓이 객실로 들어와 보니 주인 아낙은 돈을 받아내는 데만 극성스러웠지 객실 꼴은 말이 아니었다. 방바닥은 멍석을 깔아 놓았는데, 그나마 낡아서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고, 들창이라고는 손바닥만큼이나 빼꼼한 크기인데다가 그마저 창호지가 수없이 찢어져 찬바람이 사정없이 몰려들었다.
게다가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난동을 치건만 저녁밥은 언제나 주려는지 소식이 감감하였다.
“여보시오, 배가 몹시 고픈데, 저녁밥은 언제 주시려오?”
부엌에 대고 저녁을 재촉하니 주인 아낙의 대답이 걸작이다.
“젖 뗄 때부터 먹기 시작한 밥을 한 번쯤 못 먹었다고 무얼 그리도 재촉하십네까?”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김삿갓은 점잖은 체면에 화는 낼 수 없고,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잠자코 기다리기만 할 수도 없어,
“에이, 여보시오. 날마다 세 번씩 먹던 밥을 오늘은 한 번도 못 먹었으니 배가 고플 게 아니오. 여러 말 말고 저녁을 빨리 좀 달란 말이외다.”
하고 말했더니 한다는 소리가 또 걸작이다.
“그 양반 성미가 급하기도 합네다. 성미가 그렇게도 급하다가는 시집온 첫날밤에 새색시더러 애기 낳지 않는다고 구박하지 않겠소? 안기래요? 호호호.”
김삿갓은 하도 어이가 없어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객줏집을 해 먹기로 처음 보는 나그네에게 그와 같은 상스러운 농담을 함부로 씨부려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나게 마련이다. 김삿갓도 짜증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점잖은 체면에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어떤 경우에나 화를 내지 않으려는 것은 김삿갓의 생활철학이기도 하였다.
화를 달래기 위해서는 시를 지어 보는 길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김삿갓은 저녁밥을 기다리면서 안락 마을에서 몇 시간 사이에 겪은 일들을 다음과 같은 즉흥시로 달래보고 있었다.
安樂城中欲暮天(안락성중욕모천)
關西孺子聳詩肩(관서유자용시견)
村風厭客遲炊飯(촌풍염객지취반)
店俗慣人但索錢(점속관인단색전)
虛腹曳雷頻有響(허복예뢰빈유향)
破窓透冷更無穿(파창투냉갱무천)
朝來一吸江山氣(조래일흡강산기)
試問人間辟穀仙(시문인간벽곡선)
(해설)
안락성 안에 날이 저무는데,
관서지방 못난 것들이 시 짓는다고 우쭐대네.
마을 인심이 나그네를 싫어해 밥 짓기는 미루면서
주막 풍속도 야박해 돈부터 달라네.
빈 배에선 자주 천둥소리가 들리는데,
뚫릴 대로 뚫린 창문으로 냉기만 스며드네.
아침이 되어서야 강산의 정기를 한번 마셨으니
인간 세상에서 벽곡의 신선이 되려 시험하는가.
※ 註
▸안락성(安樂城)은 실제 지명이 안악성(安岳城)인데, 김삿갓이 이렇게 고쳐지었다 함.
▸유자(儒者 : 선비)를 유자(孺子 : 어린아이들)로 표현하여 관서지방 선비의 인심이 야박함을 언어적 유희로 풀고 있음.
비어 있는 창자를 움켜잡고 배고픔을 달래느라고 익살맞은 시 한 수를 읊어 본 것이었다.
이날 밤 저녁상이 들어온 것은 자시(子時 : 밤 11시~새벽 1시 사이)가 가까울 무렵이었다.
그러나 늑장을 부려 마련해 온 반찬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으로 순두부 된장찌개에 날계란도 두 개씩이나 놓여 있었다.
주인 아낙네는 밥상을 갖다 놓아 주면서,
“무척 시장하셨디요? 뭐든지 시장할 때 먹어야 맛이 나는 법이디요!”
하고 평안도 사투리로 알쏭달쏭한 말을 뇌까렸다.
“잘 먹겠소. 그런데 계란은 한 개면 될 텐데, 두 개씩이나 주셨구려.”
그러자 주인 아낙네는 씽긋 콧살을 찡그려 보이더니,
“날계란이 양기에 좋다면서요? 아실만한 양반이 능청스레 시치미를 떼시네, 안 그래요? 호호호.”
하며 제법 간드러지게 웃는다.
김삿갓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얼른 이렇게 능청스레 받아넘겼다.
“상대자도 없는 이 밤에 양기만 왕성해지면 무얼 하오.”
“상대자가 없기는 왜 없시요. 마음만 맞으면 누구든지 상대자가 될 수 있디요.”
한다는 소리가 암만해도 수상쩍었다.
그리하여 여인의 얼굴을 새삼스러이 바라보니 나이는 사십을 넘었을까 말았을까, 광대뼈가 불쑥 나온 것이 미인은 아니었지만 눈두덩이가 가볍고 입술조차 가는 것이 화냥기가 좔좔 흐르는 정력적인 얼굴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김삿갓은 엉뚱한 생각이 들어,
“아주머니는 남편과 아이들도 없이 혼자 사시오?”
하고 수작을 걸어 보았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상대가 먼저 손바닥을 내밀었으니 남편이 없다면 한 번 건드려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 14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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