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방랑기(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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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방랑기183화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83화 [추월과의 이별] 추월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김삿갓에게 헤어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김삿갓은 이치에 어긋나는 맹세를 할 수는 없었기에 얼른 이렇게 둘러댔다. “이 사람아! 말로 맹세한다고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닐세. 옛글에 ‘학명재음(鶴鳴在陰)하면 기자화지(其子和之)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미 학이 그늘에서 울면 멀리 떨어져 있던 새끼 학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모두가 어미한테로 달려온다.’는 뜻이지. 그런 것처럼 우리가 비록 떨어져 있다 하기로 마음만 통하면 얼마든지 즐거울 게 아닌가? 천명(天命)을 깨닫고 거기에 안주하면, 봉별(逢別)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닐 걸세.” 추월은 그 말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이는 듯 다시 품에 안기며 말..
2021.02.13 -
김삿갓 방랑기 182화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82화 [二人同心 其利斷金(이인동심 기리단금)] 김삿갓은 추월의 집에서 북쪽의 매섭고 추운 겨울을 따듯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추월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렇게 물어본 말이 있었다. “자네 ‘변대성’이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지? 그 사람은 전에 무얼 해먹던 사람인가?” 추월은 변대성이라는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마! 선생님은 그런 엉터리 같은 인간을 어떻게 아세요?” “엉터리라니? 변대성은 자네 형부가 아니던가?” 추월은 형부란 소리에 더욱 놀라며, “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남자니까 촌수로야 형부임에는 틀림없지만, 저는 그런 철면피 같은 사람은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사람을 어찌 아시옵니까?” 김삿갓은 ‘만호재’라는 서..
2021.02.11 -
김삿갓 방랑기 181화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81화 [雲破月來 靑破鶴來(운파월래 청파학래)] 김삿갓의 질문에 추월은 벅찬 감격에 사로잡힌 채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주의 복잡다단한 현상을 이처럼 간결하고 섬세하게 그려 주신 것에 거듭 놀라기만 하옵니다. 저는 이제야말로 참된 스승을 만나게 되었사옵니다.” “이 사람아! 자네는 언제까지나 나를 스승이라 부르려는가? 이왕이면 듣기 좋게 정든 님이라고 불러줄 수는 없겠나? 안 그래? 하하하...” 김삿갓은 자신의 욕심을 거침없이 실토해 버렸다. 그러자 추월은 얼굴만 붉힐 뿐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며 대답을 못 한다. 마침 그때 새벽닭 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있었다. 김삿갓은 새벽닭 소리를 듣자, 추월의 손목을 슬며시 잡아당기며 익살을 부리듯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
2021.02.10 -
김삿갓 방랑기 180회ㅡ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80화 [하늘과 땅은 만물의 객줏집 같다.] 김삿갓은 추월의 거문고 솜씨도 대단했지만 시를 그렇게까지 잘 지을 줄은 몰랐다. “허어~ 강계 같은 벽촌에 자네와 같은 훌륭한 시인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네! 과연, 자네의 실력은 허난설헌(許蘭雪軒)이 무색할 지경이네 그려.” “과찬의 말씀이시옵니다. 실은 외람되게도 제가 먼저 시를 읊은 것은 선생께서 손수 지으신 시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디 한 수 들려주시옵소서.” 시를 읊게 하려는 수법이 교묘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하하, 자네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솜씨가 기막히군 그래! 그럼, 자네가 나의 시름을 ‘제야’라는 시로 달래 주었으니 나는 그 운자(韻字)로 화답을 해야 되겠군 그래.” 그러자 추월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2021.02.09 -
김삿갓 방랑기 179화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79화 [莫怪今朝把酒頻 世上空留白髮身(막괴금조파주빈 세상공유백발신)] 김삿갓은 시를 읽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는 조운(朝雲)이라는 기생이 남지정(南止亭)에게 보낸 시가 아니었던가?” “그러하옵니다. 저는 이 시를 유난히 좋아하여 하루에도 몇 차례 읽어 보며 혼자 즐거워하옵니다.” “이런 시를 즐기는 것을 보니 자네도 산수를 어지간히 좋아하는군 그래.” 김삿갓은 추월이 떠다 바치는 대얏물을 받고, 세수를 한 후 아랫목에 주저앉으니 추월은 새 옷 한 벌을 가지런히 갖다 놓으며 말하는데, “저녁을 드시기 전에 옷을 갈아입으시옵소서. 옷이 몸에 맞으실지 모르겠사옵니다.” 김삿갓은 새 옷을 보고 적이 놀랐다. “아니, 자네 집에 웬 새 옷인가?” 혹시나 정부가 입던 옷을 주는 ..
2021.02.08 -
김삿갓 방랑기 178화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78화 [김삿갓을 찾아온 여인] 김삿갓은 심원사에서 십여 일을 더 지내다가 동지가 가까워서야 읍내로 돌아왔다. 그 무렵 강계의 추위는 살을 에는 듯 맹렬하였다. 눈은 오는 대로 계속 쌓였고, 모진 칼바람은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려 솜옷을 입고서도 밖을 나 다니기가 어려웠다. 김삿갓은 싸구려 객줏집을 숙소로 정하고, 날마다 방구석에 들어앉아 술을 마셔가며 책이나 읽고 있었다. 이렇듯 생전 처음 겪는 북쪽의 추위로 인해 날마다 침울하게 지내자니 따듯한 남쪽이 그리웠다. ‘대동강도 우수경칩이 지나야 풀린다고 하는데, 그보다 훨씬 북쪽인 독로강의 얼음은 언제나 풀릴까?’ 매일 방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궁상을 떨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한심스럽던 김삿갓은 문득 날을 헤아려 보니 ..
2021.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