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마지막회

2021. 9. 9. 08:31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189화(마지막 회)

☞ 여태후의 죽음, 광란의 끝

‘내 남편을 빼앗아간 원수의 자식을 죽인 것이 무엇이 나쁘단 말이냐! 오냐, 두고 보아라.
황제가 무슨 소리를 하던 간에 나는 그년(척비)까지 내 손으로 죽여 버리고야 말리라.‘
워낙 심독한 여 태후인지라 가슴속에 맺힌 원한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혜제가 광태를 부리고 돌아간 바로 그 다음 날 여 태후는 심복 부하인 여동생 여수를 불러 묻는다.

“영항(永巷)에 감금해 둔 ‘그년’은 아직도 살아 있느냐?”
‘그년’이란 척비(戚妃)를 말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예, 아직도 감금해 두고 있사옵니다.”
“음... 이번에는 그년을 죽여 버릴 차례다.”
태후는 그렇게 말하며 새삼스레 이를 바드득 갈자, 여수는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마마께서 분부만 내리시면 언제든지 죽여 버리겠사옵니다.”
태후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한다.

“그년을 아무렇게나 죽여서는 안 된다.
그년이 죽는 꼴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봐야 하겠으니 내일 아침에는 그년을 이리로 끌어내어라.”
“분부대로 거행하겠사옵니다.”
여수는 척비를 끌어오려고 영항으로 달려갔다.

영항에 갇혀 있는 척씨 부인의 몰골은 불쌍한 모습이었다.
지난 날 유방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오던 때는 시녀들이 300여 명이나 되었다.

그리하여 몸에는 언제나 비단옷을 감고, 꽃 피는 봄날과 달뜨는 가을 저녁이면, 많은 시녀들을 거느리고 은은한 풍악 소리를 들어가며 어원(御苑)을 거닐며 인생의 즐거움을 일삼던 그녀였었다.

그러나 유방이 죽고 나자, 그녀는 움막 같은 영항에 그날로 감금되어 햇빛조차 구경하지 못하고, 주먹밥으로 간신히 목숨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한밤중에 심복으로 부리던 시녀 한 명이 비밀리에 그녀를 찾아와 다음과 같은 끔찍스러운 일을 귀띔해 주었다.

“조왕께서 그제 미앙궁으로 끌려오신 이후로 영영 소식이 없사옵니다.”
그 말을 들은 척씨 부인은 눈물이 하염없이 솟구쳐 올랐다.

‘그렇다면 내 아들 여의는 필시 태후의 손에 죽었단 말이냐? 그렇다. 내 아들은 태후의 손에 분명히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 원수를 살아서는 갚을 수 없겠지만 나는 죽어서라도 이 원수만은 반드시 갚고야 말겠다.’
큰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의 관계, 이것은 피차간에 타협할 수 없는 영원한 원수지간인 것이다.

여수가 태후의 명령으로 척씨 부인을 데리러 온 것은 바로 그 다음 날 아침의 일이었다.
여수는 척비를 미앙궁으로 끌고 가기는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그녀를 은근히 동정하였다. 그리하여,

“부인은 지금 태후의 명령으로 미앙궁으로 끌려가는 중이옵니다.
지금이라도 살고 싶으시면 태후에게 용서를 빌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오늘로써 죽음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오.”
약자에 대한 일종의 감상적인 동정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악이 바칠 대로 받친 척비는 그따위 싸구려 동정에는 상대조차 않고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이윽고 척비가 미앙궁 뜰 아래 꿇어 앉혀졌다.

태후는 대청마루를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아무 말도 아니 하고, 척비를 조소의 눈으로 노려보기만 했다.
한쪽은 강자(强者)요, 한쪽은 약자(弱者)인지라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는 약자의 편에서 시선을 피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척비는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그녀는 뜰아래 꿇어 앉혀졌다.

척비는 비록 꿇어 앉혀졌을망정 얼굴을 똑바로 치켜들고 태후를 무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태후는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동시에 일종의 전율감마저 느껴져 자기도 모르게 호통을 내질렀다.

“네 이년! 네년은 선제의 총애를 독점해 오는 동안에 황후인 나를 원수로 알았을 뿐만 아니라, 나의 아들을 태자 자리에서 쫓아내고 네 아들을 태자로 삼으려고 했겠다?
네년은 그런 죄로 오늘날 이 꼴이 되었건만, 아직도 반성하는 빛을 찾을 길이 없구나!”
그러자 척비는 살기가 등등하게 즉석에서 이렇게 반격하는 것이었다.

“질투로 환장해 버린 마귀 같은 늙은 년아! 너는 내 아들을 죽인 철천지한 나의 원수로다.
내 비록 살아서는 원수를 갚을 수 없겠지만, 저승을 가서 귀신이 되어서라도 이 원수는 잊지 않고 천 배 만 배로 갚고야 말리라!”
태후는 무서운 반항에 부딪치자 독기가 오를 대로 올랐다.

“이년아! 네가 발악을 한다고 네년을 빨리 죽여줄 줄 아느냐? 죽이기는 죽이되 두고두고 괴롭히다 천천히 죽여줄 테니 그리 알아라.”
그리고 그 자리에서 형리(刑吏)를 불러 다음과 같이 끔찍스러운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여봐라! 저년의 손목과 발목을 죽지 않을 정도로 차례로 잘라서 두루뭉수리로 만들어 버려라.
귀도 베고, 눈알도 뽑아내어 측간(厠間)에다 처넣어 인분(人糞)을 주어 먹게 하여라.
그래서 이제부터는 저년을 ‘인체(人彘)’라고 부르도록 하여라!”
※ 註) 인체(人彘)란 ‘사람 돼지’라는 뜻이다. 彘 : 돼지 체

여자들의 질투심과 증오심은 이렇게도 잔혹한 것이었던가!
시앗(남편의 첩을 본처 입장에서 부르는 말)이 제 아무리 밉기로서니 사람을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만들 수가 있다는 말인가?

어떻든 여 태후는 척비를 가장 먼저 벙어리로 만든 다음 귀를 잘라 버렸다.
그런 다음 눈을 뽑은 후 손과 발도 차례로 모두 잘라 버렸다.

이에 척비는 돼지가 아닌 인체의 신세가 되어 측간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목숨이 원수라고나 할까? 척비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조차 없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한편, 자비심이 남달리 많은 혜제는 조왕 여의가 살해되었음을 알고 나서부터는 정치에 뜻이 없어 날마다 술과 계집으로 고민을 달래고 있었다.

‘내가 나라를 아무리 잘 다스려 보고 싶어도 어머니가 아들을 죽이는 이 판국에 무슨 재주로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한 혜제는 마침내 자포자기하고, 주색에 빠져들어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혜제는 사냥을 하고 돌아오다 우연하게도 척비가 갇혀 있는 변소 간에 들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소변을 보려고 무심코 바지를 내리다 사람 같기도 하고 귀신 같기도 한 괴물이 변소 안 아래에 갇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에 혜제는 기절초풍을 할 듯이 놀라며 변소 간을 뛰쳐나왔다.
그리하여 수행하던 시종들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측간 속에 사람 같기도 하고 귀신 같기도 한 괴물이 갇혀 있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냐?”
시종들은 모두 거북한 표정을 지으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한다.

“그것은 ‘인체’라고 부르는 것이옵니다.”
“인체라니... 인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
시종들은 대답하기가 거북하여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니 차마 입으로 대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혜제는 그럴수록 수상스러워 마침내는 추상같은 호령을 내렸다.

“인체라는 것이 무엇인지 사실대로 말하여라.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으면 수하를 막론하고 참형에 처하리라!”
이에 시종들은 몸을 떨어가며,

“사람 같기도 하고 귀신 같기도 한 그 괴물은 선제께서 극진히 총애하시던 척비의 변신(變身)이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 대답에 혜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하여 다시 묻는다.

“척비께서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괴물로 변신을 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연유를 분명하게 말해라.”
시종들은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게 되었다.

척비는 태후에 의해 손과 발이 모두 잘리고, 인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낱낱이 품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혜제는 그 사실을 모두 듣자 통곡을 하면서 태후에게 달려가 무섭게 대들었다.

“어마마마는 선제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셨거늘 모름지기 인덕(人德)을 만인에게 베풀어야 옳을 일이오.
그런데도 불고하고 어마마마는 척비에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잔인무도한 형벌을 내렸으니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이오?
사람에게 벌을 주려거든 무슨 벌을 주지 못해 하필이면 이렇게도 잔인무도한 짓을 했단 말이오?
나는 어머님의 자식임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구려.”
혜제가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공박을 해대는 바람에 태후는 변명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척비에 대한 태후의 증오심은 자꾸만 치열해 갔다.
혜제는 생모인 여 태후를 한바탕 닦아 세우고 대궐로 돌아왔다.

그날부터는 모든 정사(政事)를 승상에게 전임시켜 버리고, 자신은 주색에만 더욱 빠져들어 세상만사를 잊으려는 듯이 지내게 되었다.

여 태후는 시간이 지나도 혜제가 정사를 돌보지 아니 하고 주색에 빠져 지내기를 반복하자, 마침내는 자기 자신이 정권(政權)을 빼앗아 버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오냐! 네가 에미를 배반하고 그년을 그렇게까지 두둔한다면, 이제는 네게서 정권도 빼앗아 와야 하겠다.’
태후는 아들조차 원수로 간주해 버렸다.

그리고 여씨 일족을 벼슬자리에 등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승상 소하는 전대(前代)부터의 명재상인지라 태후의 일가친척들을 좀처럼 중용하려 하지 않았다.

“이 나라에는 선대부터의 유능한 공신들이 많사온데, 어떻게 그들을 제쳐놓고 아무런 공로도 없는 여씨들을 고관에 등용하옵니까?
옛날부터 외척(外戚)이 득세를 하게 되면 나라가 망하는 법이옵니다.”
소하가 여씨 일족을 등용하지 않으려는 대의명분은 이같이 뚜렷하였다.

참으로 승상 소하는 명재상이었으나 혜제가 즉위한 지 2년 후인 무신년(戊申年) 가을에 그가 죽고 나자,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태후는 혜제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을 기화로 실질적인 황제의 대권(大權)을 몸소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일가붙이인 여대(呂臺), 여산(呂産), 여록(呂綠), 여택(呂澤) 등을 마구잡이로 고관에 등용하였다.
게다가 병권(兵權)조차 그들의 손에 맡겨 버렸다.

이렇게 유방이 천신만고 끝에 이루어 놓은 통일천하는 10년을 채 못가서 유씨의 손에서 여씨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여 태후는 천하를 장악하고 나자, 여씨 일족을 불러 놓고 말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나의 뜻대로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남아있다.
그것은 ‘인체’를 죽여 없애는 일이다. 지금부터 인체를 이 자리에 끌어내다 사지(四肢)에 수레(車)에 매어 그년을 네 조각으로 찢어 죽이도록 하라. 그래야만 나의 원한이 완전히 풀려 버릴 것이다.”
이렇게 ‘인체’인 척비는 마침내 태후가 보는 앞에서 사지가 네 조각으로 찢어지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져 비참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여 태후는 척비를 죽이고 나서도 마음이 개운치 않았던지 원한의 눈물을 흘리며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씨불여댔다.

“네 년을 죽였건만, 네 년에게 빼앗겼던 나의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그것이 슬프구나...” 끝.

☞ 초한지(楚漢誌) 글을 끝내며

여 태후는 자신이 낳은 아들인 2대 황제 혜제(惠帝) 유영(劉盈)까지 독살한다.
이때 혜제에게는 후사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아이를 구하여 효혜황후(혜제의 정비)의 아들로 입적시킨 뒤 혜제의 아들이라 속이고 3대 황제로 오르게 조작한다.

물론 아이의 어미는 몰래 죽이고... 참 무서운 여자다.
그리고 3대 황제가 어리다는 이유로 섭정을 하면서 서서히 조정의 권력을 장악해 간다.

3대 황제 소제 공(少帝 恭)이 나이가 들어 세상 물정을 알만한 나이가 되자, 누군가 자신이 혜제의 아들이 아니고, 여태후가 조작하여 황제가 되었으며, 친어머니는 살해되었다고 알려 준다.
이 소식을 들은 여 태후는 황제의 보복이 두려워 소제를 영항(永巷)에 감금한 다음

“황제가 정신질환으로 정사를 볼 수 없으니 다른 사람으로 후사를 잇게 한다.”고 조정에 알린 후 같은 방법으로 나이 어린 허수아비를 4대 황제 소제 홍(少帝 弘)으로 앉히고, 자신의 입지를 더욱 다지게 된다.

물론 3대 황제는 하수인을 시켜 몰래 살해하고 병사했다고 발표한다.
이런 여 태후의 끝없는 권력욕은 자신의 권력에서 멈춘 것이 아니다.

나중에는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세운 한나라의 후사를 유씨(劉氏)가 아닌 자신의 친족인 여씨(呂氏)들이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피붙이들을 대거 각 지역의 왕으로 내세운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고 하늘 높이 오르던 여태후의 권력도 여태후가 죽으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결국 진평 등 원로 대신들과 관영, 주발 등 고조와 함께 통일 전쟁에서 무훈이 혁혁한 공신들 그리고 유씨 종실인 주허후(朱虛侯) 유장(劉章) 등이 모의하여 여씨 일족을 몰아내고 4대 황제 소제를 폐하게 된다.

※ 한나라 역사에는 소제(少帝)가 여러 번 나오는데, 소제는 제대로 된 황제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에 그렇게 기록하지 않음. 별도로 시호를 추증하지 않는 것임.

이때 여수(여 태후의 여동생, 번쾌의 처)를 비롯한 조카인 여태, 여산, 여록 등 여씨 일족은 모조리 참수되고, 4대 황제 소제를 비롯해 혜제의 빈들의 소생들인 왕과 제후들도 모두 살해 된다.
원래 혜제의 정부인인 효혜황후는 후사가 한 명도 없었는데, 여태후가 조작했던 것이다.

이렇게 ‘여씨의 반란’을 마무리 한 중신들은 한고조의 셋째 아들인 대왕(代王) 유항(薄氏 소생)을 모셔다 5대 황제로 모시니 이 사람이 한나라를 제대로 다져놓은 효문황제(孝文皇帝), 즉 문제(文帝)인 것이다.


‘19금(禁) 초한지(楚漢誌)’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초한지’가 오늘 연재로 모두 끝났습니다.
사실 전편을 살펴보면 ‘9禁’이라 할 만한 내용은 거의 없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제목을 정한 것은 누군가 조언을 해주신 분이 계신데, 이런 식으로 제목을 지어야 독자가 늘어난다는 말씀을 해주셨기 때문이니 양해바랍니다. ㅎㅎㅎ

그런데 글을 옮기고 교정하고 각색하는 과정에서 낚이신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19禁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이 ‘楚漢戰爭’이 일어나게 된 과정이나 당시의 시대 상황 등 원전의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것이 이 글을 읽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과거의 시대상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오늘을 슬기롭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인간의 습성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구나’하는 점도 한고조 유방의 사례에서 얼마든지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여 태후를 통해 욕심이 지나치면 결국 끝이 좋지 않다는 ‘과유불급’도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제후의 자리도 마다하고 산으로 들어가는 장량처럼 앞날을 내다보는 지혜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그동안 애독해주시고,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글을 맺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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