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방랑기122화

2020. 12. 11. 07:43김삿갓 방랑기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22화

[명당(明堂)에 관한 이야기]

[부제] 醉抱瘦妻明月中(취포수처명월중) : 달밤에 취기가 오르면 파리한 마누라나 품어 주시오.

“대지(大地)는 모든 생물에게 생명을 제공하는 생기의 근원이에요. 따라서 대지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운명은 땅이 공급해 주는 생기의 활력도에 따라 근본적 차이가 나는 것이라오. 풍수(風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오? 풍수라는 말은 장풍득수(藏風得水)라는 말을 두 글자로 줄인 말이오. 따라서 풍수라는 것은 숨겨진 바람(혈, 穴)을 찾고, 생명의 근원(수, 水)을 찾는 인간 본연의 생(生)을 향한 노력이라오.”
그러나 김삿갓은 임처사가 무슨 소리를 하거나 풍수학을 별로 대견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유인즉, 풍수설이란 고대 원시신앙과 음양사상이 한데 결부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짧지만 몇 마디 대화로 알게 된 유식해 보이는 김삿갓이 풍수학에 대해 시원치 않은 반응을 보이자, 임처사는 김삿갓을 설복시키려는 듯 이런 말도 덧붙였다.

“청오경(靑烏經)이라는 책에는 음양이 부합하고(陰陽符合), 천지가 교통하고(天地交通), 외기가 성형(外氣成形)해야만 풍수가 자성(風水自成)한다고 했지요.”
김삿갓은 임처사의 시답지 않은 장광설(長廣舌)을 숫제 봉쇄해버리려고 퉁바리 어린 소리를 했다.

“풍수설이란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손들의 영화를 위해 조상의 뼈를 명당자리에 묻고 싶어 하는 얘기가 아니겠소이까? 사람이 살아생전에 하구 많은 일 중에서 하필이면 생산성도 없는 그런 허황된 일로 연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단 말이오!”
그 말을 듣자 임처사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다.

“허어... 노형은 모르는 말씀이오. 사람은 모름지기 현세만 볼 게 아니라 혜안(慧眼)을 들어 내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명당에도 청학포란형(靑鶴抱卵形)이니, 미인대경형(美人對鏡形)이니, 노서하전형(老鼠下田形)이니 하는 여러 가지 형국이 있는데, 어떤 사람을 어떤 형국에 모시느냐에 따라서 그 가문의 흥망이 결정되는 거예요.”
“그러면 노형은 마음에 드는 명당자리를 찾기 위해 한양에서 멀고 먼 이곳까지 내려와 토굴생활을 하고 계시다는 말씀이오?”
“물론이지요. 나는 명당자리를 하나만 찾으려는 것이 아니고, 꼭 두 자리를 찾으려고 합니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하였다.

“조상을 명당자리에 모시면 자손들이 절로 영화를 누릴 수 있을 터인데, 무슨 까닭으로 명당자리가 둘씩이나 필요하다는 말씀입니까?”
임처사는 약간 주저하는 빛을 보이다가 말을 한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기로 하리다. 내가 풍수학에 조예가 깊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시는 어떤 대관(大官)께서 자기한테도 명당자리를 꼭 하나 구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는 거예요. 그 어른께서 묻힐 명당자리하고, 내가 조상을 모실 자리하고, 그래서 지금 두 자리를 물색하고 있답니다.”
“그런 양반한테 부탁을 받았다면 보수가 대단하시겠구려. 명당자리를 하나 찾아 주는 데 수고비는 어느 정도나 받게 됩니까?”
김삿갓은 명당자리 성공보수가 궁금해서 눈 딱 감고 물어보았다.

“그런 일에야 어디 일정한 기준이 있나요? 명당자리를 부탁하는 사람의 형편에 따라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지요.”
“노형의 경우는 그 방면에 권위자인데다가 상대방은 고관을 지내는 분이라니까, 수고비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천 냥쯤은 받아야 할 게 아니오?”
김삿갓은 그 방면에는 문외한인지라 크게 부른다는 것이 겨우 천 냥이었다.
임처사는 그 말을 듣고 코웃음을 친다.

“에이, 여보시오. 어느 미친놈이 겨우 천 냥을 받고 명당자리를 구해준다오? 그 양반은 자기에게 명당자리를 구해 주면 백 석 타작을 하는 농터 하나를 주겠노라고 하신걸요.”
“에엣?...”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입이 딱 벌어졌다. 임처사가 토굴생활을 하며 명당을 찾아다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날 밤 두 사람은 술을 마셔가며 명당에 관한 논쟁을 늦게까지 계속하다가 자정이 지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임처사는 자리에 누우면서 김삿갓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명당자리를 찾아다녀야 하니까, 노형은 마음껏 주무시다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나시오. 아침은 챙겨놓고 가기로 하겠소.”
“명당자리는 꼭 새벽에 찾아 나서야만 하나요?”
“물론이지요. 명당자리라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것이어서 꼭 아침 해가 비칠 때 보아야만 형국을 제대로 볼 수가 있는 것이라오.”
“그러고 보면 명당자리를 찾아내는 것도 여간한 고생이 아니로군요.”

다음 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보니 임 처사는 명당자리를 찾아 나섰는지 보이지 않고, 머리맡에는 암죽과 대추, 날콩 같은 것이 한 접시 놓여 있었다.
산중생활에 편리하도록 벽곡을 먹고 지내는 모양이었다.

김삿갓은 아침 대신 벽곡을 먹으면서 풍수설에 미쳐 돌아가는 임처사에게 충고가 담긴 시 한 수를 써놓고 암굴을 나왔다.

可笑漢陽林處士(가소한양임처사)
暮年何學李淳風(모년하학이순풍)
雙眸能貫千峰脈(쌍모능관천봉맥)
兩足徒行萬壑空(양족도행만학공)

顯顯天文猶未達(현현천문유미달)
漠漠地理豈能通(막막지리기능통)
不如歸飮重陽酒(불여귀음중양주)
醉抱瘦妻明月中(취포수처명월중)

(해설)
가소롭소 한양 사는 임처사
어쩌다가 늘그막에 풍수학을 배워서
두 눈으로 온갖 산맥 꿰뚫어 보며
모든 골짜기를 쓸데없이 누비고 다니오.

눈에 환히 보이는 천문도 모를 일인데
막막한 땅의 이치를 어찌 알 수 있단 말이오,
두말 말고 집에 돌아가 술이나 마시고
달밤에 취기가 오르면 파리한 마누라나 품어 주시오.

- 12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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