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방랑기(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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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방랑기194화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94화 [남원 광한루에서] 김삿갓이 남원 고을 광한루(廣寒樓)에 도착하였을 때는 삼복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다. 따라서 사람들은 한낮의 더위를 피하려고 모두들 광한루로 모여들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삼삼오오 여기저기 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질탕하게 놀고 있기도 하였다. 광한루는 그 옛날 성춘향과 이몽룡이 사랑을 속삭이던 본고장인지라 어디에서나 으레 들려오는 노래는 ‘사랑 타령’이 아니면 ‘십장가(十杖歌)’뿐이었다. 이렇게 광한루 주변은 한량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어서 김삿갓은 어디를 가거나 술은 공짜로 얻어 마실 수 있었다. 따라서 이곳에서 한 해 여름을 태평세월로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김삿갓은 술을 공짜로 얻어먹는 대신..
2021.02.25 -
김삿갓 방랑기193화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93화 [처량한 신세의 김삿갓] 전주를 돌아본 김삿갓은 남원(南原)으로 발길을 돌렸다. 성춘향(成春香)과 이몽룡(李夢龍)의 설화(說話)가 서리서리 얽혀 있는 광한루(廣寒樓)와 오작교(烏鵲橋) 등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남원은 지리산 기슭에 위치한 곳인지라 전주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은 적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가도 가도 인가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김삿갓은 밥을 얻어먹어야 하는 신세인지라 인가가 없는 것처럼 딱한 일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날이 몸은 불편해 오는데다가 밥조차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니 길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인가는 밥 한 그릇 얻어먹기 위해 뱃속에서 울려오는 쪼르륵 소리를 들어가며 진종일 인가를 찾아 헤맨 일도 있었다. 그래도 사람 사는 ..
2021.02.23 -
김삿갓 방랑기192화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92화 [전주(全州)에서] 비몽사몽간에 흔들어 깨우는 사람이 있어 눈을 떠보니 머리맡에는 아까 만났던 김 진사가 서 있었다. 너무도 뜻밖의 광경이어서 김삿갓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니, 이런 곳에 어떻게 오셨소?” 그러자 김 진사는 용서를 비는 어조로, “조금 전에 선비가 내 집 대문에 써놓은 시를 읽어 보고 찾아왔소이다. 요사이 거지 떼가 하도 많아 나는 귀공도 거지인 줄 알고 쫓아냈던 것이오.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으니 용서하시오.” 김삿갓은 품고 있던 분이 아직도 풀리지 않아, “한번 쫓아 버렸으면 그만이지, 뭣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왔느냐 말이요!” 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김 진사는 가볍게 웃으며 달래듯이 말한다. “귀공이 나를 나무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오. 그러나..
2021.02.22 -
감삿갓 방랑기 191화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91화 [一死都無事(일사도무사 : 죽으면 이런 멸시는 안 당할 텐데)] 관촉사에서 남쪽으로 10리쯤 내려오면 풍계촌(風界村)이라는 마을에 후백제를 창건한 견훤(甄萱)의 무덤이 있다. 견훤은 신라의 비장(裨將)이었는데, 진성왕(眞聖王) 때 따르던 군사를 거느리고 반란을 일으켜 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일으킨 풍운아였다. 그러나 후백제는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왕자 금강(金剛)과 신검(神劍)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나라를 세운 지 41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견훤의 초라한 무덤만이 적막한 산속에 쓸쓸히 남았으니 인생의 영고성쇠란 본시 이렇게 허망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넘어와 익산군(益山郡) 용화산(龍華山)에 있는 미륵사(彌勒寺)와 상원..
2021.02.21 -
김삿갓 방랑기190화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90화 [관촉사(灌燭寺) 미륵석불(彌勒石佛 : 은진미륵)에 얽힌 유사] 이윽고 황포 돛이 바람을 품고 강심(江心)으로 두둥실 떠나가기 시작하자, 뱃사공들은 갑판 위에 술상을 차려 놓고 김삿갓을 불렀다. “출발 전에 고사를 지낸 술이 좀 남아 있으니 형씨도 우리와 함께 흠향(歆饗) 합시다.” 어떤 술이라도 사양할 김삿갓이 아니다. 김삿갓은 배꾼들과 함께 술잔을 나누며 원근 풍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배는 순풍에 돛을 달고 강물을 좌우로 가르며 앞으로 앞으로 미끄러져 나가고 있었다. 저 멀리 강가에는 갈매기와 백로들이 삼삼오오 너울너울 춤을 추듯 날아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해는 저물기 시작하여 서녘 하늘에는 노을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김삿갓은 신용개(申用漑)..
2021.02.20 -
김삿갓 방랑기 189화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89화 [몽중몽 주모, 연월과의 이별] 연월은 한번 관계를 맺고 나자, 김삿갓을 더없이 좋아하였다. 그리고 돈은 한 푼도 필요치 않으니 얼마든지 오래만 있어 달라고 부탁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돈보다도 참된 인정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러나 김삿갓은 누구에게나 오랫동안 폐를 끼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애정과 원한은 서로 엇갈려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정에 이끌려 오래 머물다 보면 그 애정이 모르는 사이에 원한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었다. ‘몽중몽’에서 열흘 가까이 편히 쉬고 난 김삿갓은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행장을 꾸리고 나섰다. 연월은 김삿갓의 마음을 대뜸 알아본 듯 서글픈 얼굴로 물었다. “저희 집을 떠나려고 하십니까? 불편하신 일이 많으셨던 모양이지요?” “무슨 ..
2021.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