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상전이다

2026. 7. 1. 22:05자유게시방

몸이 상전이다

발은 주인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데려다준다. 치아는 음식을 잘게 부수어 목구멍으로 쉽게 넘길 수 있게 해준다. 심장과 허파는 연중 무휴로 주인인 나에게 헌신한다. 요금도, 팁도 없이 완전 무료다. 이런 하인이 없다.

젊은 시절에 나는 몸을 종부리듯 다루었다. 몸에 해로운 술을 밤늦도록 마셨다. 위가 쓰리고 장에 탈이 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흔한 보약 한 첩 먹이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몸은 다음날이면 주인이 원하는 대로 순순히 응했다. 60여년 동안 몸은 나의 충직한 하인이었다.

그런 하인이 요즘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무엇에 얻어맞은 것처럼 찌뿌둥하다. 이건 약과다. 이곳저곳이 쑤시고 자주 고장이 난다. 한 곳이 나으면 이내 다른 곳에 탈이 생긴다. 낡은 고택에서 여기를 고치면 저기서 빗물이 새는 격이다.

나는 그것을 인과응보라고 생각한다. 몸의 고마움을 모르고 하인처럼부린 것이 지금의 화를 불렀다. 그동안 몸을 돌보지 않고 혹사했던 일이 고스란히 업보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젊어서 몸이 하인이라면 늙어선 몸이 상전이다. 지금까지 몸이 나의 충직한 하인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몸을 상전으로 모셔야 한다. 몸이 아프면 보약을 지어먹이고 치료도 해주어야 한다.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수덕사의 만공 스님은 임종을 앞두고 시자에게 물을 떠오라고 했다. 자기 몸을 깨끗이 씻은 후 거울 앞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이제, 자네와 내가 이별할 인연이 되었네. 그럼, 잘 있게나.” 한평생 자기와 동행해준 몸에 대한 감사 인사였다.

우리는 누가 나를 도와주면 고맙다고 깎듯이 인사한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도리이다. 그러나 평생 나를 위해 헌신한 내 몸한테는 아무런 고마움을 표하지 않는다. 몸이 노쇠해 고장 나면 불평만 쏟아낼 뿐이다. 이것이 과연 고마움을 아는 사람의 도리인가.

배연국의 행복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