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터진 만두

2020. 12. 29. 19:46자유게시방


♥ 속 터진 만두

60년대 겨울 인왕산 자락엔 세 칸 초가들이 다닥다닥 붙어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목숨을 이어간다.
이 빈촌 어귀에는 길갓집 툇마루 앞에 찜 솥을 걸어 놓고, 만두를 쪄서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다.

쪄낸 만두는 솥뚜껑 위에 얹어 둔다.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피를 빚고, 만두를 만들어 손님에게 파는 일을 혼자서 다 하는 만두가게 주인은 순덕아지매다.

입동이 지나자 날씨가 제법 싸늘해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어린 남매가 보따리를 들고 만두가게 앞을 지나다 추위에 곱은 손을 솥뚜껑에 붙여 녹이고 가곤 한다.

어느 날 순덕아지매가 부엌에서 만두소와 피를 장만해 나갔더니 어린 남매는 떠나고, 얼핏 기억에 솥뚜껑 위에 만두 하나가 없어진 것 같아 남매가 가는 골목길을 따라 올라갔다.

꼬부랑 골목길을 오르는데, 아이들 울음소리가 났다.
그 남매였다. 흐느끼며 울던 누나가 목이 멘 소리로 말했다.

“나는 도둑놈 동생을 둔 적 없다. 이제부터 나를 누나라고 부르지도 말아라.”
예닐곱 살쯤 되는 남동생이 답했다.

“누나야, 내가 잘못 했다. 다시는 안 그럴게.”
담 옆에 몸을 숨긴 순덕아지매가 남매를 달랠까하다가 더 무안해 할 것 같아 그냥 가게로 내려와 버렸다.

이튿날도 보따리를 든 남매가 골목을 내려와 만두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누나가 동전 한 닢을 툇마루에 놓으며 중얼거렸다.

“어제 아주머니가 안 계셔서 외상으로 만두 한 개를 가지고 갔구먼요.”
어느 날 저녁 나절 보따리를 들고 올라가던 남매가 손을 안 녹이고 지나치기에 순덕아지매가 남매를 불렀다.

“얘들아, 속이 터진 만두는 팔 수가 없으니 우리 셋이서 먹자꾸나.”
누나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맙습니다만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을래요.”
하고는 남동생 손을 끌고 올라가더니,

“얻어먹는 버릇이 들면 진짜 거지가 되는 거야.”
라고 타이른다.

어린 동생을 달래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찬바람에 실려 내려와 순덕아지매 귀에 닿았다.
어느 날 보따리를 들고 내려가는 남매에게 물었다.

“그 보따리는 무엇이며, 어디 가는 거냐?”
누나 되는 여자 아이는 땅만 보고 걸으며,

“할머니 심부름 가는 거예요.”
메마른 한마디 뿐이다.

궁금해진 순덕아지매는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그 남매의 집 사정을 알아냈다.
얼마 전에 서촌에서 거의 봉사에 가까운 할머니와 어린 남매 세 식구가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궁핍하게 산다는 것이다.

그래도 할머니 바느질 솜씨가 워낙 좋아 종로통 포목점에서 바느질 꺼리를 맡기면 어린남매가 타박타박 걸어서 자하문을 지나 종로통까지 바느질 보따리를 들고 오간다는 것이다.

남매의 아버지가 죽고 나자, 바로 이듬해 어머니도 유복자인 동생을 낳다가 이승을 하직했다는 것이다.
응달진 인왕산 자락 빈촌에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동생이 만두 하나를 훔친 이후로 남매는 여전히 만두가게 앞을 오가지만 솥뚜껑에 손을 녹이기는 고사하고,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고 지나간다.

“너희 엄마 이름이 봉임이지, 신봉임 맞지?”
어느 날 순덕아지매가 가게 앞을 지나가는 남매에게 묻자, 깜짝 놀란 남매가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본다.

“아이고~ 봉임이 아들딸을 이렇게 만나다니! 천지 신명님 고맙습니다.”
남매를 껴안은 순덕아지매 눈에 눈물이 고였다.

“너희 엄마와 나는 어릴 때 둘도 없는 친구였단다.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너희 집은 잘 살아서 인정 많은 너희 엄마는 우리 집에 쌀도 퍼 담아주고, 콩도 한 자루씩 갖다 주었었다.”

그날 이후 남매는 저녁나절 올라갈 때는 꼭 만두가게에 들려서 속 터진 만두를 먹고, 순덕아지매가 싸주는 만두를 들고 할머니께 가져다 드렸다.

순덕아지매는 관청에 가서 호적부를 뒤져 남매의 죽은 어머니 이름이 ‘신봉임’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 이후부터 만두를 빚을 때는 꼭 몇 개를 아예 만두피를 찢어 놓았었다.

인왕산 달동네 만두 솥에 속 터진 만두가 익어갈 때 만두 솥은 눈물을 흘렸다.
30여 년 후 어느 날 만두가게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서고, 중년신사가 내렸다.

가게 안에서 허리를 꾸부리고 노파가 만두를 빚고 있다.
신사는 노파의 손을 덥석 잡는다.

신사는 눈물을 흘리면서 할머니를 쳐다본다.
할머니는 신사를 보며,

“봉임이...”
하고 말끝을 흐린다.

그렇다.
신사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유학까지 다녀와 병원장이 된 봉임이 아들로 지금의 강남제일병원 ‘최낙원’ 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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