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방랑기 198화

2021. 2. 28. 12:49김삿갓 방랑기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98화

[연년납월 십오야, 헌관집사 개고알]

‘유천’이라는 주막에서 우국지사와 마지막 작별을 나눈 김삿갓은 겨울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강진에 있는 안복경이라는 사람을 찾아가기로 결심하였다.
진주에서 강진 고을까지는 몇 백 리가 되는지 김삿갓은 정확한 거리를 모르지만, 마음 놓고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는 아무리 멀더라도 따뜻한 곳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병이 워낙 심상치 않은데다가 우국지사를 만나 밤샘을 해가며 폭음을 한 탓인지 몸이 천근같이 무거웠다. 게다가 날씨조차 갑자기 추워져서 사지가 오그라들 지경이었다.

‘이거 큰일 났구나. 몸이 이래 가지고야 하루에 10 리인들 걷겠나?’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김삿갓은 날이 갈수록 몸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어느 때는 절간으로 찾아 들어가 10여 일씩 몸조리를 하기도 하였고, 또 어느 때는 서당방에서 4, 5일씩 쉬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강진 고을을 향해 조금씩 거리를 줄여나갔다.

이 해도 저물어 가는 섣달 중순께의 일이다.
김삿갓은 이날도 저녁을 얻어먹기 위해 어느 기와집을 찾아가니 마침 그날이 제삿날이어서 많은 친척들이 음식을 차리느라고 법석을 떨고 있었다.
그 집은 돈도 많은데다가 제사를 지내는 법도가 엄격한지 밤이 이슥해오자 예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헌관(獻官)과 집사(執事)까지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다.

‘옳다 됐다. 제사를 지낸 뒤에는 으레 음복을 나눠 먹을 테니 그때 나도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얻어먹을 수가 있겠구나!’
김삿갓은 자기 나름대로 잔뜩 기대를 가지고 행랑방에 혼자 누워 제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복을 얻어먹을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무슨 기대에 어긋나는 처사인가! 주인집 일가친척들은 제사가 끝나자 안방과 사랑방에서 저희끼리만 음복을 나눠 먹을 뿐 김삿갓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김삿갓이 있는 행랑채에는 개다리소반에 떡 한 그릇과 김치와 숙주나물 한 접시만 덜렁 들여놔주는 것이 아닌가?

‘이게 웬일이야? 빌어먹을 놈들! 조상의 제사를 지냈으면 음복만은 손님에게도 똑같이 나눠줘야 옳을 일인데, 사람을 이렇게까지 차별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 심보를 가지고 어떻게 조상의 음덕을 바란단 말인가?’
김삿갓은 홧김에 욕이 절로 나왔다.

그리하여 즉석에서 글자를 읽으면 욕설이 되는 시 한 수를 읊어대었다.

年年臘月 十五夜(연년납월 십오야)
君家祭祀 乃自知(군가제사 내자지)
祭奠登物 用刀疾(제전등물 용도질)
獻官執事 皆告謁(헌관집사 개고알)

(해설)
해마다 섣달 보름날 밤은
그대 집 제삿날임을 잘 알고 있노라.
제상에 올린 것은 칼을 잘 쓴 음식이요,
헌관과 집사들은 모두 엎드려 아뢰는구먼.

김삿갓이 병든 몸을 이끌고 고생 끝에 강진 고을에 도착한 것은 그해도 저물어 가는 섣달그믐께 무렵이었다. 안복경 진사는 우국지사의 소개장을 자세히 읽어 보고 김삿갓을 크게 반기면서,

“그러잖아도 어젯밤 꿈자리가 좋기에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마는 설마 삿갓 선생처럼 고명하신 어른이 찾아와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무척 피로하신 모양이니 어서 들어가십시다.”
하고 큰 사랑으로 모셔 들였다.
그리고 초면 인사를 정중히 나누고, 다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삿갓 선생을 직접 만나 뵙기는 오늘이 처음이나 일찍부터 선생의 선성(先聲)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이북천(李北天) 공의 소개 편지에 의하면, 선생은 몸이 몹시 불편하시다고 하셨으니 이번 겨울은 저희 집에서 편히 쉬도록 하십시오. 강진이라는 곳은 겨울에도 추위를 모르는 따뜻한 곳입니다.”
김삿갓은 안 진사의 특별한 배려가 고맙기 그지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강진 고을은 뒤에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바다가 바라보여서 병자가 몸을 수양하는 데는 안성맞춤의 휴양지였다.
김삿갓은 안 진사와 날마다 글 토론도 하고, 산책도 같이 다니는 동안에 그의 인품을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돈이 많아도 교사(驕奢)하지 않았고, 지식이 풍부하면서도 겸손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비록 농사꾼이더라도 그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기도 하였고, 훈장이 나들이를 갔을 때는 서당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이렇듯 안 진사는 안심입명(安心立命) 사상이 몸에 배어 있는 처사형 군자였던 것이다.

김삿갓이 거처하는 안 진사 댁 별당은 언제나 절간처럼 조용하였다.
뜰에는 조그만 연못이 있었다. 연못가에는 대나무도 있고, 수초도 무성했지만 물고기가 물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운 일의 하나였다.
어느 날 안 진사는 김삿갓에게,

“선생!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니 금곡사(金谷寺) 구경이나 한 번 다녀오십시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금곡사는 안 진사의 집에서 5리쯤 떨어진 보은산(寶恩山) 산속에 있는 낡은 절간을 말하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오랜만에 안 진사와 함께 나들이를 나섰다.

금곡사 입구에는 개울물을 사이에 두고, 30척이 넘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두 개의 바위가 공중 높이 솟아 있었다.
그 거대한 두 개의 바위는 마치 두 마리의 싸움닭이 금방이라도 싸울 듯이 서로가 날갯죽지를 추스르고 마주 노려보고 있는 형상이었다.

“이 두 개의 바위는 금방 싸울 것만 같은 형상이구려.”
김삿갓이 바위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자, 안 진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지방 사람들은 옛날부터 이 두 개의 바위를 ‘쟁계암(爭鷄岩)’이라고 불러오고 있답니다. 금곡사가 번창하지 못하는 것은 이 바위들이 절 입구에서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삿갓 선생은 오늘 금곡사에 놀러 오신 기념으로 이 바위들이 이제부터는 싸움을 아니하도록 화해를 좀 붙여 주시지요.”
김삿갓은 그 소리를 듣고 즉석에서,

“그렇다면 내가 화해를 주선하는 시를 한 수 지어 볼까요?”
하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雙岩竝起 疑紛爭(쌍암병기 의분쟁)
一水中流 解忿心(일수중류 해분심)

(해설)
두 바위가 마주 서서 싸우는 것 같지만
중간에 물이 흘러 서로 분한 마음을 풀어 주네.

실로 김삿갓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기발한 착상이었다.

- 19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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